걸어서 몰타 한 바퀴 [1편]

프롤로그

by 이현

이래 봬도 나는 천주교 신자이다.

회사에 취직을 하고 가장 먼저 계획적으로 한 일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다. 취업 후에도 취업 준비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타격이 곧바로 좋아지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남동생이 성당에 다녀보길 권했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무교이시다. 동생만 우연한 기회로 세례를 받았는데 본인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며 나에게 추천해 주었다. 나와 동생은 두 살 차이지만 성격적인 면에서 쌍둥이처럼 닮은 구석이 있으므로 나는 동생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몇 주간의 고민 끝에 성당을 방문했을 때, 우연찮게도 새 신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신청을 받고 있었다. 그 길로 나는 몇 달간의 교육을 통해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엘리트 코스를 밟듯 각종 성당 연수를 다녀오고, 관련 봉사활동도 몇 년을 했다. 성인이 되어 종교 활동에 심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몇 년 동안 성당 활동에 열과 성을 다하게 했던 원동력은 해소되지 않는 '신앙적인 체감'이었다.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지만, 나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그리도 애타게 하느님을 부르는 모습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하느님은 어디 계신 거야? 어떠한 느낌을 받아야 그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거야?’

애절하게 하느님을 부르짖는 친구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기도를 마치고 나면 아주 좋은 화장품을 바르기라도 한 듯 반짝이는 얼굴이 되어 하느님의 자녀임을 만천하에 당당히 보이는 친구들을 보며, 행여 내가 그 사이에서 미운오리새끼가 될까 싶어 물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성당에서는 신자인 친구들과 각자의 신앙심과 신앙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이 종종 있다. 잘 공감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터져 나오는 하품을 겨우 삼켰지만, 매번 나의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주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다녀온 친구들은 짧게는 1~2주에서 길게는 몇 달을 순례길을 걸었다고 한다.

‘나도 산티아고에 가면 하느님을 알게 될지도 몰라.’


스텔라를 만나게 된 건 성당 활동에 한참 심취하던 시기였다. 스텔라는 나보다 두어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동그란 얼굴에 커다랗고 동그란 눈을 가진 귀엽고도 예쁜 친구였다. 그 아이는(그녀라고 하기엔 여전히 내 기억 속 스텔라는 여린 소녀의 모습이다.) 이민 2세대로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평생을 미국에서 살다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에서 왔으며, 1년여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자유분방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스텔라는 무척이나 예의 바르고 깍듯했다. 그럼에도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한 아이여서 성당에서는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스텔라와는 성당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서, 성당 모임이 끝나고 내 차로 같이 귀가하는 일이 많았다. 길지 않은 드라이브 시간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는데, 어쩐지 그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는 묘한 그늘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제법 진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었다.

“지난주에 서해 바다에 갔었는데, 언니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었어요.”

“무슨 이야기?”

“언니가 서해 바다를 보고 실망스러웠다고 했던 이야기요.”

나는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년기 시절엔 거의 여행을 가보지 못했었다. 서해 바다를 처음 본 건 취업을 하고 이듬해쯤이었다. 그 당시 나는 회사 일에 지쳐 당장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가까운 바다가 서해였다. 내가 알고 있는 바다는 파도가 세차게 철썩여서 그 소리에 점점 귀가 아프다고 느껴질 만큼 요란하고, 부서지는 파도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런 바다였다. 하지만 처음 본 서해 바다는 스리슬쩍 밀려왔다가 다시 스리슬쩍 밀려가는 식이었다. 그 장면은 나에게 실망인 동시에 커다란 문화충격이었다. 서해는 동해와 달리 그리도 잔잔하다는 것을 20대 후반이나 되어서야 알게 되다니.

언제였는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스텔라에게 한 적이 있었고, 한국 곳곳을 탐색하고 다니던 스텔라가 서해 바다를 눈앞에 두고 내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고 한 것이다.

그 아이는 그런 식이었다. 항상 깍듯함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도, 또 어느 날 불쑥 연락해 내가 생각났다고 말한다. 요즘은 오글거리는 감성을 나누는 일이 마치 기성세대의 골동품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아이가 나에게 전하는 그 진지하고 감성적인 마음들은 항상 나를 동하게 하는 것이었다.


몰타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텔라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언니 잘 지내요? 저 다음 주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가요. 혹시 가능하다면 언니를 보고 싶어서 연락해요.”

그 땐 이미 스텔라가 뉴욕으로 돌아간 지 벌써 3년쯤 지났을 때였다. 내가 SNS에 올리는 사진들을 보고 유럽에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스텔라는 한 달이 조금 넘게 산티아고를 걸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 나는 그 시기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래저래 일정을 맞춰본 끝에 우리는 마드리드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당일. 오후 3시쯤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으나, 산티아고에서 마드리드까지 나오는 교통편이 여의치 않았던 스텔라는 결국 저녁 8시쯤이 되어서야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아이는 새까맣게 탄 얼굴로 자기 몸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일단 먼 길 오느라 고생한 스텔라를 배불리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두어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약속된 바는 없었으나, 마음이 통하여 각자 준비한 선물을 교환했다. 스텔라는 나에게 순례 중 얻은 귤 두 개와 순례길에서 찾은 클로버를 건네주었다. 나는 주고 싶은 것은 한가득이었으나, 아직 몇 주간의 순례길이 남은 스텔라에게 많은 선물을 주어봤자 그저 짐이 될 뿐이었다. 내가 아끼던 머리띠와 휴족시간과 묵주 그리고 손편지를 주었다.

스텔라.jpg 커다란 배낭을 멘 스텔라

내가 물었다.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배낭이 그렇게 커?”

“제 욕심이죠. 욕심만큼 짊어지고 걷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것도 걷는 중에 많이 버린 건데 여전히 짐이 많네요.”


스텔라를 만난 지 2주쯤 지났을 때, 나는 걸어서 몰타를 한 바퀴 돌아보자고 마음먹었다.

몰타로 어학연수를 오게 되었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고 싶어 이런저런 방법을 모색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번번이 포기하게 되었었다. 꿩 대신 닭이었다.

'산티아고를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마음이면, 내가 걷는 이 길이 곧 순례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19년 4월 19일의 일기
걸어서 몰타 한 바퀴
내가 걷는 이 길이 곧 카미노가 될 수 있길.

이야기는 [2편]에 이어집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