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ians in Malta

몰타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들

by 이현
Episode 1.

“한국에선 개고기를 먹지 않니?”

수업 중 선생님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웬 개고기 얘기지?’

영어로만 이루어지는 수업의 반만 알아듣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스러워졌다. 클래스에 10명쯤 되는 학생들 중 한국인이라고는 나와 다른 친구 둘 뿐이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친구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는 걸 봤고,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건 나구나 싶었다.

“맞아. 우리나라에는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있어.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그때,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드는 상황이 펼쳐졌다. 교실에서 나와 가장 먼 자리에 앉아있던 이탈리아 여학생 하나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고는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Oh, my friend. You’re my friend from now.(오, 너는 이제부터 내 친구야!!)”

나와 한 번도 살갑게 인사를 나눈 적 없는, 이탈리아에서 온 Tiziana(티지아나)였다.

티지아나는 내 생에 처음 알게 된 이탈리아 여자였다. 같은 수업을 들은 지 한 달이 넘도록 서로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눈 적이 없어서 이탈리아 여자들은 다들 이렇게 도도한가 싶었다. 그랬던 그녀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달려와 나를 덥석 끌어안기까지 하다니. 선생님의 갑작스런 질문도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포옹이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여태 나한테 인사 한번 안 해준 게 그 이유였구먼.’

참고로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충분히 설명이자 대변을 했다. 역사적 배경과 환경적 배경을 덧붙여서. 내 나라를 그저 미개한 국가로 취급하는 듯한 질문과 답변으로 끝낼 수는 없으니..

그날 이후로 그녀의 태도는 180도 변했다. 수업 쉬는 시간이면 나에게 와서 스몰토크를 하기도 하고, 같이 커피나 스낵을 사러 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분기의 클래스가 끝날 때쯤엔 자기 집에 반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티지아나네 파티

분기마다 클래스가 바뀌어 자연스레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 혼자 정의 내린 국가별 친구들의 특징이 있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항상 첫인상이 도도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클래스가 끝날 때쯤 파티를 열고, 반 친구들은 초대하는 건 항상 이탈리아 친구들이었다. 파티를 연 이탈리아 호스트들은 남녀 불문 열심히 요리를 해 손님들에게 대접해 주었다.

일 년 동안 어학원을 다니며 여러 친구들의 집에 초대받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파티는 역시 티지아나의 파티이다. 외국인에게 초대받아 본 첫 파티이기도 했고, 어학원에서의 첫 번째 클래스 친구들이었기에 나도 마음이 더 애틋했던 것 같다. 덧붙여 티지아나의 티라미수는 환상이었다. 티라미수가 집에서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요리였다니. 게다가 진짜 이탈리아인이 만들어 준 티라미수라니!

다른 친구들도 각자 본인 나라의 요리를 만들어 조금씩 가져오거나 와인을 사 와서 함께 나누었다. 나와 다른 한국인 친구는 불고기와 불닭볶음면을 준비했다. 불고기야 당연히 다들 무난하게 잘 먹었지만, 문제는 불닭볶음면이었다. 나와 친구도 장난스레 가져간 불닭볶음면이었다. 그때쯤에 이미 불닭볶음면은 해외에서도 제법 유명세를 떨쳐서, 라면봉지만 보고 아는 체 하는 친구들도 몇 있었다.

“이건 아주아주 매운 한국 라면이야. 주의해서 조금씩 맛만 보도록 해.”

다들 면발을 집어 들고 위아래로 훑어보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조금씩만 입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도 얼굴이 빨개지며 연신 콜라나 와인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 모습을 보며 서로들 낄낄대고 웃었고, 나만 당할 수 없다며 너도 먹어보라고 옆의 친구들에게 권해 결국은 돌아가며 한입씩 다 먹고, 테이블 위의 음료란 음료는 모두 바닥을 내었다. 끓인 불닭볶음면은 고작 한 개였는데, 모든 친구들을 초토화시키고도 라면이 한참은 남았다. 어차피 장난스레 만든 거라 다 먹어주길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나름대로 이것도 요리라고 끝까지 꾸역꾸역 먹으며 발간 얼굴로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든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David(다비드)였다.


Episode 2

David(다비드. 영어로는 데이비드지만 이탈리아인이라 그런지 다비드라고 불렀었다.)는 반에서 가장 어린 친구였다. 외모를 보고 어릴 거라 짐작은 했었지만, 막상 그가 자기 나이를 스스로 밝혔을 땐 다들 터져 나오는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그 친구는 고작 열아홉이었다.

“Oh, he is a baby!(아직 아기네!)”

30대 중반의 콜롬비아 친구가 장난스레 외쳤다. 클래스에 있는 친구들의 나이는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지만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그 사이에서 열아홉이라니. 모두들 막냇동생처럼 여겼지만, 정작 본인은 어엿한 성인으로 보이고자 항상 의젓함을 놓지 않았었다.


그런 다비드에게 모두가 감탄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어학원 수업은 하나의 주제를 두고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고 발표하는 일이 많았다. 그날도 선생님은 하나의 주제를 던져주고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두 팀을 나누어 발표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준비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물었다.

“누가 먼저 발표해 볼래?”

남학생들은 “Lady, first!(레이디 퍼스트!)”를 외쳤다. 매너의 관용어구를 여학생들이 먼저 발표하라는 뜻으로 장난스레 쓰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반격으로 “Guys, first!(남학생들 먼저요!)”를 외쳤다. 누구 먼저 하겠다는 사람이 없자 선생님은 반의 막내인 다비드에게 물었다.

“다비드, 너는 누가 먼저 했으면 좋겠어?”

다비드는 곤란한 듯 조금 망설이다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남녀 학생들 할 것 없이 그의 답변에 감탄했다.

“Lady choose, first.”

‘여학생들이 먼저 고르게 해 주세요.’라니. 이탈리아 남자들이 그렇게 로맨틱하다더니, 이 쪼그만 소년마저 여지없이 그 이탈리아인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클래스 막냇동생의 상상하지 못한 답변에 누님들은 감동의 도가니탕이었고, 남학생들은 다소 숙연해졌으나 소년을 감탄의 눈으로 기특하게 보았다.

어학원 수업시간

클래스가 끝나고 종종 친구들이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어린 여동생을 데리러 유치원에 가야 한다고 하던 어른스러운 다비드. 지금도 나와 인스타그램 친구인 다비드는 여전히 몰타에 있는 듯하다. 요즘은 몰타에 대한 홍보 영상을 종종 올리던데,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앳된 외모로 어른스러워 보이고자 하는 다비드인 것 같아서, 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반갑게 잘 보고 있다.


Episode 3.

나는 유학원에서 운영하는 한국인 플랫에 한 달 정도 살았었다. 한 집에 다섯 명이서 함께 지내는 게 너무 답답하던 찰나, 곧 몰타를 떠나는 한국인 언니로부터 다른 집을 소개받았다. 이탈리아 여자의 집인데 안 쓰는 방 하나를 빌려준다는 것이었다. 월세는 원래 살던 플랫보다 10만원 정도 더 비쌌으나, 화장실 하나를 두고 여자 5명이 함께 쓰느냐 혼자 쓰느냐 하는 문제 만으로도 나는 10만원 정도야 충분히 추가로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큰 고민 없이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고, 이탈리아 여자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 집주인 이탈리아 여자가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다. 이름은 클라우디아.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 살쯤 많았지만, 내가 살짝 내려다봐야 할 정도의 작은 키(참고로 저는 163~4cm입니다.)에 왜소한 체구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성답게(?) 항상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거기에서 오는 아우라가 있었다. 일에 지쳐 발코니에 널브러져 있을 때마저도 우아하고 강인한 내면을 가진 그녀의 아우라는 꺼지지 않았었다.

사실 그녀와의 대단한 에피소드는 없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를 떠올리면 항상 그려지는 풍경이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거나, 혹은 제법 하늘이 깜깜해진 저녁. 아주 넓은 거실에는 8인용 식탁이 있고, 그 위에는 은은한 백열등 조명이 하나만 덩그러니 온 거실을 밝히고 있었다. 발코니 창에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그녀가 내뿜는 연기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그녀는 회사에서 서류뭉치를 대거 들고 와 식탁에 늘어놓기도 했고, 가끔은 배를 채우려 간단한 요리를 펼쳐놓기도 했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요리를 권했고, 우리는 식탁에서 같이 무언가를 먹거나 혹은 소파에 앉아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시시콜콜 수다를 떨 만큼 친하지는 않았으나, 제법 오랜 기간 동거를 했기에 거기에서 오는 유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도 나도 어떤 일들이 마음을 짓눌러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터져 나오는 말들을 막지 못하고 그 밤중에 서로에게 이야기를 쏟아내게 되는 것이었다.

하루는 슬픔에 잠긴 그녀가 먼저 소파에 앉아 입을 떼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30대 후반 정도였는데, 병원에서 자기가 불임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몇 년 후면 아기를 가질 확률이 0퍼센트에 가까워지니 난자를 얼려두기를 권했단다. 그녀는 복잡한 생각과 감정과 고민에 사로잡혔다. 그리고는 본인의 전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여주었다. 어릴 때부터 오랜 기간 만났던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결혼을 계획하게 될 즈음 남자친구가 갑자기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단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남자는 갑자기 클라우디아에게 이별을 고했다고 한다. 이유는 클라우디아도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했다. 본인도 여러 가지를 추측하지만 남자친구가 직접 말해준 것은 없단다. 남자친구는 조용히 떠나고 싶어 했고, 그녀는 신혼집과 몇 개의 가구들과 함께 그저 남겨졌다고 했다. 클라우디아는 실연의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그 길로 이탈리아를 떠나 몰타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병원에서 불임 이야기를 듣고 온 클라우디아가 떠난 전 남자친구를 떠올린 이유는 뭘까. 나도 그저 가만히 추측만 해 볼 뿐이었다. 며칠간은 다소 침울해진 그녀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우아하고 강인한 클라우디아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몰타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온라인 카지노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30대 후반에 40평은 족히 넘는 아파트를 소유할 정도이면 수입이 제법 괜찮은 모양이었다. 슬쩍 물어봤더니 몰타에선 카지노 사업이 잘 된단다. 그리고 요즘은 일본으로 시장을 넓히는 중이라 영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가능하면 취업도 쉬울 것이라 나에게 알려주었다. 고등학교 때 잠깐 배운 일본어가 머리를 스쳤으나, 영어를 배우며 한국어도 어눌해져 실상 0개 국어를 하게 된 당시의 나에게는 택도 없는 제안이었다.


하루는 오밤중에 그녀가 부엌에서 뚝딱이길래 나가봤더니,

"쿠스쿠스 만들었는데 먹을래?"

하고 나에게 물었다.

"쿠스쿠스가 뭐야?"

"쿠스쿠스 몰라? 쿠스쿠스는 쿠스쿠스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조금 줄 테니까 한번 먹어봐."

그녀가 준 그릇을 받아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 본 쿠스쿠스는 딱 좁쌀 같이 생겼었다. 다른 점이라면 물만 부어놔도 금방 불어서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간편식품 중에 간편식품이다. 클라우디아는 크림소스에 비빈(?) 쿠스쿠스를 나에게 내밀었다. 맛도 딱 좁쌀을 씹는 맛이었다. 낯선 식감과 맛이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직접 만든 음식을 주는데 남길 수야 있나. 조금만 덜어 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쁘지 않네. 제법 맛있어."

한국으로 돌아와 어느 디저트 가게의 선반에 수입 식품을 널어놓고 파는 것을 봤다. 낯선 것도 익숙한 것도 있었는데, 그 사이에 쿠스쿠스가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가게의 디저트는 제쳐두고 쿠스쿠스만 냉큼 샀다. 찬장 한구석에 있는 쿠스쿠스를 볼 때마다 그때의 향수에 젖어 쿠스쿠스 봉지를 한참이나 들고 들여다봤더랬다. 하지만 역시 요리할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쿠스쿠스도 벌써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결국은 얼마 전에 쓰레기봉지로 가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며 인스타그램에서 클라우디아를 찾아보았다.(그렇다. 우리는 인스타그램 친구도 아니었을 정도로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클라우디아를 찾을 수 있었다. 몇 분 정도 고민한 끝에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봤다.

"Hi. Do you remember me? I'm Emily who stayed at your house for almost a year.(안녕, 나 기억나니? 나 너희 집에서 1년 정도 같이 살았던 에밀리야.) "

이 메시지를 보내고 답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얼마나 마음 졸였나 모른다. 하지만 10여 분도 되지 않아 그녀에게서 답신이 왔다.

"Hello dear! I am good!! How are you??❤️"

5년여의 시간을 건너 내 추억 속의 클라우디아가 현실로 튀어나왔다. 오밤중에 그녀의 답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인스타그램 친구로 서로를 팔로우를 하며 그녀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슬쩍 보았다. 사진 속 그녀는 여전히 우아하고 당당한 기백 그대로였고, 그녀의 옆에는 그녀와 같은 표정으로 환히 웃는 멋들어진 이탈리아 남자가 있었다. 몇 장의 사진만 보아도 그녀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나는 반만 믿는다.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언제 추락하나 주변에서 유심히 지켜본다고도 하지만 그 말도 반만 맞다.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지내야 나도 덩달아 좋은 에너지를 받고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 사진 속 그녀는 행복하게 장난스럽게 또 익살스럽게 웃고 또 웃었다. 그녀의 사진을 보며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여담으로 클라우디아와 함께 보며 낄낄대었던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다. 클라우디아의 집에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는데 둘 다 아주 귀엽고 애교스러운 친구들이었다. 클라우디아가 없던 저녁.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발코니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집 발코니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세 마리 고양이는 서로 가까이 가 인사를 하는 듯했는데, 갑자기 묘한 장면을 연출해 주어서 나는 얼른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클라우디아에게 보여주며 같이 웃었더랬다.

클라우디아네 고양이 두마리와 옆집 고양이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