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융프라우 탐방기
어떤 사건은 아주 작은 실수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때 조금 더 신중하게 살펴보고 판단할걸. 어쩌다 내가 이 상황까지 왔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땐 아무리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 것이다.
“융프라우 만년설에서 눈썰매를 타고 싶어!”
요즘에도 융프라우 전망대에서 신라면 인증샷을 찍는 게 유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스위스에 방문했던 2019년에는 융프라우 인증샷이라 하면, 만년설을 배경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신라면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졌다. 멀고 먼 스위스, 꿈같은 자연경관을 눈앞에 두고서 익숙하디 익숙한 컵라면에 물을 붓는 아이러니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도 그 비슷한 심리였다. 융프라우까지 와서 굳이 눈썰매를 타보고 싶었다. 나만의 키치함이었다.
눈썰매에 대한 대단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략해도 될 코스였다. 그래서 대충 두어 번 정도 타고 인증샷이나 남기고 갈 생각이었다. 융프라우 전망대 관광의 코스를 짤 때, 내부 안내도의 가장자리에 있는 곳부터 시작해 도장 깨기를 해 나가자 싶었다. 그래서 안내도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눈썰매장을 먼저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열차를 타고 융프라우 전망대에 도착했다. 융프라우 전망대 내 표지판을 따라 눈썰매장이 있다는 곳으로 걸어갔다. 외부로 통하는 무거운 출입구 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가니 만년설의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융프라우로 올라오기 전까지의 하이킹 코스는 왼쪽의 사진과 같다. 키가 작은 풀들이 무성하고, 밥 로스 아저씨가 그릴 법한 산맥이 시야를 가득 메우는 풍경이었다. 융프라우로 올라오는 열차를 제법 오래 타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풍경이 다르다니. 끝없는 만년설 설원의 장관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문자 그대로, 눈이 부시고 찬란하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눈밭에 신이 났다. 냅다 쭈구려 앉아 양손으로 눈을 가득 모아 움켜 잡고는 꼭꼭 눌러 눈 뭉치를 만든다. 단단하고 둥글게 뭉쳐진 눈덩이가 뭐라고 제법 마음에 든다. 옆에 내려두고 이번에는 조금 더 큰 눈뭉치를 만든다. 양손으로 두 개의 눈뭉치를 잡고 약간의 압력을 주어 서로 달라붙게 만든다. 눈사람이다. 드넓은 만년설 눈밭에 나의 눈사람은 땅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큼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치만 쌓인 눈을 보면 크기야 어떻든 눈사람 하나는 만들어 두어야 내 할 일을 다 한 듯 느껴진다.
다시 한번 눈을 꽁꽁 뭉친다. 나는 또 다른 눈뭉치 하나를 만들었다. 눈뭉치를 손에 쥐고 투수에 빙의해 최대한 팔을 휘두른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팔힘으로 가장 적절한 각도를 순간적으로 판단해 아주 멀리까지 던져본다. 그다지 멀리 가지는 않는다. 눈덩이는 내 시야 안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서른둘 먹은 성인이 눈밭에서 찾을 재미는 이 정도인 것 같다. 손을 털어내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눈썰매장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눈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 걸어가야 눈썰매장이 있는 건가?’
사람의 심리는, 아니 나의 심리라고 해 두자. 나의 심리는 가끔 참으로 어리석고도 웃길 정도로 어이가 없을 때가 있다. 잔뜩 신이 나서 여행지를 향해 운전을 하다가 도로에 차가 꽉 막혀 있으면 ‘이 차들도 다 거기(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가나?’ 싶은 생각이 들어 괜히 조바심이 올라온다. 그러면 블라인더를 찬 경주마처럼 내가 가고자 하는 그 방향만을 향해 온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것이다.
스위스는 처음 짰던 여행 계획에서 며칠을 덜어내야 할 정도로 물가가 비쌌다. 나는 비싼 값을 치르고 도착한 융프라우에서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 그래서 융프라우에서의 첫 코스였던 눈썰매장을 찾는 데에 판단력을 잃을 정도의 조바심이 났던게 아닌가 싶다.
‘그래, 저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눈썰매장이 나올 거야. 얼른 들렀다가 다른 데 구경하러 가야지.’
나는 앞서 만년설을 걷는 사람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여기부터가 시작이었다.
내가 처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만년설을 걷기 시작한 지 30분쯤이 지났을 때였다. 도대체 그때의 나는 왜 그리도 어리석었을까. 30분이나 되어서야 이상하다고 느끼다니.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처음엔 끝없는 눈밭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팔렸었다. 그리고는 뽀득뽀득 밟히는 눈의 질감이 좋아 한 걸음 두 걸음 계속 앞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가도 가도 눈썰매장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나 멀리 눈썰매장을 지어두면, 누가 가서 눈썰매를 탈 수 있겠어? 너무한 거 아냐?’
나는 내가 제법 끈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제법 고집도 있다. 이번에는 끈기가 나에게 독이 된 경우이고, 고집이 끈기에게 추진력을 제공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점점 오기까지 와서 붙었다.
‘그래, 저기 언덕만 넘으면 눈썰매장이 있을 것 같아. 저기까지만 가보자.‘
눈으로 보았을 땐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던 언덕이었다.
'언덕에 올라 너머를 내려다보면 눈썰매장이 어디 있는지 보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질 않았다. 길을 따라 양쪽으로 건물이 늘어서 있으면 건물의 수가 눈에 들어와서라도 거리가 가늠이 되기 마련이다. 평야는 달랐다. 내가 가늠한 거리와 체감되는 거리의 차이는 컸다. 그렇게 오기를 부리며 계속 걷고 걸었다.
그러는 사이 고도가 제법 높아졌고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나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등산을 자주 갔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경사를 따라 오르기 시작하는데 대여섯 걸음마다 숨이 차서, 멈추어 다시 숨을 고르기를 반복해야 했다. 고도가 높은 탓이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한라산의 정상 해발고도가 1,947m이다. 융프라우의 해발고도는 4,158m이고, 전망대에서 관광객이 경험하는 높이는 3,454m 정도라고 한다. 그간 고도를 따져가며 살진 않았으나, 내가 경험한 지형 중 가장 높은 고도임이 분명했다. 몇 걸음 만에 숨이 차는 것이 당연했다. 보통의 평지를 걷는 것과 비교하면 최소 10배는 느려진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몇 명의 관광객이 뒤에서 내 걸음을 따라잡았다. 그쪽에서 먼저 말을 붙여왔다.
“힘들지? 제법 고도가 높아.”
내가 대답했다.
“그러네요. 근데 눈썰매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예요?”
”글쎄.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는걸? “
실망스러운 대답을 남겨두고 한 그룹의 무리는 나를 앞질렀다. 여전히 헉헉대는 숨을 고르느라 주저앉았다가 무릎을 잡고 반쯤만 일어서 나를 앞지른 그들을 바라보았다. 제법 두꺼운 외투, 목이 길고 튼튼해 보이는 신발, 양손에는 가벼운 철제 지팡이 하나씩. 누가 봐도 중무장한 등산객들이었다.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이런,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여긴 눈썰매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야.‘
나의 실수를 깨달았을 땐 이미 눈밭을 걸은 지 한 시간 반정도가 지났었다. 나를 앞질러간 등산객들과 나의 차림새를 비교해 보았다. 나는 아이보리색의 여름용 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내가 아끼는 이 귀여운 운동화는 이미 눈길에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스키니 핏의 청바지도 길이가 덜름하게 짧은 데다 운동화에 맞춰 발목양말을 신고 있어 발목이 휑하니 다 보였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부르고도 남을 차림이었다. 내가 봐도 내 꼴이 어이가 없었다. 설원 하이킹 길에 여름용 신발이라니.
‘이제 어떡하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고민하다 핸드폰 사진첩을 열었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에 여행지에 대한 관광 책자를 몇 번이나 정독하는 스타일이다. 그중에서 정말 가고 싶은 곳은 별 세 개, 보통인 곳은 별표 한 개, 가고 싶지 않은 곳은 X자로 표시를 해 둔다. 여행지에서 짐을 늘리는 것은 부담되는 일이므로, 다음 날 여행지와 관련된 정보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관해 둔다.
사진첩에서 융프라우에 대한 내용이 있는 페이지를 찍어둔 사진을 찾았다. 거기에는 융프라우 하이킹 코스 4가지가 정리된 페이지가 있었다. 그중 내가 커다랗고 당당하게 X표시를 해 둔 하이킹 코스가 있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묀히요흐까지의 하이킹 코스, 만년설을 경험해 보세요.’
실로 아까운 일이 하나 생각이 났는데, 사실 내가 일 년간 유럽여행을 하며 읽었던 여행 책자들은 몰타에 전부 버리고 왔다. 정확히는 몰타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서였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아주 커다란 박스로 세 박스를 해외배송으로 먼저 한국에 보내두었었다. 덕분에 비행기 체크인을 하며 대형 캐리어 두 개를 초과금 없이 위탁 수화물로 부쳤다. 무게를 초과하는 나머지 짐은 내가 직접 이고 지고 기내로 들고 들어갈 셈이었다. 기내로 반입하는 것은 무게 제한이 없다고 알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지금 딱 한 번만 고생하면 이것들을 다 가지고 돌아갈 수 있어.'
굳게 마음을 다지고 기내용 캐리어 하나와 배낭에 각종 짐을 욱여넣었더랬다. 체크인 카운터의 승무원이 내 배낭과 캐리어를 보더니 무게를 달아보자 하였다. 나는 당황했으나 순순히 저울 위에 짐들을 올렸다. 승무원은 무게가 초과한다며 추가금을 안내해 주었다. 수하물에 대한 추가금 요구가 저가 항공사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들었고, 운이 나쁘면 이렇게 붙잡힐 수도 있다고 했다.(그렇지만 양심상 내가 보아도 내 짐은 과해 보이긴 했다.) 추가금이 제법 비쌌던 것 같다. 금액을 듣고는 곧바로 짐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었으니까.
나는 카운터의 승무원에게 wait a minute을 외치고는 근처 쓰레기통으로 가 내 짐을 다시 열어젖혔다. 이 중에서 뺄 수 있는 게 뭘까. 내가 덜 욕심나는 게 뭘까. 여행책자들을 버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간 꼼꼼히 메모하고 체크해 둔 나의 기록들은 아까웠지만, 책이야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사도 되니까. 책을 보다 보면 메모한 것쯤은 금방 다시 기억이 날 테니까.(그 후로 한국에 돌아가 여행 책자를 새로 사긴 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뒤져보지 않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캐리어와 가방 안 가득한 책들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책들을 버렸고 나의 책들은 공항 쓰레기통의 목 끝까지 찼다. 조금은 가벼워진 짐을 가지고 다시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다시 무게를 재어 보았다. 여전히 무게는 한참을 초과했다.
“그냥 가도 돼.”
카운터의 승무원이 말했다. 공항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짐을 뒤져가며 고민하고 또 버리는 나를 지켜본 승무원의 배려였다. 덕분에 나는 여행 책자를 희생하고 나머지를 지킬 수 있었다.
여담이 너무 길었는데, 아무튼 묀히요흐 산장까지의 하이킹 코스를 설명하면 이렇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까지 왔다면 스위스 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묀히요흐 산장(3,657m)까지 하이킹을 해본다면 어떨까? 고소증세가 별로 없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알레취 빙하를 직접 가로질러 걷는 것은 꽤 괜찮은 경험이 될 것이다(융프라우요흐에서 편도 약 1시간). 산장에서 가볍게 식사나 음료를 즐길 수도 있으며, 투숙도 할 수 있다. 대부분 산장에서 발레 주까지 빙하 하이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투숙한다. 숙박 시 사전 온라인 예약 필수.
- ‘스위스 셀프트레블(2024-2025)‘ 발췌
스위스 여행을 계획하며 하이킹은 두 세 코스 정도 계획해 두었었다. 그중에 묀히요흐까지의 코스는 안중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는 절대 가지 않아야겠다.'라고 웃으며 X표시를 커다랗게 해 두었던 것까지 기억이 났다. 여행 책자의 설명을 참고하자면 한 시간 반을 걸으면 산장이 나오고, 그 후엔 다시 출발지까지 같은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코스였다. 내가 계획한 하이킹은 열차나 곤돌라를 타는 대신 걷는 것을 택하는 식이었다. 내가 점찍어 둔 여행지로 향하는 길에서 교통의 수단만 바꾸는 것이었다.
스위스는 별거 없는 왕복 코스에 시간이나 체력을 소모할 여유 따윈 없는 여행지였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내가 이런 말을 쓰는 날이 오다니.) 정신 차려보니 절대 기피였던 그 하이킹 코스의 한가운데 내가 서 있는 것이었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내가 향하던 하이킹 코스의 남은 길과 내가 걸어온 길을 번갈아 돌아보며 고민했다. 그때 산 중턱에 덩그러니 있는 뫼히요흐 산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이없게도 나는 그 하이킹 코스의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 있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산장까지 가보자.‘
나는 30여분을 더 낑낑대며 걸어 올라가 결국은 산장에, 하이킹 코스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분명 여행 책자에는 한 시간~한 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는 코스라고 했는데, 나는 3시간이나 지나서야 도착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의지의 한국인, 끈기의 한국인이었다. 사진에 얼굴은 모자이크 해 놓았으나, 3시간여를 낑낑댄 것 치고 피곤함이 없이 밝은 표정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이지 후련했고 뿌듯했다.
인생이든 여행이든 마찬가지다. 매번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그 선택만이 나의 최선이라 판단하고 나아갈 수 있으나, 잘못된 방향으로의 최선이라면 예상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뫼히요흐 산장에는 내가 융프라우를 향하며 보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느끼고 싶었던 것에 대한 기대와는 다른 것들이 있었다. 융프라우 전망대라는 관광지의 잘 차려진 밥상을 여유롭게 떠먹을 요량이었지만, 결국은 내 밥상 내가 차린 격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나는 평생 잊히지 않을 여행을 남길 수 있었다. 가벼운 즐거움보다는 조금 더 밀도 있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기쁨이란 이미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고, 또 이미 경험해 본 사람들이 수두룩 한 것이기에 이 이상의 기술은 미학적으로 생략하겠다.
도착한 뫼히요흐 산장은 아늑했다. 산장 안이 무척 고요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던 것은, 더 이상 나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어서였을 것이다. 무척 허기가 졌던 나는 산장에서 굴라시 한 그릇을 주문했다. 굴라시는 김치찌개에 비견한다. 나는 굴라시를 신나게 먹고는 그대로 엎드려 잠들었다. 실은 기절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20분 정도 후 겨우 일어나서 다시 걸어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리막을 걷는 것은 수월해서 돌아갈 때는 1시간 남짓 걸렸다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눈썰매장은 어디에 있었던 거야?
어이없게도 눈썰매장은 출입구 바로 앞에 있었다. 하이킹 코스의 입구에 말이다. (필자가 메모한 위의 사진들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다.)
‘어떻게 코 앞에 있는 걸 모르고 지나칠 수 있어?’라고 물으신다면... 내가 아는, 내가 상상한 눈썰매장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공교롭게도 내가 눈썰매장 옆을 지날 땐 눈썰매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눈썰매도 사무실로 쓰는 천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저 얕은 언덕배기도 되지 않는 곳을 눈썰매장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한국의 눈썰매장은 저렇게 어설프지 않아!!라고 소리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쨌든 그리도 찾아 헤맨 눈썰매장에 도착했다. 융프라우 전망대의 출입문을 나선 지 다섯 시간 만이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아무리 지쳤어도 억울해서 눈썰매 한 번은 타고 가야겠다.'
정작 눈썰매는 10분도 타지 않았다. 서른두 살 어른은 눈썰매도 두어 번 타면 질리는 것이었다.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어이가 없어 속으로 피식 웃었다. 내가 찾아다닌 건 사실 대단한 ‘눈썰매’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저 ‘내가 기대했던 여행’에 도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든 여행이든, 계획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의 치명적인 실수로 시작된 하이킹 길에서 나는 가장 생생한 여행의 기억을 만들 수 있었고, 묀히요흐 산장에서 느낀 아늑함이 내 삶에서 '아늑함'의 기준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눈썰매장까지 오는데 걸린 다섯 시간이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이상하게 참 좋다. 누군가가 융프라우에서의 여행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젊을 때 고생, 사서 하는 거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