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에피소드

L선생님과의 이야기

by 이현

"선생님, 저 이따가 IELTS 스피킹 테스트를 치러 가는데 너무 긴장돼요."

만약 여러분은 서른두 살이나 먹은 학생이 토익 시험을 치러 가는 게 너무 긴장된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 줄 것 같으신가(요)? L 선생님은 잔뜩 긴장해 벌벌 떨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Honey, 바에 가서 맥주 한 잔 마셔. 지금 짐 싸서 가렴. 수업은 신경 쓰지 말고.(윙크)"

시험 직전에 술이라니.

그리고 응원의 말을 한마디 덧붙여주었다.

"긴장하지 마. 잘 해낼 거야. 너는 내 학생이잖니. 내가 널 잘 알아."

선생님은 영화에서나 들을 법 한 대사들을 잘 읊었다. 현실에서 영화 대사 같은 말들만 하면 자칫 가볍고 공수표만 던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가 하는 말이나 조언에는 항상 현실을 관통하는 뾰족함이 있었다.

선생님을 떠올리면 항상 윙크하던 얼굴이 먼저 생각난다. 아침 인사에도 윙크, 수업 중 멍 때리다가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윙크, 내가 틀린 대답을 했을 때도 윙크. 그녀의 윙크는 항상 나에게 'It's OK.'로 들렸다.


그녀는 남아공 출신의 백인이었다. 남아공에서의 백인의 입지와 역사, 현 상황에 대해 간략히 들은 적이 있는데, 영어로 들었던지라 반만 이해했었다. 문맥들을 대충 끼워 맞춰 마음으로 이해해본 선생님의 스토리는, 그녀는 진정한 본인의 삶을 찾아 기나긴 인생의 여행을 했고, 현재 몰타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주 이상적인 선생님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이상적인 스승이었다. L 선생님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항상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본인의 역량 내에서는 어느 정도 해결해주기도 했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예를 들자면, 몰타로 어학연수를 왔지만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서는 수업이 끝나는 시간보다 몇십 분씩 일찍 나갔어야 했는데, L 선생님은 그 정도는 기꺼이 눈을 감아주었다. 그녀는 항상 어학원 소속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인생 선배로서 위치에서 학생들을 보살피고 감싸주는 결정을 했었다.

어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은 대다수가 성인인 데다가 평균 연령도 제법 높은 편이었다. 같은 반 학생들을 살펴보자면, 나처럼 현실도피를 하고 몰타로 도망쳐 온 어엿한 성인들이 각국에서 몰려든 모양새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 불문하고 L 선생님 앞에서는 모두 좋아하는 선생님 뒤만 따라다니는 유치원생 같았고, 한편으로는 할머니댁에 방문한 손자, 손녀들 같았다.


물론 나도 그녀의 광팬 중 하나였다. 그녀는 내가 몰타 일년살이를 하며 맺은 인연들 중 여전히 그리운 사람이며, 그 당시에는 나의 워너비였던 사람이다. 오늘은 이런 말도 안 되게 쿨한 L 선생님과의 에피소드를 몇 가지 기록해두고자 한다. 그리고 사실 지난 에피소드(걸어서 몰타 한 바퀴)를 쓰며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다 토해내어 한동안은 더 토해낼 이야기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이번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이다. 오늘은 힘을 빼고 조금 가볍게 가보고 싶다.


Ghost in Malta

몰타에서 한번 심한 악몽을 꾼 적이 있다.

아주 키가 큰, 키가 크다고 표현하기엔 비정상적으로 길쭉한 할머니 귀신이 꿈에 나왔다. 키는 3미터쯤 되는 것 같고 팔다리도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그 할머니 귀신이 나와 마주 선 상태에서 나를 양팔로 꽉 안아 나를 못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는 그 순간 할머니 귀신에게 나도 모르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우리 엄마도 알고 있나요?"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할머니 귀신의 대답이 아주 소름 돋았다.

"지금 너희 엄마도 잠을 자고 있다면,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을걸?"


다음 날, 나는 하우스메이트이자 집주인이었던 클라우디아에게 전날의 꿈 이야기를 해 주었었다. 클라우디아는 나에게 물었다.

"그 할머니 귀신이 한국어로 말했어, 영어로 말했어?"

사실 꿈에서의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졌었지만, 그렇다고 대답하면 클라우디아에게서 너무 무서운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한국어였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클라우디아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신경 쓰지 마. 별 거 아닌 꿈이야."

영어였다면 신경 쓸만한 일이라는 건가? 나는 더 무서워졌다.


그리고 어학원에 와 지난밤 꿈에 대해 L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이 대답했다.

"몰타에 귀신이 많아.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집엔 아무도 없었고 나 혼자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 허벅지를 찰싹 때리지 뭐니? 나도 정말 소름 끼쳤다니까."


세상에. 이렇게 진지하게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다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꿈이 그저 개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공포심에 휩싸였다. 정말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이 날 만큼은 학생들의 이야기에 진심이신 선생님이 조금은 미웠다. 대충 '별거 아냐. 신경 쓰지 마.'라고 해주시길 바랐는데. 흑흑.

그 후로 나는 며칠 동안 방 불을 끄지 못하고 잤었더랬다.


그녀의 선인장

"It's a cactus.(선인장이네.)"


학생들의 시선은 선생님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어느 학생의 티셔츠에 선인장 하나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선생님은 이어 사과를 했다.

"수업 중에 갑자기 미안해. 저 선인장을 보니 내 딸이 생각이 나서."


'아, 선생님에게 딸이 있었구나.'

선생님에게 직접 나이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40대의 어디쯤이 아닐까 추측했다. 서양인이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처럼 반대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오래전 이혼을 한 후 딸과 둘이서 살고 있는데, 그 딸이 요즘 사춘기에 반항기라며 한숨을 토해내셨다.


"시시콜콜 아주 뾰족한 것이 마치 저 선인장 같아. 요 근래 딸아이와 교류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 요즘 아이들은 양성애자로 자칭하는 게 유행이라더라. 내 딸아이도 그런 말을 하던데, 나는 그런 요즘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아."


라며 한동안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그 모습이 어쩐지 우리가 알던 선생님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선생님에게도 자식문제는 어려운 숙제인 모양이었다. 당시 미혼이던 학생들은 선생님께 어떤 위로를 해 드려야 할지 몰라 그저 어색한 표정으로 숙연한 분위기만 이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남자친구

어학원 선생님들의 대부분이 학생들과의 사적 교류는 피하는 편이었으나, L 선생님만큼은 달랐다. 스케줄이 맞으면 학생들과의 식사 약속이나 파티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한 분기의 클래스가 끝날 즈음, 역시나 이탈리아 친구 하나가 자기 집에 반 친구들과 선생님을 초대했다.


그 동네 파티는 신기하게도 약속 시간에 대한 엄격함이 없는 듯했다. 저녁 7시에 만나기로 했음에도,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이나 지난 뒤에 오기도 했다. L 선생님도 한참 뒤에야 느긋하게 등장하셨다. 커다란 리트리버 한 마리와 또 그에 버금가는 남자친구와 함께.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 혹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선생님의 남자친구는 뽀글거리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도 평소 패션이 에스닉하고 히피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남자친구는 그야말로 히피 그 자체였다. 겉모습만 봐서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선생님과 당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 내가 사랑에 대한 편견이 있었구나. 지극히 한국적인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구나.'


남자친구분의 첫인상에 당황한 나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그 둘은 서로에게 아주 다정했으며 행복해 보였다. 혼자서 괜히 머쓱해진 나에게 그분이 자연스레 자기소개를 했다.

말을 걸어오는 그의 눈빛이 선생님의 눈빛과 아주 닮아 있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영혼과 잘 맞는 또 다른 영혼을 잘 찾아내셨구나. 선생님답다. 그 둘은 그야말로 영혼의 단짝. 소울메이트였다.


그녀의 쿨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선생님은 '오는 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다.'는 말이 떠오르게끔 하는 사람이었다. '오는 사람을 안 막는 것'보다 '가는 사람을 안 붙잡는 것'이 더 힘들 것 같지만, 선생님을 보면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선생님을 마다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오는 사람'에게 모두 한없이 너그럽고 친절한 선생님의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인간관계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있을진대, 선생님은 그게 무한대인 듯했다. 학생들의 애정표현, 호의, 연대감을 모두 받아주었다. 선생님에게 '부담스럽다'는 단어는 없는 듯했다. 대단한 포용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때때로 어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듯 보일 땐 기꺼이 나서서 본인의 상사(어학원의 관리직)와 언쟁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학생들끼리 예의가 없거나 인종차별적인 말이 오갈 땐 아주 단호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꾸짖기도 하셨다. 덧붙여 쉬는 시간에 따로 불러 다정하게 타이르고 움츠러들었을 가해자의 마음도 어루만져주는 세심한 분이셨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살면서 언제 가장 당황하고, 화가 나고, 절망스럽다 느낄까?'

모르겠다. 영화의 주인공이 다음 장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이 가지 않는 것처럼.

들어 둔 건강 보험이 없을지라도, 당장 해고 당해 생활비가 떨어지더라도, 누군가에게 지독하게 미움을 받을지라도. 선생님은 그게 무어든 삶이 주는 구속보다 고차원에서 초연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You are serene."

"너는 아주 고요한(평화로운) 사람이야."

어느 날 L 선생님이 나를 지긋이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매우 연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항상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리고 당황해서, 심지가 굳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살았다.

'나는 갈대야. 바람에 세차게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진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을 위안 삼아 평생을 살았는데. 그런 내가 마음의 고요함을 갖고 있다니(serene는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내가 강한 사람이라니. 그런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선생님은 도대체 나에게서 무엇을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하지만 선생님이 여태 틀린 말 하시는 거 본 적 있어?'

그날 이후로 'serene'는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한, 나를 표현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순간을 계기로 나는 스스로를 내가 알던 것보다는 조금 더 강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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