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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폭력이야

스무 번째 유성 한 조각

by 엔키리 ENKIRIE


이 이야기의 시작부터 함께한 독자들이라면, 아마도 내 자매가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어느 정도 기억할 것이다. 그중 가장 서두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기억하려나.


나는 결국 어머니와 언니의 의견으로 인해 내 이름을 둘째 삼촌이 사업을 하는 건물에 저당 잡혔다. 그리고 그들은 '건물 값이 오를 거다'라는 주장을 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꾸준히 정당화했다. 하지만 결단코 주장하건대. 나는 그 건물에 내 명의가 묶여있던 동안. 단 하루도 단 한 해도 편안한 한 해를 보낸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어머니에게 꾸준히 말했다.


'제발 삼촌 건물 팔아줘.'

'부동산에 삼촌 건물 내놨어?'

'내 명의 좀 빼줘. 이모나 막내 삼촌더러 아니면 다른 가족들더러 가져가라고 해.'

'내가 들어간 돈 안 줘도 되니까 제발 명의만 빼줘.'


이미 '삼촌 건물'이라고 지칭하는 상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나는 어머니의 주장인 '넌 이름만 있는 거고, 나중에 삼촌 사업이 잘되면 다시 가져올 거야.'라는 말처럼. 그리고 실제로 둘째 삼촌이 계속해서 자신이 건물주인 양 은행과 부동산 직원들에게 기행을 벌인 것처럼.

내 스스로도 이미 그 건물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실시하며 발언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사정하고, 또 어떤 때는 울며 빌듯이 말했지만. 결국 그들은 그 건물에 묶어놓은 내 명의를 돌려주지 않았다. 정확히 그 건물의 명의가 내게 온 지 10년이 되던 해에. 내가 그들을 경찰에 신고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달을 함께 만들어낸 장본인인 언니는.

내가 저 지경이 되고서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부모의 금전적 지원을 고스란히 받으며. 사법고시와 로스쿨 준비, 변호사 시험 등에 도전했다.


그녀는 자신이 원치 않던 명문대 법대에 아버지 때문에 갔노라고 주장하며. 꾸준히 어머니와 아버지를 탓을 하며, 계속해서 아버지가 어떻게든 자신을 지원하도록 했다. 그로 인해 고작 공무원 5급 미만이었던 나의 아버지는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혹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어떻게든 하는 사람처럼. 언니의 원망을 꾸준히 감내하며 언니를 지원해 주기에 급급했다.


나는 분명 기억하고 있다.

언니가 아버지의 신용카드로 법 공부를 위한 교재비, 학원비를 결제하거나, 헬스장 비용을 결제한 적도 있고, 노트북 비용, 성형수술 비용 등을 지원받은 적이 있으며, 학 학교당 25만 원이나 하는 로스쿨 면접 비용도 여러 차례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아마도 경제관념이 명확한 사람들이라면 짐작할 것이다.

해봤자 7급에서 6급 밖에 안 되는 공무원이 서울 명문대, 그것도 사립대학교 법학과를 다니는 자녀를 지원한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심지어 그 딸이,


"맨날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며 사법고시 공부하는 애들처럼 그렇게 찌질하게 다니고 싶지 않아!"


라고 외치며. 대학생 때부터 연극이나 뮤지컬 관람을 즐기고. 어느 정도 브랜드 가치가 있다고 알려진 백을 들기 위해 노력하고. 매 학기마다 사법고시 준비를 한다는 이유로 휴학 혹은 한 학기에 2~3과목만 듣는 행동을 반복하며. 대학교 졸업까지 근 8년이 걸렸다면. 그리고 그 학비와 교육비 등을 고위 공무원도 아닌 공무원이 온전히 자신의 급여로 부담해야 했다면. 그게 얼마나 큰 부담과 어려움이었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자신이 변호사가 되려고 공부를 하는 동안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계속해서 아버지를 힐난하고 주변에 말도 안 되는 허언을 퍼뜨리고 다녔다. 그래서 친척들은 모두 언니의 말을 듣고, 아버지가 그녀를 제대로 지원도 해주지 않은 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만들 줄 잘못 알고 있다.


그렇게 법 공부와 그 분야가 싫었다면, 언니 본인이 그만두고 다른 분야로 취업을 해도 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언니가 졸업한 명문대 법대면 어느 정도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기에 유리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언니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고. 그걸 모두 아버지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꿋꿋이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그녀는 자신이 과외 알바를 했어야 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법 공부를 했던 세월에 비하면, 그녀의 과외 알바 기간은 현저히 짧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조차도 억울하다고 호소했었다.

다른 집들처럼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하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합격이 더 늦어지는 것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결국 나의 부모라는 사람들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자신들의 숙원 사업을 이룬다는 명목 하에. 공들이고 정성 들여 괴물을 키워낸 것이다.


내가 언니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비단 지금까지의 얘기 때문만이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그녀의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기에.


2009년 8월 18일. 내가 적은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아파트 2층에 살고 있었고, 엘리베이터를 따로 신청하지 않아서 주로 계단으로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나는 집안 살림 문제로 언니와 여러 차례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사법고시 준비를 하겠다고 선언한 언니의 예민한 상태로 인하여.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다 같이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언니는 화가 날 때마다 갑자기 나에게 화를 내며, 어깨를 밀치는 폭력 행위를 하였다. 폭행죄에도 명시된 것처럼 상대의 어깨를 밀치는 행동은 명백한 폭행 범죄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나를 그렇게 때릴 때마다, '때리지 마. 이렇게 치는 것도 폭력이야!'라고 주장했지만. 법을 공부한다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이게 무슨 폭력이야? 어깨를 밀치는 것뿐이거든?'이라는 가해자의 비합리적인 정당화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설거지 문제로 언니와 갈등이 있었고, 집을 나서기 위해 2층에서 나가고 있던 찰나에. 집에 들어오던 언니와 마주쳤다. 그녀는 화가 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었기 때문에 2층 계단에서 날 밀치기 시작하더니, 내 손목을 움켜쥐고 집에 끌고 들어가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따라 들어와! 말이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


위험천만한 행동을 서슴지 않으며, 그렇게 또 내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나는 당시 학교에서 폭력이 나쁘다는 내용 등을 배우고 있었고, 마침 내가 파트타임 일을 하는 기관도 법 관련 기관이었기에. 그녀에게 매번 맞기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폭력을 행하는 가해자들이 특히 더 그랬다.

피해자가 당해주면, 자신들이 옳은 줄 알고 더욱 가열찬 폭력을 행사하는 것.


언니라는 존재의 폭력은 그 수위가 점점 높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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