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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번째 유성 한 조각

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by 엔키리 ENKIRIE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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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거듭될수록 언니의 폭력은 언어폭력뿐만 아니라 신체적 폭력까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개인상담을 받을 때 가족치료도 전공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실 형제끼리 다투는 건 부모 책임이 가장 크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나에 대해 점점 탐색해 보며, 교수님의 그 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부모는 나와 언니를 끊임없이 비교했다.

  외모에서부터 성격, 학업 문제, 친구 관계는 물론이고 사회적 모습과 직업 그 모든 것들을.

  어렸을 때는 별생각 없이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어머니고 아버지고 둘 다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저 지적과 비판들 뿐. 어쩌다 들려오는 칭찬이라고는 부모의 욕심을 채워줬을 때였을 뿐이었다. 나의 성취나 업적이 부모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해 줄 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언니는 다툴 때마다, 서로 부모가 자신들에게 했던 상대 자매에 대한 험담을 방패 삼기도 했다. 한 마디로 오십 보 백보의 다툼이었던 것이다.

  다만, 모든 잘못에는 경중이 있듯이 나와 언니 또한 다툴 때 큰 차이가 있었는데.


  나와 언니의 다툼의 거의 모든 시작은 언니로부터였다.

  그녀는 곧잘 욱하는 성격이었고, 그럴 때마다 종종 나에게 갑자기 화를 내거나 내 어깨를 거세게 밀치듯 치는 일이 잦았다. 내가 그 싸움의 장소를 벗어나려고 하면, 내 몸이 크게 휘청일 정도로 거칠게 잡아 끄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주장은 항상 똑같았다.


'난 너 때린 적 없는데? 밀쳤을 뿐이야!'

'야! 잡아당긴 게 어떻게 때린 게 돼!'


  생각해 보면 그래서였던 것 같다. 누군가 몸에 닿는 내가 극도로 꺼려했던 이유가.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에 탈 때도 누군가 내 몸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나도 모르게 기피하게 됐는데. 싸울 때마다 언니가 휘두르는 폭력 때문에 누군가 내 몸에 닿는 게 무의식 속에서는 위협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큰 사고가 터지고야 말았다.

  정확하게 기억하기 어려운 어느 날에 말이다.


 




  나의 일기장에 적혀있는 기억의 편린들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약간의 기억을 회상해 보면 이랬다.

  나는 외출을 하던 중 다시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 여느 때처럼 집으로 돌아갔고, 그날 무슨 일이었는지 분노해 있던 언니가 집 번호키를 뺀 채 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었다.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챙겨 나와야 했던 내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몹시 곤란했고, 그거에 대해 언니에게 항의했지만, 언니로부터 돌아온 말은 이랬다.


"엄마도 너 집 나가라고 했어! 그니까 나가! 들어오지 마!"


  그 이후, '이 집이 언니 거냐, 엄마랑 아빠 명의다, 문 열어라!'라고 외친 나와 '엄마는 너 집 나가라고 했다! 명의자인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라고 우기며 문을 열어주지 않던 언니와의 대치가 지속됐다.

  결국 화가 나기도 했고, 급하기도 했던 내가 어머니에게 전화했지만, 어머니는 그 상황에서의 내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거나 언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 어머니가 꾸준히 회고하기를.


'그때 엄마가 너네 때문에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알아? 다른 사람들하고 다 같이 있는데, 다 큰 딸들이 서로 문을 열어주네 마네로 싸우고 있다니! 어휴 진짜 내가 창피해갖고. 그때 OO(막내이모)한테 연락해서 너네 있는데 가서 문 열어주라고 시킨 것만 해도. 지금 생각해도 창피해!'


  당시 언니의 잘못은 물론이지만, 어머니의 잘못된 말버릇으로 인해 언니가 그렇게 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도, 어머니는 매번 자신이 마치 정의롭고 공정한 판사인 것처럼 행동하고 싶어 했기에 '너네 둘 다 똑같다.'라며 내 입을 막아버리고는 했다.

  언제나 그랬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자신들이 언니에게 나에 대해 악평을 할 때마다, 언니가 그걸 빌미로 날 괴롭혔다는 사실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았다. 


'엄마 친구들도 수아 치료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고 했어!'


  내가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자퇴한 후, 그 사건을 몰랐던 어머니 주변 분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언니는 그걸 빌미로 내게 종종, 나와 다툴 때마다, '너 정신병 있는 거 아니냐'라고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막말 못해서 참는 줄 알아? 나는 너한테 네가 교수한테 성추행 당했던 일도 네가 어떻게 했길래 그 짓을 당하냐라고 할 수도 있어!'


  언니와 말다툼을 할 때 계속 날 밀치고 위에서 했던 막말을 퍼붓던 언니에게 내가 '언니 상담사가 이런 사람이 우리 사회의 중역을 맡을까 봐 걱정된다고 했어!'라고 받아쳤더니, 언니는 또 저렇게 더 큰 폭언으로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물론 그 후에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내가 먼저 자기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자기가 저렇게 말한 거라는 언니의 합리화로 인해. 무엇보다, '너도 언니한테 인성에 대해서 뭐라고 했다며.'라는 말로, 언니의 막말과 폭행을 정당화하던 어머니의 태도로 인해. 


  그렇게 발생한 사건이 저것이었다. 언니의 번호키 해체 사건.

  그 후 이모가 와서 문을 열어준 건지, 어머니가 언니에게 전화해서 문이 열린 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문이 열린 틈을 타서 들어가려고 했고, 그 상황에서도 언니는 내 몸을 자신의 온몸으로 밀치며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언니와 나의 체급 차이는 상당했다.

  당시 나는 키 166cm에 몸무게가 50kg이었고 전반적인 체격 자체가 왜소했으며, 언니는 171cm에 60kg이 훌쩍 넘어가는 체급에 덩치도 꽤 있었으니까. 도저히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결국 내 몸은 아파트 복도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있는 힘껏 집 밖으로 날 밀쳐낸 언니로 인하여.


"하하! 꼴좋다!"


  내가 고꾸라진 모습을 보며 비웃던 언니의 웃음과 말. 

  그런데 무슨 힘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그동안 응축된 분노의 힘이 엄청났던 것 같다. 아파트 복도는 돌로 바닥이었고, 나는 자빠져서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날 비웃는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떻게든 일을 하기 위해 내 물건을 챙겨서 다시 나가야 했기에 그렇게 몸을 일으켜서 그대로 문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재빠른 내 행동에 놀란 언니가 집 안으로 뒷걸음질 치는 듯하다, 다시 나를 막아섰다. 내 어깨 한쪽과 팔 한쪽을 잡아채며 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또다시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나가!! 나가라고!!"


  순간이었다. 머릿속에 며칠 만났던 고등학교 선배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수아야, 너 그거 아니? 단증 이런 거 다 쓸모없어. 언니가 합기도 유단자잖아. 근데 우리 사범님도 그랬거든. 머리채.'

'네? 뭐라고요, 언니?'

'머리채 말이야, 머리채. 왜 드라마 같은데 보면 막 아줌마들이 서로 머리채 잡고 안 놔? 안 놔? 하잖아. 하하하. 그거 되게 정확한 거야. 우리 인간의 중심이 여기 머리 중심에 있거든.'

'아, 진짜요?'

'하하. 진짜라니까. 그니까 그 사람들 싸움이 괜한 싸움이 아닌 거야. 나도 사범님이 시범 보여준다고 머리채 잡게 시켜서 해봤다니까!'

'아? 하하하! 세상에!'


  그래서 잡아챘다. 손을 잽싸게 들어 올려, 언니의 머리채를.


"아악!!"


  과거에도 지금도. 내 삶에서 누구의 몸에도 손 대본 적이 없지만, 그날 언니의 행동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폭력이었다. 그전에도 종종 어깨를 밀치거나 팔을 낚아채는 등 해서 내 몸에 빨간 자국이나 멍 자국이 남을 때가 많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똑같이 돌려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상황은 차원이 달랐다. 

  온몸이 돌바닥 위에 내동댕이 쳐진 상황. 이상 몰릴 곳도 없다고 느낄 정도로, 벼랑 끝 절벽 아래로 한 없이 내던져지는 느낌이었기에.


"놔!! 이거 안 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치는 언니. 

  하지만 나는 놓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먼저 놔. 그럼 놔줄게."


  남들이 볼 때는 우스워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침착했다.

  체급도 불리하고 누구와 신체 다툼을 해본 적도 없는 내게는 유일한 희망의 동작이었다. 

  그래서 언니가 비명을 지르며 바둥대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렸다. 그리고 말했다. 조용히 읊조리듯. 머리채를 손을 풀지 않은 채 말이다.

  뒤늦게 언니도 머리를 잡아채려고 했을 때는 이미, 나는 머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언니가 머리 중심부를 절대 잡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으니까.


  그렇게, 나가떨어졌다. 언니가.


  그 후 나는 무사히 내 짐을 챙겨서 일을 나갈 수 있었고, 한동안 언니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정당방위였다. 특히, 성공한 방어법.


  어찌 되었건 그 후 언니가 다툴 때마다 내 몸에 손을 대던 행위는 거짓말처럼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맨날 쫓아다니며 화를 내던 사람이, 그 후로부터는 싸울 때마다 나에게서 떨어진 채, 안전거리를 유지해 놓고 소리만 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생에 처음으로 내가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가족들의 끊임없는 폭력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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