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유성 한 조각
어머니의 기억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언니에 대한 일화가 더 있지만, 이번에는 내 기억 속 그녀에 대해 꺼내보고 싶다.
초등학교 때 일이었다.
당시 학교에서 단체로 아이큐 검사를 했는데, 나는 그게 그런 검사인지 몰랐다.
학교에서도 공부 보다 친구들하고 노는데 더 관심이 많다 보니.
때때로 나는 선생님들의 말을 놓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후다닥 검사지를 끝내고 담임 선생님에게 갖다 드리니.
선생님의 표정이 상당히 안 좋았고, 다시 해오라고 돌려보냈다.
물론 내 대각선 앞자리에 있던 친구 한 명도 ‘너 진짜 그렇게 내도 돼?’라고 물었지만.
난 그저 ‘어. 다 했는데.’라고 답변했을 뿐. 그리고 선생님이 돌려보내서 다시 돌아왔을 뿐.
결국 아무리 요리조리 살펴봐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서.
그냥 하는 척 시늉만 하다가, 애들이 하나둘씩 점차 갖다 내기에.
이제는 선생님도 돌려보내지 않겠다, 싶을 때에 갖다 냈다.
그리고 며칠 뒤 집에 전화가 왔다. 그 검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수치가 몇이었더라. 아마 120이 넘었던 걸로 기억하고.
당시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전화한 이유가 ‘수아가 아이큐가 높게 나와서’ 칭찬을 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물론 어머니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았던지, 나의 검사 결과지를 갖고 담임 선생님이 칭찬하던 또 다른 말들도 늘어놓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기뻐하시니 그저 좋았다.
그래서 가만가만 듣고 있었는데.
"봐봐!"
언니가 끼어들더니.
"헹. 그래봤자 EQ는 내가 더 높네. EQ가 높은 게 더 좋은 거랬어!"
순식간에 내가 받는 칭찬을 뭉개버렸다.
마치 아무 힘없는 장난감 인형을 짓밟듯이.
"야, 정수아! IQ는 아무리 높아봤자야. 나중에 또 달라지기도 하고. 그니까 잘난 척하지 마."
"…."
다소 당황스러운 언니의 덧붙임 말.
그런 그녀의 의기양양한 태도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있던 나. 그리고 그 옆의 어머니.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저 그렇게 동생에게 경쟁하듯 하는 언니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언니를 보며 다정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IQ와 EQ의 차이를 몰랐고, 그래서 그냥 언니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멀뚱멀뚱. 언제나 그랬다.
"흐어어엉! 왜! 왜 맨날 수아만 칭찬해 주는데! 나는 맨날 백점 받아와도 칭찬 안 해주면서!! 수아가 백점 하나만 맞아도 치킨도 사주고 칭찬도 해주고! 왜! 왜 수아만!"
이건 언니가 울면서 자기가 차별당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에 대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항변은 '수아가 지 언니보다 공부를 못하니까 기죽을까 봐. 한 번씩 백점을 받아오면 열심히 칭찬해 줬다.'라고.
"정수아 못 들어오게 해!! 쟨 입이 너무 싸!!"
이 말은 초등학교 때 언니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판 싸우고 은근 따돌림을 당했던 시기의 말.
굳게 닫힌 안방 문 앞에서 나 혼자만 들어가지 못하기에 문을 두드렸더니.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비밀을 말하고 다닌 적도 없는 내게, 언니가 저렇게 우기던 말. 그렇게 며칠 동안은 어머니와 언니의 둘만의 시간이 이루어졌고, 당시 타지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는 이 상황을 전혀 몰랐다.
그러니 결국 집에서 나 혼자 항상 외톨이 같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을 수밖에.
"야. 너, 네가 얼마나 이상하게 생긴 줄 알아? 내 친구들도 너보단 내가 낫다고 했어."
"뭐?"
"넌 얼굴도 너무 작고 어깨도 너무 좁아. 고등학생이나 돼갖고 초등학생 사이즈를 입는 게 말이 되냐?"
오랜만에 셋째 고모네가 놀러 와서 가족들이 다 같이 저녁 외식을 하러 나가던 길.
식당을 찾아 걷고 있던 내게 뜬금없이 던져진 언니의 말.
어느 날부터 시작된, 나의 외모를 끊임없이 비하하는 그녀의 가시 돋친 말들.
우스운 건, 그 와중에도 나는 언니에게 단 한 번도 외모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성인이 되었을 때 단 한 번, 언니가 건강이 상할 정도로 살이 쪘기에 '언니 이제 살 좀 빼.'라고 했더니.
"정수아 쟤가 맨날 나보고 살쪘다고 뭐라고 한단 말이야!! 쟤가 내 외모 갖고 뭐라고 했어!!"
라며, 마치 내가 지속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지적한 것처럼 주장하던 언니의 말.
나와 아버지가 자신의 외모를 갖고 뭐라고 했다며, 그래서 자신이 살을 빼야 하고 외모도 관리해야 한다며.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헬스장 이용비를 받아갔더란다.
덕분에 어머니에게 혼나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언니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그리고 언니는 언제나 그 말도 잊지 않았다.
"정수아는 나를 존경하지 않아! 내가 언니인데!! 맨날 날 무시한단 말이야!"
사실 이 말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내가 언니를 무시한다고 하기에는 애초에 내가 언니에게 먼저 말을 건 적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며, 급격하게 나는 언니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계속 나를 공격한다는 걸.
그래서 본능적으로 기피했던 것 같다. 그녀와의 소통을.
그러니 집에서건 밖에서건 딱히 언니에게 아는 체를 안 했을 뿐이지만.
그러한 내 태도에 대하여 내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주장하던 언니.
그리고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형제자매 간에 서열이 정해져 있는 건 알겠지만.
동생은 형이나 언니, 오빠나 누나를 존경해야 하는 관계여야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도.
그녀의 주장 중 내게 설득력이 있었던 말은 거의 전무하다고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