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유성 한 조각
어머니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언니와 나에 대한 일화는 몇 가지가 더 있다.
아주 어렸을 적, 나는 그때의 내 나이를 정확히 모른다.
다만, 어머니가 말하길.
"네 언니는 네가 물을 달라고 하니까, 보온병에 있던 물을 따라준 거야. 근데 실수로 네 다리에 붓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지.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어. 너도 그렇고 너네 언니도 막 엄청 울어 제끼는데…."
펄펄 끓는 보온병의 물을 내 다리에 부어버린 언니.
그로 인해 평소 자주 가던 병원에 가서 응급 수술까지 했어야 했던 나.
화상이 너무 심각해서 그때의 흉터는 아직도 내 발목에 남아 있다.
"그때 엄마가 얼마나 창피했던지. 넌 무슨 애기가 어디서 배웠는지. *발, 저팔하며 의사 선생님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니까? 손대지 말라고 죽여버리겠다고… 평소 널 엄청 예뻐해 줬던 의사 선생님이라서 엄마가 얼마나 더 창피했는지 알아? 아주 병원이 떠나가라 악을 그렇게 써대는데…"
언제나 그랬다.
내가 아팠던 순간마다, 그로 인해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를 지르면, 어머니는 그걸 몹시 창피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애가 아픈데 당연하지! 눈에 뵈는 게 어딨겠어. 애 엄마가 돼서 그걸 창피하다고 하면 어떡해!"
화상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어떠한 마취도 없이 급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던 수술.
그러한 상황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고통에 못 이겨 악에 받친 어린 딸이 한없이 부끄러웠다던 어머니.
또 잊지 않고 덧붙이던 말.
"너네 언니가 뭐가 잘못이 있었겠냐. 그냥 동생이 물 먹고 싶다고 하니까 따라주려다 그런 건데."
아무리 내가 크게 다치더라고, 나를 다치게 한 사람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던 어머니.
"네 언니 손등에 남은 흉터 기억 안 나? 그것도 너네 언니가 너 달고나 해준다고 하다가 데인 거잖아."
그렇게 어머니의 주입식 교육과도 같던 그 말 덕분에.
"야! 내가 너 달고나 해주려다가 상처 난 거 기억 안 나? 그리고 어렸을 때 물도 그렇고! 난 항상 널 위해서 뭘 해주려고 했을 뿐이야! 그러다가 실수 좀 한 거뿐이라고!"
언니 또한, 당신이 내게 무슨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 모든 걸 그저 ‘실수’라고 주장하고는 했다.
그러니 삼촌 건물에 내 이름을 묶어 놓고, 그 또한 날 위한 것이었다는 사고를 끝까지 굽히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부모의 말’이라는 게 그랬다.
무의식에 강력하게 남아서 아이들의 사고와 인성, 도덕성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그것.
그렇다면 나는 왜 언니처럼 되지 않았을까.
그에 대해 나의 상담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참 그래. '방임'도 학대잖아. 어떻게 보면 가장 위험한 학대인데… 모든 일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일어난다고. 오히려 가정폭력이 심각한 집안에서는 '방임당한 아이'가 부모의 잘못된 영향을 덜 받게 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건강한 사고를 하게 되지… 희한하지. 그 방임이 결국 수아 씨를 살렸다는 게… 수아 너를 건강한 사고를 갖게 만들었다는 게."
그러니 그 가족들의 학대적 행위가 결국 나를 살리는 행위로 이어졌다기에.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감사함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