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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뭐가 힘들어?

열여섯 번째 유성 한 조각

by 엔키리 ENKIRIE


부모가 원해서 간 대학이니, 부모가 지원을 해줬을 거라고,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나 또한 등록금을 지원받은 적은 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는 대학교 편입을 어머니는 대학원 입학을 원했기에.

아버지는 자신이 나의 대학교 학비를 책임질 테니, 어머니에게 나의 대학원 학비를 책임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버지의 회사에서 자식의 대학교 학비는 어느 정도 대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부담을 감수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장은 달랐다.

첫 대학원 학비는 지원해 줬지만, 그다음 학비부터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네 아버지한테 네가 전화해 봐."


이런 답변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로 인해, 나의 부모가 내게 하는 행동을 보고 몹시 화가 난 친구가 대학원 2학기 때의 학비를 대신 내줬다. 특히, 그 학기에는 내가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가 100만 원도 안 하는 상황이었기에. 내 친구가 느끼는 안타까움이 너무 큰 탓이었다.


그렇게 친구에게 폐를 끼치는 건 상당히 면목없는 일이었으나.

당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등록금을 제외한 용돈과 자취방 월세, 생활비 등은 전혀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 또한 등록금을 감당할 상황이 전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포기하려던 찰나, 보다 못한 친구가 도움의 손길을 뻗은 것이다.

그때 느꼈던 고마움은 내가 평생을 그 친구에게 갚아도 모자랄 것이다.


사실 나의 친구들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하는 행동들에 대해 분노하는 건 계속돼 왔다. 왜냐면, 내가 대학교와 대학원을 같이 다니며, 아르바이트도 하고, 취업을 위한 자격증도 사비로 취득해 나아갈 때. 나의 부모는 내가 자신들이 원하는 인서울 명문대를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게 최소한의 학비만 부담해 줬지만. 나의 언니에게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니는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노력한 결과, 누가 들어도 알 법한 명문대 법대 진학에 성공했고. 그로 인해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로스쿨을 입학한다는 이유로, 변호사 시험을 합격해야 한다는 이유로. 꾸준히 부모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아 왔다.


햇수로만 14년 간.

언니는 그렇게 지원을 받아 왔지만, 그녀가 계속해서 시험 합격에 탈락한 원인은 따로 있었고. 거기에는 분명 언니가 지닌 '인성'과 관련된 문제도 있었다.


남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겠느냐 할 수도 있으나, 누구라도 나의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녀의 인성에 대해 걱정했기에. 심지어 어머니가 언니의 학업 스트레스를 걱정해서 상담을 보냈을 때도, 담당 상담 선생님이 그녀의 인성을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나의 어머니는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자식을 누군가 흠집 내는 걸 싫어했기에.

전문 상담사의 전문가로서의 소견도 곧잘 무시하고는 했다.


한 일화를 먼저 밝히자면, 한 번은 내가, 대학교랑 대학원을 같이 다니며, 아르바이트도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에게 이런 애원을 하기도 했었다.


"나 휴학 한 번만 하면 안 돼? 너무 힘든데…"

"네가 뭐가 힘들어?"


안방 앞에 서서 어머니의 눈치를 보다 보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꺼낸 말이지만. 이를 막아선 건 언니였다.


"내가 어떻게 안 힘들 수가 있어? 대학교랑 대학원도 같이 다니고, 일도 하고 있는데. 그리고 국가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고."

"하… 야! 요즘 애들은 다들 그 정도는 해."

"누가 다 이 정도나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리고 언니는 휴학도 자주 하잖아. 근데 왜 언니는 되고, 나는 안돼?"

"야! 그럼 너도 인서울 하지 그랬어?"

"뭐?"

"네가 인서울을 못해놓고 누구 탓을 해?"


말문이 턱턱 막히는 말들 뿐이었다.

도저히 가족의 입에서 나온다고 볼 수 없을 법한 인신공격형 말들 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자신의 방에 있는 TV화면의 드라마만 응시하고 있었다.


"인서울 못한 건 그렇다 쳐! 근데 지금 대학교랑 대학원은 엄마 아빠가 원해서 다니는 거잖아! 난 원래 취업하려고 했는데 대학 다녀야 한다며! 근데 나한테 용돈을 줘, 뭐를 줘! 학비만 대주면서 나보고 혼자 다 알아서 하라고 하고 있잖아! 학교도 다 전혀 다른 지역에 있어서 이동할 때 차비도 얼마나 드는지 알아? 생활비는 어떻고!"


본래 나는 말을 길게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때때로 억울함에 더해져 서러움까지 넘쳐 오르면, 금방 쏟아질 것 같은 감정들을 저렇게 우다다 쏟아내곤 했다.


마치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하던 슬픔들이 그 길을 찾아 뚫고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은 언제나, 도저히 삼켜두고 있기 어려운 아픈 단어들을 토해내고는 했다. 간헐적으로.


그러나 오랜 세월 가족들 안에서 지속적으로 무시당해 온 사람에게 있어, 그 말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아마 1g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확언해 본다.


"차암나. 야! 너 무슨 엄마 아빠한테 돈 맡겨 놨어? 니 나잇대 애들은 다들 자기가 아르바이트해서 벌어서 다녀! 근데 어디 와서 난리야!"

"그러는 언니는!? 언니도 용돈 받아서 다니잖아! 난 대학원 등록금도 안 주려고 했어!"

"그건 네 잘못이지! 그러니까 네가 열공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 넌 왜 그딴 학교 다니면서 장학금도 못 받는데?"


세상에 있는 수많은 가시들을 한데 모아 던지는 사람처럼, 그녀의 말은 언제나 내겐 그다지도 공격적이었다. 정작 그녀 자신은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 또한 강하게 저항할 때도 있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스스로 불안해하면서도 내가 받은 상처를 어느 정도는 되돌려주고 싶었기에.

너도 조금이라도 아파보라고.


"언니도 장학금 받은 적 없잖아!"


사실이 그러했다.

언니는 자신이 사법고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핑계로 매 학기 수업을 최소 과목인 3과목 내외의 수업만 수강하며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때때로 몸이 안 좋다며 휴학도 반복했다. 그래서 내가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재입학을 했을 때도 언니는 아직 대학생이었고, 그 대학교를 졸업하는 데만도 거의 7년이나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당당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염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언제나 그들은 그녀의 편이 되어주었기에. 든든한 빽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내게 듣는 반격의 발들은 항시 가벼이 무시할 수 있었고, 내게 던지는 막말도 언제나 거침이 없었다.


"야! 우리 학교가 너네 학교랑 같은 줄 알아? 우리 학교가 장학금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비교할 걸 비교해!"

"…"

"난 너네 학교 이름도 이번에 너 때문에 처음 알았어! 그딴 학교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계속해서 숨이 턱턱 막히는 막말의 연속이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러한 언니를 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아."


언니의 폭력적인 말에 후드려 맞는 게 너무 아파서, 나는 순간 멍해진 상태였고.

그러한 우리의 침묵을 비집고 들어온 건 어머니가 부르는 나의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그 대학만 다녔어봐. 그러면 아빠가 계속 용돈도 줬겠지. 너 그 대학교 다닐 때는 아빠가 매달 용돈도 줬었잖아."


할 말을 잃었다.

어머니가 계속 강조하는 '그 대학'이란, 내가 교수의 성추행으로 자퇴한 그 학교였기에.

물론 이후로도 어머니는 '네가 그 대학만 계속 다녔어도'라는 원망의 말을 5년 넘도록 한다.


그 시절이 그랬다.

학생들이 대학교에서 교수로부터 아무리 성폭력을 당해도 피해자로서 온전히 보호받지 못했던 나날들. 그리고 2차 가해와 2차 피해에 대하여, 일반인들이 상당히 무지했던 시대.


하지만 어머니의 냉정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너네 둘 다 문 닫고 나가. 시끄러우니까. 엄마 드라마 좀 보자."


그렇게 우리는 안방의 방문을 닫았고, 그 와중에도 언니는 '너 때문에 엄마한테 쫓겨났잖아!'라며 내 탓을 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언니는 항상 그랬다. 자신이 먼저 시비 걸고, 자신이 잘못했어도 무조건 내 탓을 했다.


그 순간, 그 공간에서.

가해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였을까.

분명한 건 가해자들은 언제나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상처는 오로지 피해자만의 몫이 될 뿐.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미투 운동을 누구보다 반겼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더는 성폭력으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기를.

오늘도 또 바라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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