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유성 한 조각
어쩌면 지금의 타이밍이 나의 언니에 대한 일화를 시작하기 좋은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미 이전 글에서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의 언니는 여러 차례 ‘인성’에 대한 문제로 타인들로부터도 지적받은 바 있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담임교사가 ‘주아는 선생님을 무시한다.’라고까지 말했지만.
나의 부모는 오히려 그러한 교사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내 부모의 그러한 태도는 결국, 언니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 결정적 원인이 되어버렸다.
내 친구들은 종종 말한다.
“내가 남의 언니한테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진 않은데… 너네 언니는 진짜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같아.”
그들이 왜 이런 말까지 하게 된 걸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는 또 한동안 언니와 관련된 몇 가지 일화를 풀어야 할 것 같다.
어머니는 때때로 나와 언니의 어렸을 적 일화를 풀어놓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 말을 덧붙이고는 했다.
"수아 넌 엄마 아빠 재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엄마 아빠 재산? 그건 엄마 아빠거지."
"그건 그렇긴 한데. 나중에 엄마 아빠 죽으면 말이야. 유산 어떻게 할 거냐고."
"난 관심 없는데. 엄마 아빠 거니까 엄마 아빠가 알아서 하는 거지. 애초에 내 돈도 아니고… 그냥 다 쓰고 가던지. 난 내가 벌면 되지."
"너네 언니는 그렇게 생각 안 하던데."
"언니는 좀… 원래 남다르지."
"그래도 수아야. 언니 앞에선 그런 말 절대 하지 마 알았지?"
"무슨 말?"
"엄마 아빠 재산 필요 없다고. 엄마 아빠 죽으면 너네 둘 뿐이잖아. 그니까 너네가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해. 알았지?"
"…."
성인이 됐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어머니가 말해준 어렸을 적 일화를 보면, 어머니가 무얼 걱정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너네 어렸을 때 말이야… 어느 날 엄마가 너네 학원비를 한 명 것밖에 준비를 못 한 거야."
"아아…."
가끔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잠에 들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두 분은 우리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회상하며 넌지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는 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어느 날이었던가, 어머니와 단 둘이 잠에 들게 됐을 때 나누었던 이야기이다.
또한 종종 반복해서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엄마가 너무 당황한 거야. 너네가 학원비를 내는 날인데, 한 명 분밖에 없으니까."
"으응. 그럴 수 있지…."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에는 다소 진지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는 잠을 물리치느라 바빴다.
"근데 엄마가 학원비 봉투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
"네 언니가 갑자기 탁하고 봉투를 채가더니, ‘엄마 나 학원 갔다 올게!’ 하고 잽싸게 가버리는 거야."
"아아… 언니는 그런 건 빠르지. 자기 거 챙기는 거."
"그러니까. 주아는 그럴 때 진짜 빠르다니까. 아빠가 너네 때리려고 했을 때도 잽싸게 방문부터 잠근거 생각해 봐."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가만가만 그 장면들을 그려보았다.
언제나 자기 몫을 챙기는 데 상당히 영리했던 언니. 그래서 그 모습은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누가 자신의 뜻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불같이 화내던 언니.
그러면서 타인의 영역은 언제든 침범하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전혀 여기지 않던.
언제나 자신은 잘못한 게 없고, 남은 자기에게 잘못한다고 주장하던… 언니.
"근데 언니는 이미 봉투를 들고 가버렸지. 엄마는 놀라서 그러고 있지. 그러다가 너랑 눈이 마주쳤는데…."
"…."
"네가 그러는 거야. ‘엄마 난 나중에 줘!’ 이러고 그냥 가버리더라고."
"…."
"근데 가만히 보면 그렇더라고. 항상 주아는 널 언니로서 챙겨주긴 했는데.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자기 건 확실히 챙길 줄 아는 애였거든. 받은 만큼 돌려주고."
"…."
역시 졸렸던 나는 점점 답변도 줄어가고.
"근데 수아 너는. 네 생일이 4년에 한 번 오잖아? 그러니까 학교 다닐 때 일 년 내내, 다른 친구들 생일 선물은 다 챙겨주면서. 정작 너는 학년 바뀌면서 친구들하고 반 달라지고 제대로 다 돌려받지도 못하는데. 그거에 대해서도 딱히 불만도 없고…. 속상한 거야, 그게. 엄마는."
"…."
"근데 어느 날 보니까 주아가 계속 엄마 아빠 유산 얘길 하고 있는 거야. 그걸 어떻게 사용할 거라는 등… 근데 수아 넌 엄마 아빠 재산이 뭔지도 모르고, 유산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엄마가 엄마랑 아빠 통장 어디 있는지 저번에 알려줬지?"
"으응…."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똑같이 끝나는 말.
"그러니까 수아야. 너네 언니 앞에선 절대 엄마 아빠 재산 필요 없다고 말하지 마. 알았지?"
"… 응…."
당시 나는 가족들이 나에게 해를 입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어머니의 말을 허투루 들었고.
사실 어머니의 염려는 괜한 기우가 아니었다는 것을 '가정폭력 피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면서 점차 선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어머니가 당연히 나를 염려해 주고 생각해 준다고 여겼다.
삼촌의 사업 문제로 내 전 재산을 빼앗아 가고, 명의까지 저당 잡은 순간에도.
저 대화는 몇 번 더 반복됐기에…
그게 내가 10년 동안 삼촌의 건물 문제에 나의 이름을 빼앗기고도 어찌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어머니가, 그리고 또 가족들이. 결코 내게 해를 입히는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결국 그 구렁텅이에 날 몰아넣은 건 나 자신인 것 같은 자책감에.
수없이 헤아리기 어려운 밤을, 그 나날들을, 종종 아픔으로 지새워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