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유성 한 조각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 어느 한 명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의 삶은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상상화 될까.
나는 어머니로부터 평생을
'내가 너 임신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애기가 어찌나 보통이 아니던지, 임신 내내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마셨어!'
이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됐다.
어머니의 그런 말이, 내 자신의 존재를 상당히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줄곧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엄마에게 효도해야지. 내가 잘해야지.’
이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더 저항 없이 끌려갔던 것도 같다.
어머니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이끌면 이끄는 대로, 나 자신을 수렁에 빠져들게 만드는 길로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직 그녀의 ‘말들 잘 듣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기에.
내가 아버지에게 맞아도, 어머니에게 맞아도, 언니에게 맞아도. 때로는 나보다 한참 열 살이나 한참 어린 외갓집 사촌 남동생에게 ‘이 씨발년아!’라고 쌍욕을 들어도. 그 욕과 함께 내 살점까지 뜯어져 나갔음에도.
어머니가 ‘네 잘못이다.’라고 말하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게 내 자신이, 태아 때 어머니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러한 내 비틀린 사고를 바로잡아 준 건 의외로 김민교라는 연예인의 한 발언 덕분이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방송인가 뉴스에서 그가 이러한 발언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이가 원해서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는 딩크족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담은 발언을 한 것이었고, 나는 그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었다.
갑작스레 떨어진 눈물과 절로 숙여지던 고개.
그리고 무릎 쪽 바지를 점점 적신 너무 오래 묵은 슬픔의 자욱들.
그렇게 노트북을 하다가 갑자기 마주한 그 한 마디에, 마치 오랜 세월 동안 힘겹게 지고 가던 짐을 내려놓는 기분마저 들었다.
타인의 말이 주는 치유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때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니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일 터였다.
혼자가 아닌 세상이기에. 결코 혼자가 될 수 없는 삶이기에.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내가 원해서 나의 부모에게 찾아가, ‘나를 낳아주세요.’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머니는 자신이 나를 임신했던 시기의 일화에 대하여 모두 내 탓인 양 비난을 했었다.
그래서 그날도 절박한 심정으로 그 두 사람에게 매달리듯 말했다.
"대학교랑 대학원 같이 다닐 수 있대!"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대학교와 대학원을 동시에 다닌다고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채, 부모의 뜻에 따라 모 지방 사립대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담당 교수의 반복적인 성추행 행위 때문에 자퇴를 했다. 그 후, 또다시 ‘우리 집에 고졸은 있을 수 없다.’는 부모의 뜻에 의해 ‘평생교육시설’에 입학했다.
그렇게 삼촌 건물에 명의가 붙들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중에도,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청소년 지도사와 평생교육사 자격증까지 따낸 채 대학 졸업장을 따낸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막 취업을 앞두려던 찰나, 아버지로부터 뜻밖에 단호한 엄명이 떨어졌다.
"사이버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말은 편입을 해서 일반 4년제 대학교에 다시 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미 4년제 학위는 있으니까, 차라리 대학원을 보내자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의 의견 대립은 팽팽했고, 어느 한쪽도 굽히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이상한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 대립할 동안, 정작 당사자인 나에게는 어떠한 의사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매번 그런 식이었기에.
그저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두 사람의 의견 차이와 그에 따른 집안 내 냉전기가 점점 길어졌으니.
그래서 급하게 이런저런 정보들을 검색해 봤다.
그러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
대학교는 동시에 다닐 수 없지만, 대학원은 한 번에 여러 개도 다닐 수 있다는 네** 지식*의 답변을 발견했다.
그에 대한 질문자의 또 다른 질문이 나의 상황과 비슷했어서, 답변자의 답변 또한 내가 찾던 답변이 나왔다.
‘대학교와 대학원 학위는 서로 다른 것이기에 병행해서 다니는 게 가능합니다.’
마치 유레카를 외치듯. 그 답변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즉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의아해했지만, 서로 어느 하나도 양보할 마음은 없었기에 그러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내 발로 지옥길에 들어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부모에게 ‘버림받을까 봐’ 불안한 ‘유기 불안’ 때문에 말이다.
어느 하나라도 밉보이지 않게 부단히도 눈치 보고 모든 걸 맞춰주려고 했던 아이.
그게 나였으니까.
존재의 불안.
그게 얼마나 자기 자신을 스스로 옭아매는지.
이때의 선택으로 나는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