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나이의 고찰

by E끌

30

하고싶은 것


세월이라는 파도 앞에 파도타기를 하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다보니 어느덧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손짓하는 것도 아니고 서른이라는 숫자와 친구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지금의 나는 두뇌는 작아지고 몸만 커버린 어른이로 자라간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체감하는 때는 딱 두 분기점으로 나뉜다. 첫째로 20살이 되던 해에, 술과 담배라는 어른의 것을 구입할 수 있다는 쾌락과 더이상 보호자의 동의가 없어도 된다는 책임이 따른다. 미성년자일때는 어른들의 억압과 공포라는 이름의 족쇄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면 이제 그들은 스스로 족쇄를 풀고 나올 나이가 되었다. 그 후, 몇몇 이들은 자신이 져야할 책임보다 당장 눈 앞의 쾌락을 맛보고 싶어 돌이길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둘째는 20대 중반인 시점에 대학 졸업을 앞둘때 체감된다. 당장 취업에 대한 막막함과 언제까지고 부모님 밑에 살 수는 없을꺼라는 불안감이 듦과 동시에, 멀리 가지 않더라도 부모님들이나 우리가 어릴적 보던 짱구의 부모님들이 각각 29세, 35세의 나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젊을 때 많은 것을 이루었구나 를 느낀다.

나같은 경우에도 25살이 넘어간 시점부터는 나이를 잘 안세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형,누나 이라고 부를 일보다 형이라고 불릴일이 더 많아진 요즘,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는 자신을 채찍질 하곤 한다.


'나의 인생은 원본, 남의 인생은 편집본' 이라는 명언이 있다. 내 인생도 편집하면 10분짜리 하이라이트 몇개는 나오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남들이 봤을때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들은 없겠다. 싶어 상상 편집을 그만두었다. 서른이 된 지금도 하고 싶은것도 많은데 그것들은 돈이 되지 않거나 돈을 써야 하는 일들이라 현실과 합의점을 찾기도 한다.


현재는 이뤄놓은 것이 없고 하고 싶은 것만 많은 노답인생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후회 없는 인생이고 싶다. 이게 신앙이나 인생관이든 간에, 내 주변 몇몇 사람들처럼 나이를 핑계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다. 이것이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의 생존본능이다.



10

공중전화


옛날 이야기 하나 하자면, 초등학교 때의 나는 핸드폰이 없었다. '핸드폰'이라는 것을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받았기 때문에 초등학교때에는 그런 기기의 존재를 모르고 지냈다. 대신 학교 앞에 공중전화가 있었다. 놀이터에 친구를 부르거나 긴급한 일이 있을때는 공중전화로 달려가 1541 콜렉트콜로 어머니께 전화를 걸고 10초안에 용건을 말하는게 그시절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어있는 요즘에도 공중전화는 설치되어 있지만 옛날만큼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 듯 하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공동체 안에서나 인간관계 사이에 각자만의 역할이 있다고 느낀다. 조언을 해주는 사람. 이야기의 주제를 던져주는 사람.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 등등. 그런 각자의 역할들 사이에서 나의 역할이 공중전화 같은 역할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한다. 평소에는 잘 찾지 않지만 인생에서 긴급할때, 힘들때, 가만히 들어주고 용건을 해결해 주는 역할. 딱히 필요할때만 찾는것이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히려 그들이 정말 절실할 때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감사할뿐.


그래서 오히려 더욱 더,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잘 안하기도 하고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보단 상대방이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를 공감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최소한의 기준은 정하고 말하긴 하는데 예를 들면 "뭐 먹을래?"의 질문에 내가 말한 "아무거나" 라는 대답은 정말 아무거나 괜찮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먹고 싶은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인생에서 선택지를 정하라는 질문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아무거나"라는 답으로 대체하지만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 예외적으로 내가 정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어릴적 장래희망은 심리상담가 였는데 지금은 비슷한 느낌으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퇴근 후, 같은 나이때 친구를 만나서 그 친구가 손 떨리는 것만 봐도 파킨슨이냐고 물어보는 것부터 정형외과보다 한의원을 더 좋아하는 그런 애늙은이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지금도 당장 내일 뭐할지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거라는 것이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7화ㅁ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