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 아빠를 그려줘서 고마워!
▐ 스위스에서의 조기교육, 그리고 그림
스위스로 이사 온 우리 부부는 조기교육, 특히 공부와 관련된 교육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게 되면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고,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교육도 시키지 말자는 것은 아니었다. 기회가 된다면 배우게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림이었다. 나는 화가이셨던 어머니로 인하여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는데, 그 영향으로 그림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특별히 모네와 같은 인상파 그림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 번은 혼자 파리로 가서 미술관에 앉아 그림을 원 없이 보고 돌아왔던 적도 있다.
딸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래의 그림은 딸이 4살 때 그린 그림이다.
▐ 좋은 선생님을 만나다
큰 스케치북에 꽉 차게 그림을 그리는 딸을 보고, 제대로 그림을 좀 가르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좋은 선생님을 찾아냈다. 한국 분이셨는데, 남편 분이 파견 근무 중이어서 잠시 스위스에 거주하시는 분이셨고,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셨던 분이었다.
다행히 한 자리가 나서 매주 수요일에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딸을 수업에 보내고 집에 왔다가 다시 데리러 가기에는 거리가 애매했고, 선생님 댁 근처에서 시간을 보낼 만한 적당한 장소도 없어서 나는 차에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내가 차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마음에 걸려 했다. 특히 여름이나 겨울처럼 날씨가 극단적일 때에는 차에서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기에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하며 제안을 했고, 나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 그림을 배우는 딸
좋은 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1~2시간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그렇게 나는 딸을 데리고 매주 수요일 미술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딸은 그림 그리는 것을 꽤 즐거워했고, 결과물들도 마음에 들었다.
▐ 그림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
딸이 미술을 배우면서 남긴 다양한 그림들 중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 그림이다.
이 그림은 항상 내 방에서 가장 가까운 벽에 걸려 있다. 이 그림을 가까이 두는 이유는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뿐만 아니라 화를 다스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이 그림을 보면서 딸이 밝게 그려준 아빠의 표정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곤 했다.
▐ 미술관 투어 - 그림을 만나다
시간이 흘러 미술 선생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시게 되었고, 이후 딸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그림에 소질과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우리는 여행을 갈 때 미술관을 가는 일이 잦아졌다.
찾아보니 스위스에서도 좋은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곳들이 있었고, 딸과 함께 미술관 데이트를 가기도 했다. 하루는 아래의 그림들을 보기 위해 당일치기로 바젤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왕복 520km)
지금 생각하면 큰 불평 없이 잘 따라다녀 준 딸에게 참 감사하다.
▐ 다시 시작된 그림 공부와 딸의 선물
이렇게 우리 부부는 자녀에게 그림을 배울 기회와 좋은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또 다른 한국 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울 기회가 생겼고, 그때에도 딸은 크게 거부하지 않고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나온 첫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저의 브런치북에 자주 들어오셨던 분이라면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실 것이다.
그렇다! 나의 프로필 사진이다. 딸은 내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려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이렇게 내가 아끼는 또 하나의 딸의 작품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후로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딸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필요한 재료들을 사고 싶다고 할 때는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딸을 데리고 프랑스로 넘어가 필요한 것들을 사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왔다. 딸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뿌듯했기에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앞으로 딸이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많이 있을 텐데, 그럴 때 그림을 그리며 스트레스를 다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 그림을 그리는 딸의 모습을 타임랩스 방식으로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기록해 두었는데, 더 많이 남겨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성장한 딸은 최근에도 몇 작품을 남겼다.
나는 딸의 그림 작품으로 집 벽면을 꾸미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딸이 앞으로도 멋진 그림들을 남길 것을 기대라도 소망해 본다.
딸은 작품을 남기고,
나는 가족의 추억들을 브런치에 남긴다.
오늘도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모든 분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며, 추억을 잘 기록하여 나중에 그 열매들을 보며 웃음 짓는 날이 오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