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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오케스트라 - 수용과 변화의 하모니

주어진 선율과 창조의 자유

by 에라토스



▐ 인생의 악보: 주어진 선율과 창조의 자유


삶은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악보 속에서 연주를 하며 살아간다. 환경, 과거, 타인의 영향 같은 것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선율을 만들어내려 애쓰는 연주자일 뿐이다.


어떤 음은 그냥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음은 새롭게 연주해야 하는 게 삶의 본질이 아닐까? 과연 우리는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삶 속에서 나에게 큰 위로와 도전을 주었던 기도문이 있다. 바로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 중의 일부이다.


"주여,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정심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주시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나는 이 짧은 기도문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느낀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삶의 오케스트라를 조율하는 세 가지 음색, 즉 평정심, 용기, 지혜를 우리 손에 쥐어주는 안내서 같은 것이다. 이 음색들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조화로운 선율이 만들어질 거라고 믿는다.



▐ 평정심: 고정된 음표 속의 평화


평정심은 오케스트라에서 변치 않는 저음의 베이스라인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 이를테면 태어난 배경이나 이미 지나간 사건, 다른 사람의 선택은 악보에 이미 적힌 음표일 뿐이다. 이 음을 억지로 바꾸려 하면 선율이 어지러워지지 않겠는가?


스위스로 이주한 후, 나는 이 평정심의 무게를 깊이 실감했다. 한국에서의 바쁜 삶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 발을 디뎠을 때,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음표였다. 처음에는 이 낯선 음에 저항하며 마음을 소진했지만, 어느 순간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스위스의 느린 리듬과 조용한 일상을 받아들이니, 그 안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평정심이란 체념이 아니라 주어진 음 속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태도다.


"평정심은 오케스트라의 베이스라인이다. 비록 크게 화려하지 않더라도, 그 안정감이 전체 선율을 지탱하는 법이다."



▐ 용기: 새로운 선율을 연주하는 힘


용기는 오케스트라에서 새로운 선율을 빚어내는 바이올린의 활에 비유해보고 싶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 이를테면 작은 습관이나 태도, 마음가짐처럼 하루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선택은 악보의 여백, 즉 나만의 음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이다. 용기란 이 여백에 음을 그려 넣는 대담함이 아닐까?


스위스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조금씩 용기의 음표들을 연주해 나갔다. 불어와 영어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든 것,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간 것, 가족을 위한 요리를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것, 독서와 글쓰기를 일상에 녹여낸 것, 꾸준히 운동하기로 마음먹은 것까지.


이 모든 선택들이 용기의 선율이 되었다. 처음에는 서툴고 떨리는 소리였지만, 계속 연주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감이라는 하모니로 변해갔다.


"용기는 바이올린의 활이다. 처음에는 떨리는 소리일지라도, 계속 연주하면 감동적인 선율이 될 것이다."



▐ 지혜: 하모니를 조율하는 지휘봉


지혜는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의 손길과 같다. 수많은 악기 소리 중 어떤 소리를 강조하고, 어떤 소리를 누그러뜨릴지 판단하는 능력이 바로 지혜다. 이 지혜가 부족하다면, 우리는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맞서 소진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놓쳐 후회만 남게 될 것이다.


일상의 선택 속에서 지혜는 가장 실용적인 도구가 된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야 할지, 어떤 관계에 투자해야 할지, 어떤 생각을 붙들고 어떤 생각을 놓아야 할지를 구분하는 것이 지혜의 영역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지 분별하는 안목은 더욱 중요해졌다. 지혜란 결국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능력이 아닐까?


"지혜는 지휘봉의 움직임이다. 모든 악기를 한꺼번에 연주할 수는 없지만, 어떤 순간에 어떤 소리를 내야 할지를 아는 것이 하모니의 비밀일 것이다."



▐ 하모니의 신비: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


완벽한 교향곡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평정심, 용기, 지혜라는 세 가지 음색을 손에 쥐고 매일 연주를 거듭한다면, 우리는 삶의 하모니에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오늘도 무대 위에 서서 주어진 악보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이 음표로 어떤 선율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 질문이 우리를 끝없는 음악의 여정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실수와 조화, 수용과 변화의 경계에서, 우리는 매일 새로운 교향곡을 연주하며 더 깊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스위스에서의 여정처럼, 낯선 음표 속에서도 하모니를 찾아가는 이 과정이 나를 더 단단한 연주자로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도 새로운 음을 꺼내볼 용기를 내어보자!



"삶의 오케스트라는 완벽한 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음들 속에서 독특한 하모니를 발견하는 여정이다. 매번 실수하더라도, 그 실수는 더 깊은 선율을 향한 단서가 될 것이다."



저는 누구를 가르칠 만한 위인이 아닙니다. 여기에 기록되는 모든 생각들은 남이 아닌 저를 가르치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과 직접 경험했던 변화에 대한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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