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을수록 더 무거운 벌금_일론머스크도 피할 수 없다.
스위스에 처음 발을 들였던 11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계신 삼촌 댁에 방문해 필요한 물건들을 챙긴 뒤, 렌터카를 빌려 삼촌과 딸을 태우고 스위스로 향했다. 독일 고속도로를 달릴 때만 해도 삼촌은 속도에 대해 그리 민감해 보이지 않으셨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 스위스 땅을 밟자마자 삼촌의 태도가 변했다. 운전대를 잡은 삼촌이 속도계와 제한 속도 표지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극도로 조심하는 게 아닌가. 당시 나는 '겨우 몇 킬로미터 차이인데 왜 저렇게까지 예민하게 구실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훗날 내가 직접 스위스에서 운전대를 잡고 주변의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 삼촌이 왜 그렇게 사색이 되어 속도계를 살피셨는지 말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농담인 줄 알았다. 같은 속도로 달려도 부자는 더 많이 내고, 서민은 덜 낸다니?
한국에서는 누가 과속을 하든 벌금은 같다. 제한속도 60km/h 도로에서 80km/h로 달리면, 대기업 회장이든 대학생이든 동일하게 7만 원이다. 그런데 스위스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교통 위반을 하면 '일수벌금'이라는 제도가 적용된다. 말 그대로 하루치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위반자의 하루 가처분 소득, 즉 세금과 필수 생활비를 뺀 금액의 절반이 '1일 벌금'이 된다고 한다. 위반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따라 며칠 치를 부과할지가 정해지는데, 30일 벌금이 선고되면 하루치 벌금에 30을 곱하는 식이다. 1일 벌금의 범위는 최소 30프랑(약 5만 4천 원)에서 최대 3,000프랑(약 560만 원)까지.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25년 여름,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로잔에서 한 운전자가 제한속도보다 27km/h를 초과해서 달리다 적발되었다. 27km/h 초과면 한국에서는 과태료가 얼마쯤 될까? 아마 10만 원 안팎일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이 운전자에게 부과된 벌금은? 무려 9만 스위스프랑. 한화로 약 1억 7천만 원이다. CNN, BBC 등 세계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대체 왜? 이 운전자가 스위스 300대 부자 중 한 명인 프랑스 사업가였기 때문이다. 보주(Vaud) 법원은 그의 소득과 재산을 근거로 일수벌금을 산정했고, 1만 프랑(1,800만 원)을 선납하도록 한 뒤, 향후 3년 내 동일한 위반이 적발되면 추가로 8만 프랑(약 1억 5천만 원)을 부과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합산 최대 9만 프랑. 게다가 이 사업가는 8년 전에도 같은 위반으로 6만 프랑의 벌금을 낸 전력이 있었다. 학습이 안 되신 건지...
보통 사람이라면 수백 프랑이면 끝났을 '27km/h 초과'에 1억이 넘는 벌금이라니. 세계가 놀랄 만했다.
그런데 스위스에서는 이게 처음이 아니다.
2010년에는 더 놀라운 일이 두 건이나 있었다. 생갈렌 주에서 한 백만장자가 빨간색 페라리 테스타로사를 몰고 80km/h 제한 구간에서 137km/h로 달리다 적발되었는데, 벌금이 약 29만 9천 스위스프랑(당시 환율로 약 3억 4천만 원). 같은 해 여름에는 한 스웨덴 사업가가 메르세데스 SLS AMG를 몰고 시속 약 290km/h로 스위스 도로를 질주하다 걸렸다. 이쪽은 약 108만 스위스프랑(당시 환율로 약 12억 원, 요즘 환율로는 18억 원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것이 세계 최고액 교통 벌금 기록이다.
핵심은 벌금의 '체감 효과'에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과속 벌금 7만 원은 대학생에게는 꽤 아픈 돈이다. 며칠 치 식비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소득자에게 7만 원은 껌값? 아니면 점심값? 수준이다. 같은 금액인데 느끼는 무게가 전혀 다르다. 결국 고정 벌금 체계에서는 부자일수록 법을 어겨도 별로 아프지 않고, 가난할수록 같은 위반에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스위스는 이것을 불공정하다고 본 것일까?
벌금의 목적이 '돈을 걷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수준의 '아픔'을 느껴야 한다는 논리라면? 나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월급 300만 원인 사람에게 30만 원 벌금이 아프듯, 월급 3,000만 원인 사람에게는 300만 원이 그만큼 아프니까 말이다. 스위스는 이 '비례적 고통'을 평등이라고 보는 것 같다.
물론 모든 교통 위반에 이 일수벌금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도 경미한 위반에는 고정 벌금 체계를 가지고 있다.
시내에서 5km/h 이하 초과는 40프랑(약 7만 원), 신호 위반은 250프랑(약 46만 원). 이것만 해도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비싸다.
그런데 초과 속도가 20~25km/h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면허 정지가 시작되고, 그 이상의 중대한 위반에는 바로 이 일수벌금이 적용된다. 여기서부터는 은행 잔고에 따라 벌금의 자릿수가 바뀌는 세계다.
바로 이 지점이 스위스에서 미친 듯이 달리는 차를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카메라가 없는 지역에서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차를 아주 가끔 목격하기도 하지만, 만약 임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면 그 운전자는 엄청난 불이익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11년째 스위스에서 운전하다 보니 느끼는 게 있다. 이 나라의 도로에도 스위스의 철학 같은 것이 깔려 있다는 거다. 모두가 같은 규칙 아래에서 살되, 그 규칙의 무게는 각자의 어깨에 맞게 조절한다는 것.
마트가 7시에 문을 닫는 것도, 포도밭 경사에 따라 다르게 보조금을 주는 것도, 휴가를 늘리자는 제안을 거부하는 것도, 과속 벌금을 월급에 비례하게 매기는 것도 —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효율보다 공정을, 편리보다 균형을 선택하는 사람들.
이 나라에서는 도로 위의 안전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꽤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혹시 유럽 렌터카 여행을 하시면서 특히 독일 아우토반을 시원하게 달리다 스위스로 넘어오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아마 차가 기어가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실 것입니다. 방금까지 200km/h로 달리던 발이 갑자기 120km/h에 묶이니 이게 뭔가? 싶으실 겁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니 방심하지 마시길...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일반 도로를 주행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이 나를 향해 쌍라이트를 서너 번 연속으로 깜빡거린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신호입니다. 내가 가는 길 앞쪽에 이동식 단속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운전자들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니 절대 불쾌해하지 마시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으로 서행하며 지나가시면 됩니다. 기분 나빠하며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지갑이 아파할 것입니다.
스위스에서의 운전, 하나만 기억하세요. 천천히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며, 가장 저렴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