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불법 체류 아이도 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

부모가 어떤 사람이든, 아이는 학교에 간다.

by 에라토스





▐ 스위스에 취직하러 온다는 것


EU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스위스에서 직장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이 나라는 외국인 고용에 관해 아주 명확한 우선순위를 법으로 정해두고 있다. 스위스 외국인통합법(AIG) 제21조가 그 근거인데, 쉽게 말하면 이렇다.


1순위: 스위스 내 거주자

2순위: EU/EFTA 시민권자

3순위: 그래도 적임자를 찾지 못했을 경우에만, 비 EU 외국인


3순위에 해당하는 비 EU 국적자를 채용하려면 고용주가 이민당국에 직접 소명해야 한다. "스위스 내부에서, EU 시민 중에서, 충분히 노력해서 찾아봤지만 이 사람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서류도 복잡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쿼터도 있다. 회사 입장에서 굳이 이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하면서 비 EU 외국인을 채용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비 EU 국가 출신의 지원자는 서류 심사 단계에서부터 사실상 걸러지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차갑고, 닫혀 있고, 인간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 딸의 친구


딸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다녀온 딸이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우리 반에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오는 친구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냥 넘겼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옷을 매일 입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몇 주가 지나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됐다. 그 친구는 정말 한 번도 옷을 갈아입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아이의 부모가 스위스에 법적으로 머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직장도, 체류 허가도 없는 상태에서 스위스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다른 아이들과 함께.


처음엔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싶었다.



▐ 이 나라가 법으로 보장하는 것


스위스 연방헌법 제62조는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칸톤은 모든 아동에게 열려 있는 충분한 기초 교육을 보장해야 한다. 기초 교육은 의무적이며, 공립학교에서는 무상으로 제공된다."


여기서 핵심은 "모든 아동"이라는 표현이다. 스위스 국적 아동이라고 하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아동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모든 아동이다.


이것은 단순히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16세까지의 의무교육 기간 동안 스위스의 공립학교는 아이의 체류 신분을 이유로 입학을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해서는 '안 된다.'


난민 신청이 거부된 가정, 즉 법적으로는 당장 스위스를 떠나야 할 처지에 있는 가족의 자녀도 마찬가지다. 국제난민법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부모의 난민 신청이 거부되어 출국을 거부하고 있더라도, 자녀는 스위스에 있는 동안 학교에 계속 다닐 권리를 유지한다."



▐ 신고하지 않는 학교


이상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학교가 이런 아이들을 발견하면 이민당국에 신고해야 할까?

아니다. 신고 의무가 없다.


스위스에는 교육, 사회복지 같은 공공 서비스는 이민 단속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교사와 학교는 미등록 아동의 존재를 알게 되어도 이민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없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스위스 최대 노동조합 Unia의 공식 가이드에도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의무교육 기간 동안 공립학교는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16세 이하의 모든 아동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부분의 칸톤에서 미등록 아동도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거나, 오히려 의무적으로 입학해야 한다."


물론 이 원칙이 법으로 명문화된 것은 아니다. 칸톤마다 실제 적용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연방헌법이 보장하는 의무교육 기간 동안의 입학권만큼은, 칸톤을 불문하고 사실상 동일하게 작동한다.


현재 스위스에는 유효한 체류 허가 없이 생활하는 사람이 약 7만~15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가족 중에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부모가 어떤 상황에 있든 상관없이. 물론 물가가 아주 비싸기에 이렇게 생활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



▐ 이게 왜 가능한 걸까?


법적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말한 연방헌법 제62조. 다른 하나는 스위스가 비준한 UN 아동권리협약 제28조다. 이 협약은 모든 아동의 교육 접근권을 국적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보장하도록 요구한다. 스위스는 1997년에 이 협약을 비준했고, 그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적으로도 이유가 있다. 스위스에서 교육은 권리이지, 혜택이 아니다. 아이가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그 피해는 아이 개인에게 그치지 않는다. 교육받지 못한 아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부담이 된다. 그래서 스위스는 아이의 신분이 아니라 아이 그 자체를 본다.




▐ 어른의 문제를 아이에게 지우지 않는 나라


11년을 살면서 이 나라의 이민 정책이 때로는 냉혹하다고 느꼈다. 비 EU 외국인에게 문을 잘 열어주지 않고, 체류 허가도 엄격하게 관리하고, 조건이 조금만 어긋나도 떠나야 하는 나라다.


그런데 그 같은 나라가, 불법 체류 중인 부모의 자녀에게는 "그 아이가 학교에 오면 우리가 가르친다"라고 법으로 약속해 두었다.


어른의 문제를 아이에게 지우지 않는다. 부모가 어떤 잘못을 했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그것이 아이의 교육권까지 빼앗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매일 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그 아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정으로 이 나라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교실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가 보장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모순적이다. 어른에게는 그토록 엄격한 나라가, 아이에게는 이토록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니.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모순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나라는 그냥 그 선을 어디에 그을지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어른의 세계는 어른의 규칙으로, 아이의 세계는 아이의 권리로.


스위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어쩌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폐쇄적인 문화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부분이 스위스를 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것도 맞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저 '이기적인 나라'라고 느꼈던 부분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끔은 색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때가 있어서 함부로 평가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10년 넘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이방인으로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색다른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꽤 신비롭고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