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들
난생 처음으로 독감이 걸렸다.
아뿔싸.
한달 전에 독감예방접종을 하라고 했던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남아 도는 시간에도 끝끝내 맞지 않았다.
나는 걸리지 않을거라는 근거없는 확신으로.
A형 독감이라는데, 이건 백신만 맞았어도 충분히 커버가능했을텐데.
이렇게 걸려서 아프고 나니 그래 앞으론 무조건 맞아야겠다.
애들한테 늘 하는 소리처럼,
나도 고생해봐야 알았네. 에혀..
6-70대 노부부가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고 있었다.
아내분이 뇌졸중을 앓고 계셨는지, 남편분의 도움을 받아 지지대를 잡고 조금씩 걸음을 옮기셨다.
그 모습에 불과 10~20년 사이 우리들의 상황도 비슷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살짝 엄습했고, 순간 살기위한 운동에 처절하게라도 몸부림을 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같은 순간,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니가 저분처럼 건강이 악화된다해도, 나도 저 아저씨처럼 너를 꼭 부축해서 챙겨줄게. "
뎅~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나는 남편을 챙겨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마음의 크기가 달라서 그런걸까.
남편은 어이없어하는 내 표정을 보며, 혹여 자신이 아파도 나에게는 기대지 않겠다는 강한 부정을 했다.
애교도 없는 내가 남편에 대한 사랑도 없어 보이는 순간을 이렇게 가끔 맞딱들인다.
우리 부부는 늘 이런 식이다.
허허
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지금의 남편과 함께 가정을 꾸린다면 자신 있었다. 행복하게 잘 살거라는.
그 자신감이 과연 어디로부터 왔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서로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 당시엔 불탔던 로맨틱한 사랑이었을지라도, 지금은.. 그냥 사랑, 너도 나도 하는 사랑 말이다.
때론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 밑바닥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고, 그래서 믿음이 있고, 365일 편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자리 잡았다.
지각과 같이 단단한 마음 위에 나는 오늘을 즐긴다.
글을 쓰며,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으며, 친구와 수다를 떨며.
내가 오늘을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게
이쁜 아이들과 더 행복해보자는 뜻을 나누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자는 다짐도
남편이 늘 그 자리에서 있어줘서 함께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