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내 이름은 코코

by 제난희

새벽이 오고 있었다.

집 안은 아직 조용했지만 공기 속엔 작은 움직임이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다.


“삐리릭—”

짧은 알람음이 울렸다 꺼졌다.


아저씨는 울릴 걸 알고 있었던 듯,

아니면 원래부터 깨어 있었던 것처럼

울리자마자 곧바로 손을 뻗어 알람을 껐다.

다른 가족들이 깰까 봐 몸에 밴 조용한 습관이었다.


아저씨의 방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열리고

그는 소리 없이 부엌으로 향했다.


바나나 하나를 쓱쓱 껍질 벗겨 한입 베어 물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한 컵 꿀꺽꿀꺽 마신다.

식탁에 앉아도 될 텐데 늘 그렇듯 부엌에 서서.


아저씨는 내가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아저씨가 눈치채기 전에

재빠르게 배낭 근처로 이동했다.

아저씨가 백팩을 메고 모자를 들기 시작하는 그 순간—


기회를 놓칠 리 없지.

정확하게 뛰어올라 모자 위에 착지했다.


성공.


키 큰 아저씨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꽤 흥미로웠다.


아저씨는 곧장 현관으로 가지 않고

꼬맹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둘 다 이불을 발로 걷어차고 자고 있었다.


“이불을 다 발로 차고 잤네. 감기 걸리겠다.”


“아빠… 출근해요…?”


“깼어? 얼른 더 자.”


“아빠 잘 다녀와요…”


코코는 은근히 첫째의 인사가 좋았다.

어쩌면 아저씨도 이 말을 듣고 싶어서

일부러 소리를 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반면 꼬맹이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아저씨가 허리를 굽혀 뽀뽀하려는 순간—


모자가 옆으로 기울었다.

나는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떨어진다!


아저씨가 자세를 바로잡는 순간,

백팩 끈이 아저씨 머리를 ‘툭’ 밀어냈다.

모자는 완전히 벗겨졌고

나는 모자와 함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아씨…”

아저씨는 낮게 중얼거리며 모자를 다시 쓰고

배낭을 단단히 고쳐 멨다.


그 사이 나는 재빠르게 벽 쪽으로 내달렸다.

복도 벽에 찰싹 들러붙어

가능한 한 높은 곳까지 기어올랐다.


아저씨는 중문을 닫고

현관문을 조용히 열어 밖으로 나갔다.


남겨진 나는

벽에 붙어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깔깔깔— 너구나.”


어디선가 묘하게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코코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누구야!”


“누구야? 반말하네?”


목소리는 맞은편에서 들려왔다.

큰 사람 얼굴 그림이 걸려 있는 벽이었다.


‘그림이… 말을 한 거야? 이 집에 귀신이 있나?’


“그래, 나 여기 있어.”


“넌 그림이잖아. 어떻게 말을 해?”


“뭐래. 그림에 붙어 있는 ‘나’를 못 봐?”


코코는 깜짝 놀라 그림 쪽으로 더 가까이 이동했다.

그림 위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먼지거미가 있었다.


“너 자꾸 왜 날 따라다니는 거야?”


“따라다닌다니? 난 오늘 처음 보는데?

근데 너에 대해선 이미 유명하던데?

들어보니… 음, 생각보다 싱크로율이 높네.”


“나에 대해 들었다고? 너 치치 아니야?”


먼지거미는 기겁하듯 몸을 들썩였다.


“치치? 걘 내 여동생이야.

그리고 요즘 이 집엔 너 얘기로 난리거든?

탈출 도전, 대실패! 아주 화제야. 축하해!”


“흥. 치치가 그랬구나.”


“우리 가족은 원래 남의 일 좋아해.

심심하니까 재밌는 건 서로 바로 공유하지.

치치는 책장에 박혀 있고, 난 그림을 좋아해서 주로 여기 있고.”


코코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모자에서만 안 떨어졌어도 지금쯤 밖이었는데…

아저씨는 왜 허리를 굽혀 신발을 신는 거야?

가방이 머리로 떨어질 줄도 모르고… 인간이라면서!”


“워워, 코코. 너무 흥분했어.

그러다 꼬리 자른다니까.”


먼지거미 오빠는 앞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남자 인간들 원래 그래.

신발 신을 때는 신발만 보이지.

본능적이고, 복잡한 거 싫어하고.”


“모자만 안 떨어졌어도… 진짜 나갈 수 있었는데…”


“나도 한때 그랬지.

밖이 궁금해서 나가봤어. 탈출 말고 ‘외출’.”


“외출?”


“응. 나갔다가… 겨우 돌아왔지.”


먼지거미 오빠는 자기의 한쪽 빈 다리를 가르켰다.


“여기 보이지? 나 다리 7개야. 훈장 같은 거지.”


코코의 눈이 커졌다.


“어땠어? 바깥은?”


오빠는 과장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엔 좋았어.

아줌마 종이가방에 붙어서 엘리베이터도 타고,

아파트 밖 공기까지 느꼈거든.”


“와, 정말 대단해!”


오빠는 으쓱하며 가슴(?)을 폈다.


“잔디도 넓고, 나무도 크고, 곤충도 많지.

길고양이랑 산책하는 개들까지… 그림처럼 완벽해 보였어.


하지만 현실은 달라.

야생은 귀엽지 않아. 강한 자만 살아남지.


곤충들은 나보다 훨씬 강했고,

길고양이들은 날 장난감처럼 쫓아왔어.”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한 번은 다른 곤충에게 공격당해서

다리를 하나 잃었어.

그때 친척 거미가 날 구해줬지. 내 히어로였어.”


“그런데…?”


오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히어로가 아이들 손에 잡혀

뱃속의 실이 다 뽑히다가 죽었어.

도와줄 수가 없었지. 너무 작아서… 너무 약해서.”


코코는 숨을 삼켰다.


“끔찍해…”


“그래도 운은 좋았어.

택배 아주머니를 만나서

배송 박스에 숨어 집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그는 힘주어 말했다.


“그러니까, 코코.

이 집 꼬맹이들을 너무 미워하진 마.


내가 만난 꼬맹이들 중에…

여기가 제일 착한 편이야.”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