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진작 인정해야 했다
이 글은 다섯 번째로 발행된 ‘은밀해진 혼술’, 일곱 번째로 발행된 ‘조용한 중독자’를 차례로 읽은 뒤에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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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알중’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사용한다. 난 그게 싫다.
내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건 농담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말을 너무나 가볍게 하기 때문에, 내게 술 문제가 있다고 밝히더라도 대부분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데도 자꾸만 술을 권한다. 이 마수로부터 벗어나려면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 아, 농담이 아니고요, 제가 진짜로 알코올 중독이에요, 약도 먹고 있고요……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내 사정을 밝혀야 할 이유가 뭘까.
알코올 문제를 다스리는 데에는 친구나 가족도 대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장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정말로 심각하다는 걸’ 특정 사건을 통해 증명해 보이기 전까지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쉽게 술을 권한다. 설령 단주 중이라는 걸 알더라도 내가 흔들릴 때(딱 한 잔만 할까?) 나를 확실하게 말려주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그들이 문제인 건 아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중독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병으로서의 알코올 중독에 대해 많이 말하고 싶다. ‘나 완전 알중 다 됐어’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때의 가벼운 어조로부터 멀어져, 실제 알코올 중독자의 삶은 어떤 것인지 진지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어서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둬야 할 사실. 본인을 ‘알중’이라는 단어로 장난스럽게 소개하는 사람들, 술자리에 앉아 서로를 ‘알중’이라고 놀려대며 웃는 그 사람들조차 어쩌면 정말로 알코올 중독자일 수 있다.
적은 양의 술을 매일 마시는 것도, 자주 마시진 않지만 한 번 마실 때마다 폭음하는 것도 알코올 사용장애의 진단기준에 부합하는데 내 주위만 살펴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한국 사회가, 아니, 이 세상 전체가 알코올에 너무나 허용적이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중독 환자들이 훨씬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사례만을 보면서 알코올 중독 전반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지는 말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나 또한 수많은 중독 케이스 중 하나일 뿐이고, 당신의 경우는 나와는 얼마든지 다른 형태일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스스로 문제를 느낀다면 전문의와 상담하시기를.
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난 아직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중독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한 시점일 수도 있다. ‘아직은 괜찮아’라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치료를 시작하면 나처럼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에 빠져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독한 코로나 시기는 어찌어찌 지나갔다. 폭식과 폭음으로 살도 잔뜩 찌고, 체력도 약해지고, 정신 건강도 나빠지고, 지갑에도 폭격을 맞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젊었으며 살아 있었다. 판데믹이 서서히 사그라들며 마스크를 벗어도 될지 세계적으로 논의하고 있던 무렵에는 나도 슬슬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외딴 섬 연애’에 골몰하느라 멀어졌던 친구들 몇 명과도 다시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고, 드럼 연주라는 취미도 만들었다.
중독 환자들이 가장 흔하게 듣는 조언은 분명 취미를 만들어보라는 조언일 것이다. 남는 시간에 전념할 만한 취미가 있으면 중독행동을 덜 하지 않겠느냐는 짐작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언가에 중독될 정도로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당연히 취미를 만들기도 어렵다. 이미 말했듯 중독이란 대개 금전 문제를 함께 불러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쇼핑하는 데 쏟아붓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빚까지 만들어 가며 소비를 하는 사람이 취미에 쓸 돈은 남겨둘 수 있을까? 중독자의 머릿속 예산 내역에 취미 따위가 자리잡을 공간은 없다. 사실 중독자에게는 중독행위가 그 자체로 일종의 취미이기까지 하다.
중독과 관련 없는 새로운 취미를 가짐으로써 중독행위에 몰두할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나 역시 결단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직장을 하나 더 구하는 거였다. 평일 5일간 진행하는 본업이 재택근무 형태였으므로 주말에 회사 하나쯤 더 다니더라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돈을 아낀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미 신용카드 할부를 긁어놓은 게 많았던 데다 지인들로부터 빌린 돈도 갚아야 하니 물리적으로 절약할 만한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더 벌어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일하고, 회사마다 월에 한 개씩 주어지는 연차로 매달 단 이틀만을 쉬는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각종 성인병 고위험군에 속하는 고도비만의 저질 체력 인간이라 해도 스물아홉은 스물아홉이었다. 젊은 사람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조차 꽤 팔팔하며, 제 아무리 망가지더라도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망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투잡 생활을 제법 잘 해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며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한 달에 이틀만 쉬면서 일하는 상황은 감당하기 버겁다. 알코올 중독, 소비 중독, 배달음식 중독에 섭식장애까지 겪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의지를 기대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냥 왠지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코로나 삼 년 암흑기를 엉망진창으로 보내고 나니 ‘이젠 정말로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간 한심하게 살아온 만큼 앞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욕으로 불타오를 수 있었다.
그렇다. 때로는 중독자들도 벌여놓은 일들을 스스로 ‘수습’할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히며, 이를 연료 삼아 놀랄 만한 에너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투잡을 통해 번 돈으로 드럼을 배우고, 연습실 비용을 결제하고, 방송대에 등록하고,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업무와 취미와 자기계발로 시간의 틈새를 촘촘하게 채워놓으니 중독행위는 확실히 덜 하게 되는 듯했다. 해보기 전까지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만 들리던 ‘취미를 가져보라’는 조언은 옳았다.
그런데 뭐랄까, 반만 옳았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중독자에게는 중독행위가 그 자체로 가장 소중한 취미이고, 빚을 내 가며 소비하는 사람이 생산적인 취미를 위한 예산을 자기 의지로 남겨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 년 동안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만 일하며 지내다 보니 자신감이 무척 떨어진 상태였다. 난생 처음 가보는 헬스장이라는 공간에 건강하고 날씬한 사람들만 득시글거릴 것 같아 일주일 내내 헬스장 후기를 찾아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을 정도였다. 평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일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랬던 내가 운동과 공부를 시작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취미를 갖게 되니 빠르게 이전의 활력과 자존감을 되찾아갔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정말이었다.
문제는 ‘자신감이 떨어지기 전 건강한 상태의 나’는 사람과 만나서 노는 걸 몹시도 좋아했다는 것이다. 성인과 성인이 만나면? 아무래도 술을 마시게 된다. 첫 만남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홀로 살고 있었던 나는 대부분의 만남이 새로운 만남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거의 모든 만남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한동안 술을 마시지 않고도 잘 지냈었는데, 술을 동반한 만남이 잦아지니 ‘사교적인 나’라는 함정에 또다시 빠졌다.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나의 모습…… 어찌나 매력적인지. 실제로 매력적인지 나만의 착각일 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배가 아플 정도로 폭식을 하고 쓸개즙을 토할 때까지 폭음하는 게 아니라, 맛있는 안주를 적당히 먹으면서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이건 ‘해로운’ 음주가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렇게 술을 마시는 건 나를 위한 일이야. 지금 난 즐겁고 행복해.
술이 가져다주는 또다른 환상이 있다. ‘깊은 대화’, ‘의미 있는 교류’라는 환상이다. 술도 좋아하고 사람과의 대화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이렇게 말하곤 한다. 술을 마셔야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술에 취한 채 읊는 개똥 철학과 유년 시절의 상처 이야기는 어쩜 그렇게도 중요하게 느껴지는 걸까? 심지어 처음 만난 사람과도 사이에 술을 놓아두기만 하면 얼마든지 ‘깊은 교류’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숙취만 남기고 모조리 휘발되어버리는 어젯밤의 ‘의미 있는 대화’들.
주말에만 다니던 두 번째 회사의 동료들과 친해지면서, 퇴근한 뒤 그들과 술을 마시는 날도 많아졌다. 재택근무를 하는 평일에는 또 평일대로 사람들을 만났다. 약속이 없는 날에도 집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취미를 만든 뒤 알코올 중독이 나아지는가 싶었건만 정말 잠깐이었다. 다시 술잔 앞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삶의 모든 감정과 사건들을 알코올로 갈무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오늘 기분 좋은 일 있었어. 술 마시면서 자축해야지. 오늘 기분이 너무 안 좋네. 술이나 마시자. 행복도 불행도 오늘 반드시 술을 마셔야만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한편 술을 마시는 데에는 보상심리 또한 작용한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처럼 쓰고 있지만, 거의 쉬지도 못하고 매일 일하며 생활하는데 힘들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므로 하루 치의 업무가 끝나면 반드시 술을 찾게 되었다. 애써 벌어들인 돈으로 겨우 채워둔 시간의 틈이 다시 알코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드럼이고 헬스장이고 뭐고, 점점 더 술만 마시게 됐다.
알코올 중독. 그건 정말로 농담이 아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달라지고 나아지려 해봐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또 중독행위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이 시기의 나는 아직 진정한 위기에 봉착한 것조차 아니었다. 알싸한 술 냄새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너머에는 더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