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절반의 승리 : 다시는 나를 믿지 말자

당신이 나를 믿어도 나는 나를 안 믿기로 했어.

by 윤해원

단주 중인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시련이 크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갈망이요, 하나는 습관에 의한 충동이다.


이렇게 말하면 갈망과 충동이 뭐가 다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 둘을 분명하게 구분해두고 싶다. 의학적으로도 갈망과 단순한 충동은 다르다. 갈망은 ‘지금 당장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술 이외에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는 상태이며, 보통 10분~15분가량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내가 말하는 ‘습관에 의한 충동’이란 그간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음주를 해온 기간이 너무 길어서, 평소와 조금만 다른 상황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술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은 안다. 인생의 기쁨도, 슬픔도 모두 훌륭한 안주가 된다는 것을. 술을 마시면 ‘행복은 배가 되고 불행은 절반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나 또한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나쁜 일이 있을 때도 술을 마셨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2025년 10월 22일은 기분이 심히 좋지 않은 날이었다.



여섯 번째 순서로 발행된 번외편 ‘현재진행형 알코올 중독자의 갈망 일기’에서는 아무런 동기도 없이 찾아와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한 갈망을 다뤘다. 이번 글에서는 갈망과는 구분되는 충동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전에 술을 찾곤 했던 상황과 비슷한 경우에 처하면 자기도 모르게 술을 떠올리게 되는 기전을 설명할 것이다.




10월 22일 새벽에는 개인적으로 감정이 상한 일이 있었다. 분노의 폭풍은 자고 일어난 뒤에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오후 세 시쯤 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스터디 카페에 앉아 있었지만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몹시 힘들긴 했지만 술 생각은 없던 상태였다.


바다를 보고 오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생각하며 기차 시간을 찾아봤다. 기차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바다는 정동진. KTX를 타면 약 한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처 역에서 출발하는 제일 빠른 차는 19시 29분. 이걸 타면 20시 27분 도착. 정동진에서 돌아오는 막차는 22시. 어차피 거기 가서 바다를 보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을 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왕복 기차표 값이 34,000원에, 역까지는 택시로 오고가야 하니 왕복 택시비 16,000원을 더하면 50,000원이었다. 바다를 보며 기분 전환하는 값으로 50,000원이라고 생각하면…… 저렴한 건지 비싼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돈이 내 지갑에서 나가는 거였다면 저렴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내가 지출하는 돈은 전부 남편의 돈이다. 작년에 술 문제로 해고당한 뒤(나중에 별도의 글로 자세하게 다룰 예정) 벌써 일 년째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남편은 내가 한동안은 글쓰기와 재활에만 매진하기를 바라며 응원해주고 있지만, 내 기분이 나빠진 걸 수습하기 위한 비용이 항상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간다는 건 참 우습고 부끄러운 일이다.


어차피 오늘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가만히 앉아 우울해하느니 밖으로 나가서 뭐라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결혼하기 전에 우리는 약 이 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 남편은 강원도 원주에서 어머님과 함께,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았다. 사실 결혼이라거나 동거라거나 하는 일들은 거의 계획에 없던 부분이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개인 공간을 중요시하며 정서적 침범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중독 문제가 없었다면 우리 둘은 결혼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연애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 공간을 중시한다고 해서 외로움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남편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서울에 사는 동안 나는 상당한 고독감을 느꼈다. 매일 남편과 밤새워 통화하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속의 공허가 있었다. 그걸 채우기 위해 밤이면 늘 바깥으로 나돌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실 때가 아니라면 혼자서 향하는 곳은 거의 항상 LP바였다. 음악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 나에게 그곳은 그 자체로 최고의 공간이었으며, 나처럼 혼자 오는 손님이 많은 편이라 낯선 사람과 즉흥적으로 어울리기에도 좋았다. 무엇보다 사장님의 운영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신청곡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신청한 노래는 최대한 다 틀어주시던 사장님. 외진 곳에 있는 가게까지 일부러 찾아왔다면 분명 좋은 스피커로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 것일 텐데, 원하는 곡은 전부 듣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작년 10월에 다소 갑작스럽게 결혼과 이사가 결정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그곳에 가서 사장님과 술을 마셨다. 사장님은 결혼해서 강원도로 이사 가게 되었다는 내 말을 듣고는 가게 문을 닫고 술동무, 말동무가 되어주셨다. 그날 영업 마감 시간을 한참 넘긴 시각까지 그곳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사장님은 평소처럼 다정하게 악수를 건네고 우정어린 포옹을 해주시면서 간단한 덕담까지 해주셨다.


그곳에서의 경험 덕분에 LP바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번 기회에 새로운 LP바에도 한 번 가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레코드판을 구경하며 음악도 듣고 적당히 맛있는 것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게다가 바다는 100km 이상 떨어져 있으나 LP바는 그 정도로 멀진 않으니까. 그리고…… 아마 바다 가는 것보다 돈도 훨씬 덜 들겠지. 술을 마실 것도 아니니. 그렇게 생각하며 처음 가보는 어느 가게에 가보기로 했다.


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감시하는 사람 없이 혼자서 술집에 가더라도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도착해보니 매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혼자 앉을 만한 자리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바깥을 내다볼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 있는 2인석이 있긴 했지만, 현관문 바로 옆이라 너무 추울 것 같아서 거기 앉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들어갔을 당시에는 나 말고 손님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양해를 구하고 일단 4인석에 앉았다. 3인 이상의 손님이 오면 비켜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실은 딱히 오래 있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술을 마시겠다는 생각이 없었기에 무알콜 음료를 취급하는지 미리 알아보고 방문했다. 메뉴판에는 내가 조사한 대로 논알콜 칵테일인 셜리 템플과 무알콜 버드와이저가 있었다. 무알콜 버드와이저…… 어쨌든 그것도 술은 술이지. 무알콜 맥주가 단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 의견은 후자 쪽에 가깝다. 술과 비슷한 냄새, 맛, 모습을 지닌 음료를 계속 마시다 보면 언젠가 ‘진짜 술’을 원하게 된다. 이미 몇 번이나 그런 경우를 겪었으므로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셜리 템플을 주문했다.


종이에 Oasis의 ‘Talk Tonight’과 ‘Sad Song’을 적어서 카운터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그러나 삼십 분이 넘도록 기다려도 내가 신청한 곡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점원을 불러 물어보니 ‘아, 그게요…… LP가 너무 많아서 제가 찾을 수가 없어요. 사장님이 오셔야 돼요.’라고 했다. 다시 삼십 분쯤이 지나니 사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왔지만 이름 모를 블루스 곡들만 계속 나올 뿐 신청곡은 틀어주지 않았다. ‘Talk Tonight’을 꼭 듣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한 시간 반쯤 거기서 머물며 일기도 쓰고, 책도 조금 읽었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재미없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이거였다. 맥주 딱 한 잔만 마실까? 아니면 하이볼 한 잔만? 진짜 딱 한 잔인데 뭐 어때? 여기까지 왔는데 기분이 좋아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 한 잔만 마시면 남편은 모를 거야. 딱 한 잔만…….


두 눈이 빠르게 메뉴판 위의 글자들을 훑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위스키 샷을 마실까? 그럼 한 잔만으로도 꽤 취기가 올라올 텐데. 아니면 온더락? 글렌피딕 딱 한 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아니야. 한 잔만 마실 거라면 오래 마실 수 있는 술이 좋아. 탄산을 힘들어해서 맥주는 천천히 마시게 되니까, 맥주를 마시자. 그렇다면 당연히 인디카? 오랜만에 산 미구엘? 잠깐만, 여기 생맥주도 있어? 심지어 기네스 생맥주?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타협하여 버드와이저 제로, 즉 무알콜 맥주를 주문했다. 맛이 엄청나게 없었고 기분도 비참해졌다. 또다시 나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느낌. 물론 ‘진짜 술’을 마셔버린 것보다야 낫지만, 그래도 역시 굴복하고 말았다는 기분. 처음 들어올 때 셜리 템플과 함께 주문한 치즈 플래터를 다 먹자마자 24,000원을 결제하고 밖으로 나왔다. 즉시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술은 더 마시지 마. 그건 당신한테 안 좋아. 내 과실과 별개로 그 이상은 하지 마. 결제 내역 보고 무슨 말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거, 그리고 이게 그 얼마 안 되는 경우인 거 알 거야. 지금 바로 집에 들어와서 자.’


남편이 그런 식으로 ‘청유’가 아닌 ‘명령’의 느낌에 가깝게 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참고로 그로부터 두 시간 전에 마지막으로 온 카톡 내용은 이랬다.


‘아직 밖이지? 요새 겨울 가까워져서 춥기도 하고, 저녁도 안 먹었을 텐데 걱정된다. 따뜻한 곳에 있고, 밥 맛있는 거로 사먹고,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서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술을 마셨다고 생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결제 내역에 상호명이 ‘LP바 OOO’ 이런 식으로 적혀서 전송된 모양이었다. 술을 마신 게 아니라고 급하게 답장을 써서 보냈다.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집을 나와버린 상태였는데도 어쨌든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은 아무것도 따지거나 의심하지 않고 내 말을 믿어주었다.


돌아올 때도 버스를 탈 계획이었지만 피곤해서 택시를 불렀다. 택시비로 18,700원이 나왔다. 24,000원에 18,700원…… 42,700원. LP바가 열기 전까지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웠으니 그것까지 합하면 48,000원. 이럴 바엔 바다나 보러 갈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가면 힘들고 추웠을 것이다.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기로 하고 택시에서 내리며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집 근처 왔는데 많이 춥지도 않고,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조금만 산책하다 들어갈게. 술 마신 건 진짜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11시까지는 들어갈게.’


이번에도 남편은 나를 의심하지 않고 다정한 답장을 보내 왔다. 사실 나라면 나 같은 배우자는 믿지 못할 것 같다. 아무리 술을 안 마셨다고 주장하더라도 분명 술을 마셨을 거라고 확신해버렸을 듯하다. 남편은 도대체 어떻게 나를 믿는 걸까? 나조차도 믿을 수 없는 나를. 그 믿음을 배신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LP바에서 무알콜 맥주를 마셔버렸기 때문에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진짜 술’에는 손대지 않았으므로 반쯤은 승리한 거라고, 온갖 술로 가득 찬 메뉴판 앞에서 감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위스키나 맥주를 선택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고 자축하며 밤의 공원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그때 느낀 감정 중에는 패배감과 굴복감뿐만이 아니라 놀라움도 있었다. 술잔을 바라보며 거듭 이렇게 물어야만 했다. ‘이 짓을 왜 또 하고 있을까? 어째서?’


앞선 글에서 갈망에 대해 말할 때 이야기했듯이, 나는 이미 단주 과정에서 숱한 ‘음주 실패’를 겪었다. 음주 실패란 내가 임의로 만들어낸 개념으로 ‘기껏 술을 마셨는데도 기분 좋게 취하지도 못하고, 즐거운 경험을 하지도 못한 상황’을 의미한다.


작년 10월에 결혼한 후 단주를 이어오는 중인 나는 갈망이나 충동에 패배하여 남편 몰래 술을 마셔버린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모두 실패한 음주의 경험으로 남았다. 더는 술을 마시더라도 예전처럼 즐거워질 수 없음을 깨달은 나는 ‘술을 마셔봤자 나한테 좋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의학적인 갈망이 아니라 단순한 충동에 의해 술을 마시고 싶다고 느끼는 일은 거의 없게 됐다.


그런데 또 술을 마셔버린 것이다. 무알콜 맥주이긴 하지만 어쨌든 술의 형태를 띤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해 마셨다. 왜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고민해보다가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그날의 나는 ‘부정적인 사건 발생 → 술집에 감 → 술을 마심’이라는, 내가 여러 해 동안 반복해온 패턴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이다.


‘조건반사’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떠올려보라.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반복하면 나중에 그 개는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힘든 일이 생겨서 기분 전환을 하겠다며 술집에 가는 건 내게 종소리를 들려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위다. 종소리가 울리자 나는 지난 십 년간 그래왔듯이 술을 떠올리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파는 가게는 전쟁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참전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분명하게 있는 전쟁터다. 곳곳에서 알코올이라는 이름의 총탄이 날아드는 곳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가놓고서 또 술을 마셔버렸다고 한탄하는 건 한심한 일이다. 또 한 번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다시는 나를 믿지 말자. 내 의지와 자제력을 절대로 믿지 말자. 남편이 나를 믿더라도 나는 나를 믿어서는 안 된다. 술의 유혹이 존재하는 공간에 아예 가지를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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