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보다 더 무서운 '책 중독'에 관하여
난 배달 앱에만 돈을 가져다 바친 게 아니었다. 정말 온갖 데다 돈을 썼는데, 그것들의 세목을 여기서 자세하게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이것만큼은 밝혀야겠다. 배달 음식 외에 내가 매달 꾸준히 사들인 것. 그건 책이었다.
술과 배달 음식은 하나의 현상으로 묶어서 생각할 수 있다. 배달 주문을 시켜서 무언가를 먹을 땐 거의 항상 술도 곁들이곤 했으니까. 그 반대편에는 책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게는 넘어야 할 산이 두 개 존재했는데 하나는 술, 하나는 책이었던 셈이다.
‘책 중독’이라는 말은 왠지 이상하다. 그런 게 진짜로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 또한 배달 주문을 하는 행위처럼 쇼핑 중독이라고 설명한다면 좀 더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엄밀히 말하자면 책을 ‘읽는’ 행위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책을 ‘구매하는’ 행위에 중독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독서 커뮤니티에서는 자조적으로 ‘북호더’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책을 뜻하는 book과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사람을 뜻하는 hoarder를 합친 말로, 구매해둔 책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새로운 책을 사들이다 보니 읽을 책이 쌓여간다는 의미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으니 독서는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다. 경제 생활을 하는 성인이 취미에 돈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책을 사 모으는 행위가 단순한 수집욕을 넘어 정말로 병적이라고 느낀다. ‘사놓으면 언젠간 읽겠지’라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책을 전부 사들이고, 기껏 사둔 책들은 펼쳐보지도 않은 채 방치하며, 평생 읽더라도 다 읽기 어려울 만큼의 책을 이미 쌓아놓고서 계속 새로운 책을 구매하는 걸 멈출 수가 없다면 그건 중독이 맞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모두 포함하여 약 3000권가량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중 300권도 채 읽지 않았을 것 같다. 읽지 않은 책이 2700권이라고 가정하면 해마다 100권씩 읽더라도 27년간 읽을 수 있는 양이다. 즉 향후 30년 정도는 책을 전혀 사지 않아도 좋을 만큼 이미 많은 책들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책을 구매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중독은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오래전 마음속에 심어진 작은 씨앗이 커다란 중독으로 서서히 자라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술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성인이 된 뒤 쉽게 알코올 중독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처럼, 책 중독도 갑작스럽게 시작된 게 아니었다.
이 책의 맨 앞부분에서 밝혔다시피 엄마는 아빠의 구타를 견디다가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집에는 엄마의 흔적이 여기저기 많이 남아 있었지만 가장 존재감이 강한 건 동화책 전집이었다. 엄마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일하지 않는 남편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동화책 외판원 일을 한 적이 있었다. 80권짜리 동화책 전집은 한때 내 곁에 엄마가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사실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까지는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또래에 비하면 많이 읽는 편이긴 했지만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게 좋아서 반쯤 억지로 읽었을 뿐, 정말로 책이 재미있어서 읽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동화책 전집을 읽고 또 읽으며 엄마의 흔적을 끊임없이 더듬었다.
그 책들 속에 엄마가 사라진 이유가 적혀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책의 특정 페이지 속에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아두었을 것 같았다. 물론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는 아빠의 폭력 때문임이 분명했지만 그것 말고 내가 진정으로 궁금했던 것은 이거였다. 왜 나를 버리고 떠났는지, 왜 나를 데려가지 않았는지, 엄마가 없으니 이제 아빠는 할머니와 나를 때리는데 왜 나를 이 지옥 속에 내버려두는 것인지. 그 까닭에 대한 암시가 엄마가 남겨둔 책 속에 들어 있을 것만 같아서 매일 책들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엄마의 비밀 암호를 찾아 동화책 전집을 탐독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고, 집에 있는 책들이 아닌 다른 책을 향한 흥미도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학교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찾아 읽는 학생이 되어갔다.
아빠는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고 책과도 거의 인연을 맺지 않은 채로 한평생을 살아왔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 대리운전으로 하루 벌어 하루를 살던 아빠는 밤마다 취객들을 상대하며 숱한 모멸감을 견뎌야 했다. 딸이 책을 읽는 모습이 아빠 눈에는 무척 좋아 보였을 것이다. 아빠가 나를 자주 때렸고 여러 면에서 훌륭하지 못한 부모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아빠는 나만은 당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고, 책을 많이 읽으면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신화를 진지하게 믿었다. 아빠의 기분이 나쁜 날에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으면 화풀이 대상이 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렇다 보니 나의 마음속에서 책은 점점 더 ‘좋은 것’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는 집보다도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최대한 늦게까지 머물렀다. 책을 대출하면 집에서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긴 했지만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머무는 경험 자체가 좋았다.
집에 있어 봤자 아빠한테 욕이나 듣고 맞기나 할 뿐이다. 아빠가 할머니를 때리면 내 힘으로 말릴 수도 없었고, 그럴 때마다 문을 잠그고 틀어박혀 눈물을 흘릴 나만의 방도 없었다. 나는 ‘정숙’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는 도서관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사랑했다. 도서관이야말로 차라리 나의 집이었으며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한편 책을 읽을 때 분야를 특별히 가리지는 않지만 소설과 에세이를 자주 읽는 편이긴 하다. 왜 나는 문학에 이끌렸을까? 아마 문학이라는 것이 인간에 의해 쓰인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진짜 내가 뻑 가는 건 다 읽고 났을 때 그걸 쓴 사람이 내가 내킬 때면 언제나 전화를 걸 수 있는 끝내주는 친구였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책이다.
술을 마시며 새로운 사람들을 더 쉽게 알아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위 구절과 같이 저자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경험을 할 수도 있고, 소설 속의 인물과 연결되어 그의 삶을 잠시 살아볼 수도 있다. 어른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늘 외로웠던 나에게 문학은 가장 쉽게 사람의 손길, 사람의 온기,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즉 내게 책이란 처음에는 현실의 고통을 잊게 만들어주는 도피처였고,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다. 술을 이용한 방식과 똑같은 형태로 독서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았으므로 책을 향한 애착이 중독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성인이 된 이후였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건 오랫동안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읽고 싶은 책이라 해도 도서관에 없다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쉽게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종종 책을 사 읽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형태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한두 권씩만 사서 반드시 다 읽었다.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었으므로 꼭 책을 소장해야만 한다는 생각도 희미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회사에 다니며 알바비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얻게 되자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좋아하는 분야에 돈을 쓰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한 권 두 권 책을 구매하다 보니 이제는 단지 빌려서 읽는 것에는 만족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도서관에서 재미있게 읽은 책들을 ‘언제든 다시 꺼내 보기 위해’ 소장하기 시작했다. 책에 쓰는 돈은 점점 더 많아졌다. 나중에는 월세와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남겨두고 모조리 책을 사버려서 땡전 한 푼 없이 한 달을 버티게 되기도 했다. 일상의 많은 것들이 우선순위가 낮아졌다. 교통비조차 아까워서 수 킬로미터씩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며 그 돈으로 책을 샀다. 이때부터는 아예 읽어보지 않은 책들도 고민 없이 사들여 쌓아두었다.
당시 살던 고시원 방은 금방 책으로 가득 찼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책들이 꽉꽉 들어찬 그 방에서 기이하게도 행복과 안도감을 느꼈다.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도 계속 책을 샀다. 비정상적인 소비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책을 많이 살 이유가 없음을 알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어차피 책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사놓으면 언젠간 읽겠지.
그러나 종이책은 공간을 차지한다. 침대, 책상, 옷장만 겨우 들어가는 고시원 방 안에 더는 책을 쌓아두기가 어려워졌다. 그때부터 나의 관심은 전자책으로 향했다. 가지고 있던 종이책을 대부분 중고 서점에 팔아버리고 전자책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게 훗날 파국으로 이어질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아름다운 표지, 손 안에 묵직하게 감겨드는 무게감, 종이의 질감과 냄새 등 책이 지닌 물성을 좋아하던 나는 의외로 전자책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너무나 컸고, 배송을 기다릴 필요 없이 결제만 하면 바로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10퍼센트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서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책을 살 수 있으니 좋았다.
첫 전자책은 2018년 10월 28일에 구매한 미하엘 엔데의 <모모>였다. 이 책을 시작으로 꾸준히 전자책을 샀지만 2019년까지는 한 달에 2~3권 수준으로 건강하게 소비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2020년 6월 3일, 총 120권으로 이루어진 범우문고 세트를 79,200원에 구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9월 1일에는 100권짜리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세트를 88,200원에 구매했다. 이때 나는 적성에 잘 맞는 좋은 직장을 얻어 들뜬 상태였다. 스스로에게 주는 취업 축하 선물로 220권의 전자책을 품에 안은 채 만족감에 젖어 있었던 것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2020년까지는 그렇게 전집을 한꺼번에 구매한 적이 두 번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달마다 1~3권 정도만 사면서 즐겁게 독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2021년 3월부터 달에 6권 이상으로 구매량이 늘어났는데, 한꺼번에 많이 사는 경우는 없이 항상 한 권씩만 사긴 했지만 구매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이 즈음부터 슬슬 이런 생각을 했다. 굳이 예전에 종이책을 살 때처럼 한 권씩 살 필요는 없겠네?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무겁게 집까지 들고 와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한동안은 한 권씩만 구입하는 습관을 유지했다.
2022년 4월에는 11권을 샀다. 7월에는 전집 18권을 포함해 30권을 샀고, 9월에는 전집 없이 단독으로 22권을 샀다. 10월에는 24권을 샀는데 구매의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최초로 세트나 전집이 아닌 5권의 도서를 한꺼번에 결제했고, 일주일 만에 또다시 10권을 한꺼번에 구입했다.
전자책 10권을 구매하면 그 가격은 약 10만 원에서 12만 원 정도이다. 만 원씩 열 번 결제하는 것과 10만 원을 한 번 결제하는 건 똑같은 일인데도 왠지 후자를 더 경계하게 되지 않나. 처음이 어렵지 막상 10만 원을 책값으로 한 번에 지출해보니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여러 책을 한꺼번에 사들이는 경향이 생겨나면서 구매량 역시 늘어났고, 11월에는 총 43권을 구입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월에 최소 20권에서 많게는 40권가량의 책을 구매하는 패턴이 지속되었다.
2024년 1월은 건강이 크게 나빠지고, 이직한 회사의 분위기가 나와는 맞지 않아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시기였다. 이때 한 달 동안 무려 188권을 구매하는 미친 기록을 달성했다. 어떻게 한 달 동안 188권이나 되는 책을 구매할 수 있었는지, 어떤 책을 그렇게 많이 사들인 것인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뒤쪽의 다른 글에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겠다.
8월에는 내 알코올 중독 문제가 제대로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남자친구였던 남편과의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다. 다만 나의 진정한 문제는 알코올 중독이라기보다도 습관이 되어버린 과소비였다. 남편은 내가 돈을 함부로 쓴다는 건 알았지만 당시 남편이 나의 중독에 관해 알고 있었던 사실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8월 16일,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말했을 때 남편은 그전까지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던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원아, 결론부터 말할게. 그렇게 큰 돈이 지금 나한테는 없어. 그렇다. 나는 중독으로 전재산을 탕진하고는 남자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수습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돈을 빌려 달라고 한 게 그때가 처음도 아니었다. 이 부분도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
늘 다정하던 남편의 싸늘한 표정을 보고도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남편의 그런 표정을 봤기 때문에,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진실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중독행동을 할 이유가 되었다. 내가 또 망쳐버렸으니까, 나란 인간은 한심한 인간이니까 또 술을 마시고 책을 사야 했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건 언제나 어렵고 머무르는 건 달콤하다. 울면서 매일 술을 마시고 해로운 인간관계에 몰두하던 나는 77권을 한꺼번에 결제하는 대기록을 다시금 세웠다.
평소와 다름없이 엉망으로 취한 2024년 8월 19일 새벽에, 더는 눈물도 나오지 않아 그저 멍하니 누워서 장바구니에 책들을 끊임없이 담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결제 완료’라는 글자와 함께 735,300원이라는 숫자가 화면에 찍히자 초조함인지 짜릿함인지 모를 감각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책을 열어보기 전, 구매한 지 일주일 이내에는 얼마든지 결제 취소를 할 수 있었다. 그저 취소 버튼만 누르면 되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나의 중독행동은 없었던 일이 되는데. 내가 또 저질러버린 멍청한 짓을 돌이킬 수 있는데. 나는 77권의 책을 곧장 다운로드하는 것으로 퇴로를 차단했다.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어리석은 인간인 채로 영원히 남아 있고 싶었다.
그해 2월부터 8월까지 553권을 구매했다. 동일한 6개월이지만 전년도 6월부터 12월까지는 214권을 구입했으니 같은 기간 동안의 구매량이 2.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10월에는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는데도 이전과 별 변함없이 21권을 구입했다. 한 달 동안 21권을 구매해 놓고도 나는 내가 많이 나아졌다고, 역시 남자친구랑 다시 잘 지내게 되니까 금방 상태가 괜찮아진다고 여겼다. 이미 일반인의 기준으로부터 까마득히 멀어진 경제적 관념을 지니게 되어버렸다는 걸 그 순간에는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렇게 꾸준히 책을 구매해나가는 동안 산더미처럼 쌓인 신용카드 대금은 내 능력으로 지불이 불가능해졌다. 상황을 알게 된 남편은 고민하더니 돈을 대신 갚아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믿어보고 싶다고 했다. 2024년 10월 31일, 결혼식도 신혼 여행도 없이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어떻게 그가 나의 남편이 된 것인지, 왜 그가 나를 떠나지 않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떤 경우라도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믿는 일은 이성이나 논리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 같다. 믿을 구석이 전혀 없는 결함투성이 인간 곁에 남겠다고, 그의 문제를 함께 감당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분명히 있고, 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
과소비를 포함한 나의 중독 성향을 훤히 알게 된 남편은 돈을 대신 관리해주면서 모든 소비를 자신의 카드로 하도록 했다. 내 명의의 카드가 아니니 온라인 결제를 하려면 남편의 허락을 받아 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고, 혹시 몰래 결제에 성공한다고 해도 금액이 찍힌 문자 메시지가 즉시 전송되니 전처럼 마음대로 소비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과소비 문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결혼 후에도 몇 차례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대해 별도의 글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중독자들에게 깨끗하게 나아져 정상인의 생활로 돌아가는 ‘완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회복과 재활을 위한 끝없는 노력만이 있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중독자들은 줄곧 삐끗하고 미끄러진다.
나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남편을 통해 지지와 통제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환경으로 이동할 수 있었으니까.
알코올 중독을 포함한 각종 중독이 극심했을 때, 중독을 ‘이겨낸’ 사람들의 수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 너흰 입원할 수 있었다 이거지? 폐쇄병동에 입원할 만큼 돈도 있었고, 주변에 너흴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는 거잖아? 참 좋으시겠네. 나한텐 그딴 거 없어.
환경을 바꾸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 우습게 들리는지 안다. 간절하게 나아지고 싶고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도 도저히 환경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중독은 대개 금전 문제와 관계로부터의 고립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중독행위에 골몰해온 사람은 제대로 된 중독 치료를 받을 만한 여윳돈이 없을 확률이 높고, 가족이나 친구로부터도 이미 ‘손절’당해 의지할 만한 친지가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환경을 바꿔라, 입원 치료를 받아라, 주위의 도움을 구하라는 말은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다.
그러나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제로 환경의 변화와 주변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그토록 많은 수기에서 폐쇄병동이나 가족의 존재가 거의 항상 언급되는 이유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중독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으며 중독은 철저하게 환경의 문제다. 버튼을 자꾸만 누르게 되는 당신 앞에서 그 버튼을 치워줄, 최소한 보이지 않게 가려줄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
남편과의 결혼은 내게는 폐쇄병동 입원과 유사한 기능을 갖는 일이었다. 남편은 재활 과정에서 힘겨워하는 나를 지지해주면서도 혹시나 내가 또다시 중독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늘 주시하고 있다. 이렇게 나를 응원하고 감시하는 제3자의 존재가 있음에도 훗날 몇 번의 문제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니, 혼자서는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환경을 바꿀 만한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없어 슬프다. 그러나 의사들조차 입원하라는 말만 반복하는 건 그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며, 대다수의 중독자들은 병동에서 나오는 즉시 중독행동에 다시 빠져든다. 나 또한 남편의 감시가 소홀해지면 또 술을 마시고 책을 살 거라는 걸 스스로 느낀다. 이게 바로 중독이 무서운 이유이자 내가 몸으로 부딪히며 알게 된 뼈아픈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