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중독자 : 중독은 의지로 '참을' 수 없다

멀쩡해 보이는 그 사람이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

by 윤해원

앞선 글에서 코로나 판데믹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며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했다. 음식으로 마음의 공허감을 채우고 때로는 폭식으로 스스로를 벌하던 나는 한 끼에 삼만 원씩 지출하는 게 일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하루에 두 번 이상 배달 주문을 하는 날도 많았다.


당시 내 월급은 180만 원이었다. 식비로만 한 달에 60만 원에서 90만 원가량을 지출하는데 가계 상황이 정상일 리 없었다. 신용카드 대금을 처리할 돈이 모자라 지인으로부터 빌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잠시라도 일을 쉰 적이 거의 없었는데도 저축은 단 한 푼도 하지 못했다.


내 삶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건 명백했다. 하지만 나는 외로울 때마다 배달 앱을 켜는 걸, 배달 음식 말고도 이런저런 것들을 구매하며 돈을 펑펑 써대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던 나에게도 가끔 제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었다. 자기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 중독자들은 무엇을 할까? 놀랍게도 더더욱 중독 대상에 매달린다.


삶이 걷잡을 수 없이 망해가고 있다는 감각이 해일처럼 밀려들기 시작할 때, 소비하는 행위는 즉각적인 기쁨을 가져다준다. 불안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와중에도 결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전히 무언가를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초조함이 잦아든다.


'쇼핑'이라고 하면 옷이나 가방 등을 사는 걸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일종의 쇼핑이다. 배달 앱을 켜고 스크롤을 쭉쭉 내리다가 음식 몇 개를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30분 만에 따끈따끈한 음식이 현관문 앞으로 배달되는 무척 편리한 쇼핑.


아무 노동 없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매하는 일에 중독되어 있었던 나는, 바로 쇼핑으로 인해 모든 게 무너져내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쇼핑으로 도망쳤다. 꼭 배달 음식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것들을 사들이며 매달 월급 만큼의 금액이 찍힌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그 지경이 되었는데 주변에서 아무도 안 도와줬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나는 스스로를 '조용한 중독자'라고 정의한다. '중독자'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다.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은 분명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을 것 같고, 부모 집에 얹혀 살며 중독행위에만 골몰할 것 같고, 겉모습만 보더라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중독이 가장 심했던 시기에 나는 늘 일하고 있었고, 내가 번 돈으로 모든 지출을 감당하고 있었으며,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중독자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중독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의 중독행동은 모두가 잠든 새벽, 혼자뿐인 방 안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중독자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조사를 챙기지 못하고, 아파도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가지 못하며, 심지어는 친구들을 만나 커피 한잔 할 돈조차 아쉬워서 집에만 틀어박히게 된다.


슬프게도 이런 것들로부터 중독을 연상해내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쟤는 왜 맨날 돈이 없다고 그러지? 직장도 다니면서. 왜 항상 만나자는 말을 거절하는 거지? 연락도 잘 안 하고. 내 결혼식에 안 오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변명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나며 오해의 씨앗이 커져간다. 결국 조용한 중독자는 친구들로부터 멀어져 고립된다.


'누가 봐도 중독자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가족이나 친구의 도움을 바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면?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조용한 중독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숨긴다. 수치심 탓이다. 몹시 부끄럽고, 나 자신이 혐오스럽고, 평생 이대로 살게 될 것 같다는 어두운 감정들을 회피하기 위해 조용한 중독자들은 계속 중독행위를 한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출근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일한다.


물론 조용한 중독자가 아무리 중독을 감춘다 해도 그와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깊어지면 중독 문제를 알게 될 수밖에 없는데, 알게 된 뒤에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중독자가 의지박약이라고 쉽게 생각해버린다. 조용한 중독자는 겉으로 보기에 제법 멀쩡해 보이므로 '안 하면 되는데', '안 할 수 있는데' 일부러 중독행동을 하는 거라고 판단하고 분노하거나 상처받기도 한다.


당뇨처럼, 고지혈증처럼, 혹은 우울증처럼, 중독도 이다. 뇌의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고 잘못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중독을 이겨내는 데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중독을 단순히 의지의 문제로만 파악한다면 사안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중독자들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식비로 월급의 절반을 써버리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답답하겠지만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이 환자라는 사실을 이해하라는 뜻이다. 중독자에게는 그들이 환자라는 것을 아는 타인의 지지와 통제가 동시에 필요하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지지적인 환경을 제공하되,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을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해줘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중독자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을 들이댄다는 점이다. 그들은 울며 생각한다. 왜 또 술을 마셨지? 안 마실 수 있는데. 또 돼지처럼 음식을 먹었어. 안 먹을 수 있는데. 그러나 인정해야 한다.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가 아플 정도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계를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변화의 시작점이다.


중독은 '또'와의 전쟁이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또' 흐트러진다.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또'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수많은 '또'를 지나치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야 한다. 중독은 하루아침에 나아지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독자들은 만성적인 수치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한심한 자기 모습을 잠깐이라도 잊기 위해 계속 중독행위를 하게 되지만, 그러면서도 많은 중독자들은 나아지기 위해 애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 와서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는 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부디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열 번 중독행동을 하고 한 번을 참더라도 그 한 번이 정말 대단하고 멋진 거라고. 단 한 번의 성공을 쌓고 쌓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고.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린 얼마든지 괜찮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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