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해진 혼술 : 폭식과 폭음으로 얼룩진 나날

술은 마취제였고, 나는 나를 처벌하기 위해 입안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by 윤해원

2020년 가을. 난 스물여섯이었고 홍대 인근의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대유행하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시행 중이던 무렵이었다. 여기저기 환하게 불을 밝힌 잭 오 랜턴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할로윈 시즌의 개막을 알렸지만, 전염병으로 온 세계가 들썩이는 와중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축제란 얄궂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지내는 게 당연해지고, 모든 일들이 크고 작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고, 새삼스럽게 <페스트>나 <데카메론>을 읽는 사람이 늘어나고, 일부는 바이러스로 인류를 전멸시키는 모바일 게임을 즐기며 기묘한 쾌감에 젖어들고 있었던, 정말이지 이상한 시절이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건 할로윈이 지난 11월 초순부터였을 것이다. 공기가 제법 싸늘해지긴 했지만 아직 옷장 속의 패딩 생각이 날 만큼 추워지기는 전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택시 뒷좌석에 업무용 모니터 두 대와 데스크탑 본체를 힘겹게 싣고 올라타던 그날 저녁에는 이대로 영영 사무실로 돌아올 일이 없으리란 걸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잠깐 동안만' 할 예정이었던 임시 재택근무는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나 퇴사하는 순간까지도 계속되었다. 굳이 출근해서 해야만 하는 성격의 업무가 없다 보니 재택근무는 대표님 입장에서도 사무실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메리트가 컸고, 사원들도 사원들대로 재택근무 체제로의 전환을 강력하게 반겼다.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무척 편하긴 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게 나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유동적인 근무가 가능해지자 내 일상은 말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할 필요가 없으니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졌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놀다가 서너 시가 다 되어서야 잠들고, 정오쯤 엄청난 숙취와 함께 눈을 뜨고, 정신을 못 차린 채로 해장국을 입안에 떠 넣은 뒤, 최소한 오후 두 시는 되어야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일은 빠르면 저녁 아홉 시, 늦으면 자정 무렵에 끝났다. 그러고 나면 또 술을 마셨다. 삼 년 내내 그렇게 살았다.


또다른 문제도 있었다. 통근을 위해 매일 하던 외출이 사라지고 나니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시절 나한테는 친구도 없었으므로 더더욱 그랬다. 서로에게 오직 서로뿐이었던, 상대가 아닌 다른 사람은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던, 마치 외딴 섬 같은 연애를 오 년에 걸쳐 치러내고 혼자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이었다. 필요한 물건도 전부 쿠팡으로 구매하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 나의 생활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애써 눌렀다. 문 밖에는 위험한 바이러스가 도사리고 있으니 집에만 머무는 건 조금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출퇴근만 하더라도 하루에 팔천 보는 너끈히 걸을 수 있었다. 이제 내 만보기 앱에는 오백 정도의 숫자만 찍혀 있는 날이 많아졌다. 햇빛을 받는 시간이 현저히 적어졌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렇잖아도 당시 살던 북향 원룸에는 해가 잘 들지 않았다. 활동량과 일조량이 줄어든 결과는 명백하게 나타났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곧바로 잠들곤 했던 내가 처음으로 불면증을 겪기 시작했다. 체중은 20kg 이상 늘었으며, 무기력과 함께 우울도 찾아왔다.


친구도 없고, 연인도 없고, 가족과도 영 서먹서먹하고, 이렇다 할 취미도 없었던 내가 매달릴 곳이라고는 술밖에 없었다. 혼술을 즐긴 지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혼술의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간단하게 집에서 맥주 몇 캔을 마시거나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 약간의 안주를 시켜두고 적당히 마시는 건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나의 혼술은 은밀해지고 구차해졌다. 밤이면 오만 원어치 배달 음식을 주문해 앞에 쌓아둔 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소주를 미친 듯이 마셨다. 더는 '나를 위한 시간'도 아니었고, '일상 속 힐링'도 아니었다. 폭식과 폭음. 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앞서 말한 '외딴 섬 연애'의 상대는 나만큼이나 술을 좋아했다. 그와 함께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동안 몸무게는 착실히 늘어갔다. 물론 연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시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살이 찌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밤마다 이런저런 안주를 곁들여 술을 마시며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게 좋았다. 술에 취할수록 그와 더 친밀해지고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술에 취해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나는 기꺼이 술을 마셨다.


그러나 이별하고 나니 내게 남은 건 나조차도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살찐 몸뚱이뿐이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내 또래 여성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어쩜 저렇게 다들 예쁘고 반짝거릴까. 난 절대로 저렇게 될 수 없겠지. 죽었다 깨어나도 예전 체형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거야.


혼자가 된 나는 먹었다. 내가 고도비만이 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먹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먹었다. 어차피 난 '망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이어트고 뭐고 다 글렀다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입안에 음식을 욱여넣었다.


꼭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외롭고 심심한 모든 시간을 폭식으로 채웠다. 동거인이 없는, 혼자뿐인 집 안에서는 업무가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텅 빈 시간을 엄청난 양의 음식들로 애써 메워나갔다. 음식을 씹고 있는 동안에는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았으므로 끊임없이 음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컴퓨터 전원을 끄면 순식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던 신림동의 4평 원룸. 방음이 거의 되지 않아 옆집과 윗집에서는 계속 생활소음이 들려오는데, 나와 아주 가깝게 살고 있는 이 사람들 중 누구도 나를 모르며 궁금해하지도 않는다는 생각. 뱃속을 든든히 채우면 마음속의 공허감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서 다 먹지도 못할 양의 음식을 배달시켜 억지로 입안에, 위장에 밀어넣고 나면 몸이 아프곤 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폭식을 하면 몸이 아프다. 과식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경우나 체했을 때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폭식으로 인한 고통은 그런 것보다 훨씬 심하다. 배가 당기면서 아프고, 땡땡하게 부은 듯한 느낌이 들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현기증이나 두통이 찾아드는 경우도 있다. 폭식을 하고 난 다음날에는 온종일 화장실에서 살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폭식은 식욕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처벌하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 온다. 음식 거부가 자기처벌이라는 건 깊게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폭식은 언뜻 보면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음식 거부와 마찬가지로 자기처벌의 한 방식이다. 음식을 그만큼 먹게 되면 더는 포만감이나 만족감을 느낄 수 없고 지독한 고통만이 느껴질 뿐이므로.


이제 나의 식사는 배가 고파서 끼니를 챙기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와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배고프지 않은데도 먹었다. 하루에 여섯 끼 이상을 먹을 때도 있었다. 더는 '깊은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쓸쓸함을 잊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과 술을 한 끼에 먹어치웠다.


혼자 있는 방 안에는 언제나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추하다고 손가락질할 사람도, 왜 그러냐고 걱정할 사람도 없으니 마음껏 입안에 음식을 집어넣게 되었다. 그래, '먹는다'기보다도 '집어넣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행위였다. 그러는 동안 정직하게 불어난 몸은 바깥에 나가 사람들과 마주할 용기를 잃게 했다. 예전에 입던 옷들은 죄다 작아졌고, 쇼핑몰에서 맞는 옷을 찾기도 쉽지 않고, 살이 너무 쪄서 걷기만 해도 숨이 차니 점점 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졌다. 어쩌다 나갈 일이 생기면 길가의 사람들이 전부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자기들끼리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나를 향한 악의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감정을 느낀 날이면 또 먹었다. 기본적인 '자기관리'조차 해내지 못해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찐 나에게 벌을 줘야 했다. 폭식을 하고 스스로를 경멸하며 잠든 뒤에는 두세 시간 간격으로 깼다. 갈비뼈와 척추가 몸무게에 짓눌려 아파서 길게 잘 수가 없었다. 음식으로 가득찬 배 또한 단단하게 부풀어올라 아팠다. 새벽 서너 시쯤 끙끙대며 일어나 소화불량에 좋다는 고양이 자세를 하며 앓다 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러고 사는 걸까, 내일은 굶어야지, 이젠 진짜로 살을 빼서 사람답게 살아봐야지, 그런 생각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잠깐일 뿐 다음날이면 또다시 폭식을 하게 되었다.




음식과 술. 둘 중에서 내게 무엇이 더 매혹적이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음식은 술을 부르고, 술 또한 음식을 부른다는 것이다. 폭식을 할 때 술을 함께 마셔주면 음식을 더 부드럽게 '넘기는' 데 도움이 되었으므로 나의 폭식은 줄곧 폭음을 동반했다.


술과 음식은 처음에는 보상이었다. 업무를 마치고 밤이 되면 배달 주문을 시키고 편의점에서 술을 사오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너무 힘들었으니까 이 정도는 먹어도 돼. 특히 술은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서민의 술'이라는 소주의 이미지는 그런 합리화를 성공적으로 도왔다. 밤마다 배달 음식과 함께 소주를 마시고 있자면 내가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술은 일상을 버티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했다. 밤에는 언제나 술을 마시며 '긴장을 푸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낮 동안의 업무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다. 일이 너무 많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땐 업무 중에 약간의 술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버텨나갔다.


한편으로 술은 우아한 장면을 연출해주는 소품이기도 했는데, 주로 위스키나 진 같은 양주들이 그랬다. 소주나 맥주에 비하면 가격이 비싼 편이라 자주 마실 수 없었으므로 양주를 마실 땐 특별히 분위기를 냈다. 티라이트 캔들에 불을 붙이고, 휴대폰으로 라운지 재즈를 재생했다.


이 시기의 나는 소주를 주로 마셨다. 소주 한 병의 평균 칼로리는 무려 408kcal로, 흰쌀밥 한 공기의 열량보다 높다. 그걸 알면서도 하룻밤에 세 병씩 소주를 마시는 날이 드물지 않았다. 게다가 소주와 잘 어울리는 건 아무래도 기름진 요리들이다. 매일 먹고 마시는 동안 당연하게도 살이 더 쪘고, 살이 찌니 우울해져서 또다시 먹고 마시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나저나 왜 하필 소주였을까. 단순히 도수 높은 술이 목적이었다면 위스키나 와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더 '맛있고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소주는 맛이 없어서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꽤 많지만, 그 맛없음이야말로 내가 소주를 찾는 이유였다.


역한 맛을 가진 소주를 사랑했다. 재택근무 삼 년을 지나 마침내 단주를 결심하게 된 서른 살 가을까지, 나는 소주와 연애를 했다. 몸에 나쁜 것을 마시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나를 천천히 죽음으로 몰아가는 화학 물질을 몸에 들이붓고 있다는 바로 그 느낌이. 위스키와 와인은 풍부한 향과 맛으로 우리를 속이지만, 적어도 소주는 정직했다. 소주는 한 번도 내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소주는 독한 냄새를 풍기며 속삭였다. 언젠가 내가 너를 죽이고 말 거라는 걸 알지? 하지만 나와 함께하는 한 너는 행복할 거야. 현실의 모든 문제를 잊을 수 있게 해줄게.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줄게. 매일 밤 나를 마시기만 한다면 너는 이 안도감 속으로 돌아올 수 있어. 매일 취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마침내 내가 너를 죽일 때까지.


위스키를 마시면 고급스러운 취미를 지닌 여유로운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다. 와인은 하루 한 잔 이하로 섭취하면 심장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마실 때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된다(한 잔 이하로 마시는 날은 절대로 없지만). 고급 위스키, 고급 와인이라면 왠지 중독성도 없을 것 같고 몸에 나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소주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는 사람은 없다. 소주가 몸에 나쁘다는 건 상식이다. 소주는 서민의 술이며, 알코올 중독자의 술이다. 내가 원한 게 바로 그거였다. 몸에 나쁜 술을 마시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삶을 망치는 것. 이미 오래전부터 알코올에 깊게 의존해왔지만, 나는 정말로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싶었다.


나의 혼술은 어느덧 자해가 되었다. 나를 망치기 위한, 나를 해치기 위한, 나를 죽이기 위한 행위였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마취'되어 현실의 고통이 덜 느껴졌다. 좋았다. 술을 마시면 울 수 있었다. 행복했다. 술에서 깨면 극도로 불안해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낮에도 소주를 물처럼 조금씩 마시며 일했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살 때마다, 손이 떨리는 걸 편의점 직원이 알아챘을까 봐 두려웠다.


이제 술 없이는 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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