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8일. 미치도록 힘들었던 어느 밤의 기록.
* '갈망'이란 술에 대한 매우 강렬하고 간절한 욕구를 뜻하는 의학용어입니다. 술을 마시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강하여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이고, 술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일 때 '갈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전 글들에서는 주로 과거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금 시각은 새벽 네 시. 소주가 미치도록 마시고 싶다.
이미 이런 밤들이 여러 번 있었다. 술 생각 말고는 무엇도 할 수 없고, 차마 잠들 수도 없어 울며 이를 악물던 밤을 수 차례 지나왔다.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남편은 잠들어 있다. 남편이 내게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남편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술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언제고 고삐를 놓친다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말리라는 것을. 아직도 나는 '조용한 중독자'다. 내가 술을 원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티내지 않는다.
언젠가 함께 산책하다가 남편은 이런 말을 했다. 역시 환경이 중요한 거구나. 여기 온 뒤로는 술 마시고 싶다고 한 적 거의 없잖아. 이렇게까지 빠르게 좋아질 줄 알았으면 진작 결혼할 걸 그랬어. 나는 올라오려는 쓴웃음을 삼키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미소를 띤 채 밝게 대답했다. 응, 진짜. 술 생각이 전혀 안 나('전혀'에 특히 힘을 실어 발음한다). 정말로 환경이라는 게 중요하긴 한가 봐.
남편은 언제나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이므로 이 글도 볼 것이다. 지면을 통해 고백한다. 여보, 나 술 생각 엄청 많이 해. 당신한테 몇 번 힘들다고 얘기했던 것보다 훨씬 잦은 빈도로. 그러다 몇 번씩은 정말 못 견디겠다 싶을 만큼 강한 충동에 시달렸던 적도 있어. 나라는 인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편의점 주류 코너 앞을 지나칠 때마다 침을 꼴깍 삼킨다. 보면 더 마시고 싶어지는 법이므로 평소에는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지만, 언제 한 번은 그림의 떡을 구경하는 심정으로 맥주가 종류별로 담긴 냉장고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던 적이 있다.
어머님이 요리용으로 청주나 소주를 사 오실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모두가 잠든 밤에 얼음을 꺼내기 위해 김치냉장고 앞으로 갔다가 요리에 쓰고 남은 술이 그 옆에 놓여 있는 걸 보고 크게 동요했던 적이 있다. 한 모금만, 딱 한 모금만 마시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하지만 그 한 모금이 바로 시작이며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향한 배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술병 앞에 못박힌 듯 서 있던 나는 얼음만 가지고 돌아왔지만 그 후 상당한 시간을 불안해하며 거실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멀리 사는 친구가 우리 동네로 놀러 와줘서 숙소를 잡고 놀았던 밤에 무알콜맥주를 마신 적이 있다. 무알콜맥주도 마시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고 남편과도 약속한 상태였는데, 지켜보는 눈이 사라지니 맹세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져버렸다. 자극적인 배달 음식과 무알콜맥주를 먹고 마시니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임신한 사람들도 무알콜맥주는 마신다던데 가끔 이 정도로만 즐기는 건 괜찮지 않나? 내가 무슨 수도사야? 아니지, 사실 성직자들도 술은 마시잖아! 신부는 와인 마시는 게 반쯤 업무인 사람들이고! 아, 갑자기 열받는데?
정신을 차리니 호텔 근처 편의점의 주류 냉장고 앞에 서서 레몬맛 짐빔 하이볼 캔을 꺼내고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겨우 5도짜리잖아! 이거 한 캔 정도는 마셔도 돼. 오랜만에 친구가 와준 특별한 날이잖아…….
서울에 1박 2일로 머물렀던 어느 밤에, 나는 그토록 오고 싶었으나 오랫동안 와보지 못했던 단골 LP바에 홀로 앉아 있었고, 음악을 '더 제대로 즐기기 위해' 맥주를 곁들이는 중이었다. 그곳에서 판매하는 맥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인 인디카는 알코올 도수가 6.5%로 맥주치고는 높았다. 지금까지 술을 참아온 모든 시간을 '보상'받겠다는 듯 인디카를 급하게 들이켰다. 술기운이 확 오르며 얼굴이 뜨거워졌다. 원래 옛날에는 한번 자리에 앉으면 열 병씩 맥주를 마셔대곤 했는데, 죄책감 때문인지 술이 오랜만이어서인지 그날은 두 병 만에 만취해버렸고 두통과 구역감까지 느꼈다. 그래도 꾸역꾸역 네 병을 해치웠다.
이튿날 숙소에서 '숙취'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명백히 나쁜 컨디션으로 눈을 떴을 때,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 자신의 의지로 한 행동 때문에 심각하게 충격받은 채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남편과 물리적으로 잠깐 멀어졌다는 것만으로 이토록 빠르게 무너질 수 있다니.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내 자제력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바로 얼마 전, 2025년 9월의 어느 날 모두가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나가서 포켓 소주 하나를 샀다. 우리 동 앞에도 의자가 있지만 혹시라도 남편이 알아차리고 내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먼 동까지 가서 그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비가 내리고 그친 뒤라 쌀쌀한 가을 밤이었고 내 마음도 그렇게 황량했다. 나는 지금 일을 쉬고 있기 때문에 모든 지출은 남편의 카드로 이루어진다. 1700원이라는 금액이 담긴 알림이 정확하게 남편의 휴대폰으로 전송되었을 것이고 그건 내 부정의 증거다.
기껏 술을 사 놓고도 벤치에 앉은 채 오랫동안 그것을 손에 단지 쥐고만 있었다. 서늘하고 매끈한 감촉은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면서 금세 축축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반 모금을 삼켰다. 즉시 눈물이 흘렀다. 역겨웠다. 일 년 만에 마셔보는 소주의 맛도, 고작 일 년 동안의 단주도 확실하게 해내지 못해 줄곧 미끄러지다가 결국 소주 앞으로 돌아와버린 나도.
또 이십 분쯤 덜덜 떨며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번에는 제대로 한 모금을 마셨다. 눈물이 계속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가족에게 소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나왔는데도 내 울음에는 여전히 소리가 없었다. 나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상황에서도 절대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옆의 하수구에 남은 소주를 모두 부어버리고 일어섰다. 감히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이리저리 쏘다녔다.
그런 밤들이 있었다. 그런 밤이 앞으로도 많을 거였다.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는 나일 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건 포기의 선언이 아니다. 그저 내가 순간의 충동을 이겨내고 나를 통제하는 일에 약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아지기 위해 주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겠다는 다짐일 뿐이다.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바로 지금, 2025년 10월 8일의 새벽은 또 한 번 갈망이 나를 뒤흔들고 있는 힘겨운 시간이다. 나는 요즘 밤마다 운다. 울지 않는 밤이 거의 없다. 나를 돌봐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환경이 극적으로 바뀌었는데도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서, 여전히 나는 알코올 중독자라서 술에 탐닉하며 삶을 망치고 있었던 날들의 감각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나를 울게 한다.
나는 술로 이루어진 망망대해 위에 나무로 만든 조각배 하나만 탄 채로 떠 있다. 갈망이라는 이름의 파도가 나를 뒤집어 적시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지닌 인격체처럼 거칠게 몰아친다.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럴 땐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이제는 안다. 흔들리되 빠져버리지는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이 와중 끊임없이 떠오르는 날것의 생각과 감정들을 메모하고 있다. 모조리 적어뒀다가 나중에 글로 쓸 거라고, 지금 이 파도를 무사히 넘기고 바다가 다시 호수처럼 잠잠해지면 글로 쓸 거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일이 내게 무척 도움이 된다. 내가 앞으로 무언가에 중독되는 일보다 더 끔찍한 경험을 한다 해도, 그것에 관해 쓸 수 있는 한 나는 괜찮다.
물을 마셔도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찾아와 두 시간째 떠나지 않고 있다. 일전에 정신과 의사는 그게 알코올을 향한 갈망이 신체화하여 나타나는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물을 원하는 느낌처럼 갈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좀 나아질 수도 있겠다 싶어,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책상 앞에 앉는다.
글을 쓸 때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기록해두고 있다. 그걸 위한 열품타 앱을 켠다.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 새벽 다섯 시인데, 91명이 공부 중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저녁 시간에는 보통 800명가량이 공부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늦은 시각에도 함께 깨어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고 그게 91명이나 된다. 앱으로 측정되지 않는 실제 인원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열심히 각자의 할 일을 하는 91명이 지금 내 앞에 있다고 상상하면 든든해진다. 이렇게 새벽에 홀로 깨어 심리적 고통을 견디며 열품타를 바라보고 있으면 묘하게 안심이 된다.
역시 글은 써지지 않는다. 이십 분 만에 앱을 끄고 헤드폰을 머리에 쓴다. 이럴 때마다 내가 듣는 건 라벨의 '볼레로'다. 이 곡에서 작은북을 연주하는 사람은 똑같은 리듬을 일정한 세기로 총 169회 연주해야 한다. '볼레로'를 끝까지 연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분 정도다. 15분 동안 똑같은 리듬을 169회 연주하는 일에 관해 생각한다. 잠깐이라도 흐트러져서는 안 되는 작은북 연주자의 엄청난 집중력과, 반복을 통해 자아내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감동에 관해서. 피아니시모로 아주 여리게 시작한 악기들이 곡의 끝부분에 다다라서는 포르티시모로 연주되며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시원하게 몰아치는데, 그 순간에도 작은북은 여전히 처음의 강도를 유지하고 있다. 클라이막스에서도 결코 흥분하지 않는 작은북 연주자의 명상적인 표정을 상상하며 가만히 '볼레로'를 듣는다.
오랜 기간 술을 지나치게 마셔오다가 중단한 알코올 중독 환자가 갑자기 미칠 듯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 갈망은 보통 십 분이면 사라진다고 한다. 의사들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자면 갈망이라는 게 그토록 간단하게 '소멸'해버리는 건 아닌 것 같다. 당장 소주를 입안에 털어넣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강력한 갈망은 확실히 십 분쯤만 버티면 사라지지만, 그 후에도 갈망이 끄집어낸 술을 향한 욕망은 서너 시간 이상 지속된다. 순간적인 갈망을 참아내는 데에 '볼레로'는 거의 항상 도움이 되고 있다. 반복되는 리듬에 집중하다 보면 15분이 순식간에 지나간 뒤였고, 그러고 나면 아까보다는 한결 평화로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볼레로' 연주가 끝났다. 나는 이제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나가서 몰래 소주를 사 마실 수도 있고, 얼른 들어가서 자려고 노력해볼 수도 있다. 내가 이걸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두렵다. 모든 게 나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어쨌든 지금은 잠자리에 들기를 택하기로 한다. 예전에 처방받아둔 아캄프로세이트와 날트렉손이 집 어딘가에 있다. 지저분한 방 안을 뒤져서 그걸 찾아낸다. 약통에서 약을 꺼내는 손이 떨린다.
항갈망제를 항상 가지고 있음에도 그걸 먹기를 꺼리는 이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늘 술을 마시고 싶다고, 단주고 뭐고 집어치우고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왠지 항갈망제를 먹고 술을 마시면 반드시 토한다. 내가 먹는 약들에 음주 시 구토를 유발하는 성분은 없다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항갈망제를 먹으면 그날은 술을 마실 수 없고, 난 그게 싫다. 마음만 먹으면 술을 마실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고 싶기에 항갈망제 복용을 언제나 미룬다. 약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는데도 잊어버린 척한다.
그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알코올 중독자다. 그러나 나아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도중에 한 번씩 넘어지는 날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