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메뉴, 혼밥
삐삐삐 땡~
전자레인지 소리가 들리고, 사무실에 퍼지는 냉동도시락 냄새.
벌써 11시 반이구나, 그렇다 점심시간이 온 거다.
우리의 점심시간을 알려주는 건 옆팀 신 과장의 냉동도시락 냄새다. 미친 듯이 집중을 하다가도 이 냄새만 나면 모든 일세포가 일시정지. 자고로 점심시간이란 출근의 이유이자 가장 행복한 시간이니까.
삼삼오오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누구랑 먹을 건지,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 어디까지 걸어갈 건지, 다들 부단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막내의 소임을 다하고자 우리 팀 막내는 엘리베이터를 잡으러 빛의 속도로 뛰쳐나간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뭘 먹을지 찾아볼까?
메뉴를 고르려는 순간 들려오는 팀원 목소리.
“팀장님, 점심은요?”
이 질문은 약속이 있는지 묻는 건가? 같이 먹자는 건가? 아니면 약속 있으니 알아서 먹어라는 건가?
의중을 알 수 없는 질문이라 대답을 고민하는 사이 날아오는 어퍼컷!
“팀장님, 오늘도 혼자 드시나요?”
"제발 같이 먹자고 말하지 말아 줘요"
점심을 걱정해 주는 질문에 나의 대답은 이것.
혹여나 팀원과 같이 밥을 먹다 일 이야기가 나오면 어쩌나, 라테는 말이야 보고서제출 기한은 칼같이 지켰다니 이런 구닥다리 말이라도 튀어나올까 봐 소개팅 당사자처럼 멘트를 고심하는걸 그들은 눈치채지 않아야 할 텐데.
어젯밤 번개 때문에 술을 거하게 마셨지만 MZ 팀장의 메리트를 살리고자 소울푸드 순댓국을 포기하고 브런치를 맛있게 먹어야 하는 팀장의 무게여. 지금 내 뺨에 흐르는 건 숙취의 땀인가? 눈물인가?
올해로 4년 차, 할 말은 다고 모든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철부지 MZ팀장, 바로 나다. 팀장이 되고 mz팀장의 특징을 무기삼아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밥을 먹고커피를 마시는 점심을 과감히 포기했다.
조직관리자의 점심이라 함은 인맥을 쌓으면서, 마무리하지 못한 미션을 유쾌하고 스무스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자 사내정치의 시간이다. 이런 나이스한 타이밍을 놓치고 겉도는 모습을 보며 혼밥 하는 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인다며 고정적으로 점심을 같이 먹자고 챙겨주는 팀장도 있지만 진짜 정말 진심으로 레알 괜찮은데??
목적이 있는 점심이거나 어색한 팀원들과 점심이 오히려 난 더 외로웠는걸?
그렇게 나는 스스로가 가장 즐거운 혼밥을 선택했다.
물론,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나, 나름 인싸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월요일부터 시작해 금요일까지, 실로 가지각색의 다양한 사람들과 점심 약속을 잡는 외향형의 인간이었고, 맛집정보가 능력으로 변환되는 막내 팀원만 6년이나 했었다는 사실. 조직 생활에서의 점심시간이란 단순히 밥 한 끼를 마주 앉아 먹는 것 이상의 심오한 의미가 있다. 새로 오픈한 식당에 발 빠르게 줄을 서 입장한 후, 오늘도 어김없이 시원하게 누군가의 욕을 갈기는 시간. 그 안에서 한참 욕을 갈기고 나면 가스활명수를 사 먹을 필요가 없이 소화가 말끔히 되는 매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고정적으로 하는 동기들과의 점심엔 트렌디한 데이트룩을 공유하느라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어쩌면 점심시간이 아닐까 싶던 시절. 출근이 참 재미있었다.
변화는 워킹맘 + 팀장이 되고나서부터였다.
육아 - 출근 - 회의 - 회의 - 회의 - 퇴근 - 다시 육아의 굴레에서 1도 찾아볼 수 없는 숨막이는 타임테이블.
살기 위해선 멍을 때릴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팀장이 되고나서부턴 하루종일 회의에 미팅을 해대니 쉬는 시간엔 사람 머리카락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물도 안 넘어가겠는데 밥이 넘어가겠나.
그래서 점심만큼은 반드시 즐겁게 먹고 싶었다.
혼밥을 하고 나면 가히 레드불을 5캔 먹은 힘이 난다.
단순한 밥시간을 넘어서, 삶을 재충전하는 순도 100%의 힐링을 득템 한 기분이랄까.
그 어떤 메뉴도 상관없다. 혼밥이라는 메뉴에 마치 MSG가 쳐있나 의심이 될 만큼, 풀때기로 가득 찬 샐러드도 꿀맛처럼 느껴지는 마법. 이 마법은 나만 누리고 싶다. 동네 맛집 양념장 비법은 아직도 비밀이듯이. 쭈우우욱.
그래서 나는 오늘도 대답한다.
신경 쓰지 말고 식사하고 와요.
오늘도 나 혼자 맛있는 거 먹을 테니까!
각자 맛있게 먹고 1시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