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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유시

배추가 살아서 밭으로

김장

by 열목어


그득그득 맑은 물에 시퍼런 배추가

덤벙덤벙 펄럭이다 이내 채반에 담겨 오르면

촤르륵 물 빠지는 소리가 손보다 더 시리다


펄떡펄떡 기운 뻗치는 흰 초록의 생것들이

장모님 투박한 손에 싸락싸락 염장을 받고

빨간색 다라이 안에서 쌕쌕 숨을 죽였다


애들은 돌아치고 테레비 보고 숨기장난하고

이 집의 아들 딸들 사위 며느리 어줍은 폼으로

움직이는 시늉에 마음만 바빠올 때는


정짓간에선 큼지막히 썰린 돼지고기가

제일 큰 냄비에 푹푹 삶기고 달큰한 고춧가루

싱싱한 마늘 빻는 냄새와 생강 다지는 냄새


곱은 다리 폈다 접으면서 허리도 뒤로 넘겨가며

이 간간하고도 정겨운 양념을 저려온 발처럼 온통

배추 이파리 속속이 골고루 비벼 넣는다


야 이놈 이 배추는 살아서 밭으로 가겠다

깔깔 웃는 농담에 아이들 어리둥절 고개를 돌아봐도

나는 죽 찢은 김치와 따신 수육이랑 찬 소주 생각만


힘드니깐 이제 김장 그만 하시란 말 작년에도 들리더니

그 말은 다 어디 가고 입 벌린 제비새끼들마냥

좀 있으면 김치통 고 처마밑에 나래비를 서 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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