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그득그득 맑은 물에 시퍼런 배추가
덤벙덤벙 펄럭이다 이내 채반에 담겨 오르면
촤르륵 물 빠지는 소리가 손보다 더 시리다
펄떡펄떡 기운 뻗치는 흰 초록의 생것들이
장모님 투박한 손에 싸락싸락 염장을 받고
빨간색 다라이 안에서 쌕쌕 숨을 죽였다
애들은 돌아치고 테레비 보고 숨기장난하고
이 집의 아들 딸들 사위 며느리 어줍은 폼으로
움직이는 시늉에 마음만 바빠올 때는
정짓간에선 큼지막히 썰린 돼지고기가
제일 큰 냄비에 푹푹 삶기고 달큰한 고춧가루
싱싱한 마늘 빻는 냄새와 생강 다지는 냄새
곱은 다리 폈다 접으면서 허리도 뒤로 넘겨가며
이 간간하고도 정겨운 양념을 저려온 발처럼 온통
배추 이파리 속속이 골고루 비벼 넣는다
야 이놈 이 배추는 살아서 밭으로 가겠다
깔깔 웃는 농담에 아이들 어리둥절 고개를 돌아봐도
나는 죽 찢은 김치와 따신 수육이랑 찬 소주 생각만
힘드니깐 이제 김장 그만 하시란 말 작년에도 들리더니
그 말은 다 어디 가고 입 벌린 제비새끼들마냥
좀 있으면 김치통 안고 처마밑에 나래비를 서 있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