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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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끌러 갔다

by 열목어 Mar 11. 2025




아부지가 나더러 개울 풀섶에 매어둔 소를 끌어오라 하신 날이 있었다 

아마 처음으로 부여받은 중책이었는데

아부지도 이제 저놈도 소 한 마리 끌고올 재간은 있을 터라고 생각하셨겠지

비끄러맨 밧줄을 풀고 소의 앞장을 섰는데

식식대는 콧김 소리가 엉덩이를 들이 받는듯 오금이 슬몃 슬몃 저려왔다. 

밧줄의 팽팽한 긴장이 느슨해진다 싶더니

소는 순간 나를 앞질러 성큼성큼 앞으로 내닫는다

소가 나를 끌고 간다.

이런 그림이 아니었는데,

보무도 당당하게 집 마당에 들어서고 싶었는데

소가 잡아채면 채는대로 비틀거리는 짓도 잠시,

소가 뛴다

빠르다

감당할 수 없다

손아귀에 힘을 바짝 주어보았으나 손가락이 찢어지는 고통이다.

다리도 훨훨 맥이풀리고

밧줄을 놓쳤다

자존심을 놓쳤다

저 앞으로 실룩실룩 뛰는 소 뒤로 내가 놓친 밧줄이 뱀 꼬리처럼 끌려가고 있었다

소 잃어버린 근심 한 짐, 아버지의 꼴 짐처럼 짊어 지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고 또 무거웠다

풀이 죽어 도착한 집

외양간에는 그놈의 소가 얌전히 들어있고

아버지 어머니는 웃으시고 나는 뿔따구가 났다

열살 즈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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