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m에서 시작된 철인의 길

철인, 그 긴 여정의 서막을 열다

by 자목

2009년 1월, 추운 겨울 새벽에 회사 수영장을 찾았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던 해였다. 마라톤 너머 철인 3종이라는 더 넓은 목표를 세우고, 그 첫걸음으로 수영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물과의 인연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어릴 적 냇가에서 친구들과 헤엄치며 놀던 기억도 있고, 성인이 되어서는 남들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워 흉내 내는 정도로 가끔 수영장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놀이 수준이었을 뿐, 제대로 된 강습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매일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하면 무릎이나 발목에 피로가 쌓이기 마련이다. 장기적으로 부상을 방지하고 몸을 골고루 단련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목을 병행하는 ‘크로스 트레이닝’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다. 여기에 철인 3종이라는 새로운 목표까지 더해지면서 회사 수영장에 정식 강습을 신청하게 되었다.


탈의실 거울 앞에 서니 내 모습이 무척 생경했다. 마라톤으로 다져진 하체에 비해 상체는 평범했고, 머리를 조이는 수모는 낯선 압박감을 주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냇가에서의 개구리헤엄과 어설픈 독학 자유형이 지식의 전부였기에, 첫 수업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렘보다 긴장이 앞섰다.


새벽 수영장은 활기로 가득했다. 일렬로 줄을 지어 매끄럽게 물살을 가르는 상급반원들의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내가 배정된 곳은 초급반, 수영장의 첫 번째 레인이었다. 수심 1.2m는 내 가슴 높이도 되지 않는 얕은 깊이였지만, 막상 발을 떼려니 마치 깊은 물속에 빠지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차가운 물살이 온몸에 닿으며 잠들었던 감각을 깨웠다.


강습은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물보라는 요란하게 일어나는데 몸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땅을 밀어내며 달리던 습관이 물속에서는 오히려 저항이 되는 듯했다. 하프 코스 정도는 거뜬히 완주하던 체력도 물속에서는 금방 바닥이 났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마음껏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달리기와 달리 헉헉거리는 고된 호흡만이 반복되었다.

주변에서 여러 조언이 들려왔다. 팔은 더 멀리 뻗어야 하고, 숨은 짧게 뱉어야 하며, 무릎이 아닌 허벅지 힘으로 물을 밀어내야 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한 것을 몸으로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마침내 25m를 멈추지 않고 완영할 수 있었다. 손바닥이 반대편 타일 벽에 닿는 순간의 성취감은 대단했다. 나도 모르게 “됐다!”는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두 달째에는 왕복 50m를, 세 달째에는 100m를 쉬지 않고 나아갔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500m를 연속해서 헤엄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수영을 배우며 달리는 법과는 정반대의 원리를 깨달았다. 달리기가 중력을 거스르며 땅을 차고 나가는 ‘투쟁’이라면, 수영은 물의 저항을 인정하고 몸을 맡기는 ‘순응’에 가까웠다. 호흡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정신은 더 맑아졌고, 물속에서는 오직 내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차츰 수영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새벽 강습은 물론이고 퇴근 후나 주말에도 수영장을 찾아 연습했다. 수영은 마라톤 실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심폐 지구력과 코어 근력 덕분에 달리는 발걸음이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수영 실력이 궤도에 오르자 달리기와의 병행도 수월해졌다. 퇴근 후 달리기를 하고 수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이 자리 잡았다. 2012년 무렵, ‘수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영, 자전거, 달리기를 이어가는 철인 3종 경기라는 무모한 도전에 다시 심장이 뛰었다. 수영과 달리기는 이미 준비되었으니 이제 자전거라는 마지막 조각만 채우면 되었다. 그렇게 나는 2012년, 철인의 길에 정식으로 들어섰다.


돌이켜보면 2009년 1월, 회사 수영장의 차가운 물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이 내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냇가에서의 물놀이와 어설픈 흉내를 넘어 정식으로 물살을 가르며 얻은 성취감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밑거름이 된 것 같다. 그날 마주했던 1.2m는 단순한 수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42.195km라는 익숙한 경계를 넘어, 더 깊고 풍요로운 철인 3종의 세계로 나를 안내한 소중한 통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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