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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나 : 숲의 수호자들 (7편)

오지 않는 솔이네 가족

by 아르망

'토리야, 토리야~~!!'


부모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것을 들으며

토리는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 가득 담긴 네 개의 눈동자가

마치 네 개의 달이 동시에 떠있는 것처럼

그윽하고 깊게 토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솔이.. 솔이는요?'


달빛이 너무 밝아 눈이 부시다는 듯

토리는 차마 부모님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솔이 부모님이 멀리 의사 선생님에게

간다며 데리고 떠나셨어.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도 모르겠어. 급하게 떠났거든.'


부모님께서도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저희는.. 어떻게 찾으셨어요?'


'집에 돌아와 보니 너희들이 안 보여서 찾으러 다녔지.

그러다가 지나가는 참새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이 반대편 숲으로 갔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우린 그곳에 달려가 한참을 찾다가

어느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솔이를 발견했지.

너는 그 나무 위에 끼어있었어.


다시 또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몸을 한 번 파르르 떨며

엄마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반대편 숲에는 아빠 말대로 진짜 용이 있었어요.

그때 하신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솔이한테 가자고 계속 조르는 바람에..'


토리는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널 잃는 줄 알았단다.

이렇게 토리 네가 눈앞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야.'


부모님은 눈시울을 붉히며

토리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토리는 자신에 대한 원망과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솔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모두

가시덤불처럼 하나로 뒤엉켜

가슴을 계속 쿡쿡 찌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세 명의 가족은 그렇게 하나처럼

엉켜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밝게 비추던 달빛이

어느덧 창문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와

그윽하고 깊게 방안을 비추었습니다.

부모님께서 토리를 바라보던 눈길처럼.



며칠이 지나고 토리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집을 나와 문 앞에 서있었습니다.


간만에 보는 햇살은 여전히 부드럽게 털 하나하나를

어루만져 주었지만, 다른 어딘가에서는

싸늘하고 쓸쓸한 바람이

불어와 다시 털들을 곤두세웠습니다.


토리는 가만히 서서 솔이의 집을 바라보았습니다.

빈 집을 바라보니 마치 숲 전체가

텅 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머나먼 바람처럼 느껴지는

바로 옆 작은 나무집.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들이 햇빛을 가릴 때면

집에는 그늘이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이따금씩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창문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지붕 위에는 철 지난 나뭇잎들이 장식처럼 내려앉았고,

집의 기둥과 그 사이에 있는 거미줄에는

아침 이슬이 맺혀 반짝거렸습니다.


'다들 금방 돌아올 텐데..

부지런한 거미 같으니..!!'


토리는 야속하다는 듯 거미줄을 노려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록 청설모 가족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3일 오후 04_30_28.png


토리는 매일 문 앞으로 나가 큰길을 바라보며

청설모 가족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마치 솔이와 함께 놀았던

시냇가의 물처럼 멈출 줄 모르고

여전히 힘차게 흐르고 흘렀습니다.


그렇게 멈추지 않는 시간처럼,

토리도 멈추지 않고 커져갔습니다.

토리의 몸은 마치 마음을 배신이라도 한 것처럼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어느덧 토리는 젊고, 건강하고

체격도 다부진 청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이 된 지금도,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늘 똑같이 먹고, 자고 일어나고,

집 밖을 나갔다 들어오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한때 청설모 가족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진 빈 집이 있다는 사실만이

어릴 적과 다른 한 가지 진실이었습니다.


토리는 매일 그래왔던 것처럼 이 날 아침에도

문을 나서 솔이의 집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솔이의 집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에서 온 용기인지 토리는 잘 몰랐지만,

날은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튼튼한 두 발이 어느덧 솔이의 문 앞으로

토리의 몸을 데려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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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이 문 앞에 서서

매일 놀러 가자며 외쳤던 생각이 나서

억지로 미소 지어보려 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토리의 큰 키만큼이나 자라난

무성한 풀들이 집 주변에 가득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뒤틀린 나무 계단과

수북이 쌓인 나뭇가지들 그리고 낙엽들이

온통 괴로운 듯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몸으로 힘껏 밀어야 겨우 열리는

뻑뻑한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가 확 느껴져

토리의 모든 털이 곤두서는듯했습니다.


부지런한 거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집 안 곳곳은 마치 누군가를 잡으려는

사냥꾼의 오두막처럼 거미의 그물로 가득했습니다.


토리는 가만히 서서 솔이 가족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다 같이 즐겁게 앉아서 식사를 하는

청설모 가족의 모습을.


솔이는 가운데 식탁에 앉아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며

성실하게 먹고 있을 터였습니다.


토리는 솔이의 방으로 걸어갔습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바닥이 삐걱거렸고

어딘가 틀에 맞지 않는 창문은 바람이 불 때마다

덜덜 떨리며 바닥에서 나는 소리와

화음을 맞추는 것만 같았습니다.


들어가기 전 크게 심호흡을 한 토리는

방 전체를 눈 안에 담으려는 듯

구석구석을 자세히 바라보았습니다.


세월에 빛바랜 흔적들과 먼지들이 가득 쌓여있었지만

역시 솔이의 성격을 말해주듯

방의 물건들은 대체로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장난감들이 가득 담긴 통,

선반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매끈한 돌들,

지금은 멈추어버렸지만 여전히

귀여운 도토리 모양 벽시계,

가지런히 제자리에 꽂혀 있는 크레용과 연필들,

작은 침대 위에 잘 접힌 이불들과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는

솔이의 곰인형까지도 모두 솔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가서 놀든 토리는 그곳을 마구 어지럽혔지만

솔이는 항상 집으로 오기 전에

그곳을 잘 정리하고 왔던 기억이 났습니다.


가만히 서서 옛 생각에 잠겨

주위를 둘러보던 토리의 눈길이

멈춘 곳은 솔이의 책상 위였습니다.


그곳에는 선물 상자 같은 게 놓여있었는데

포장을 준비하던 모양인지

그 옆에는 작은 가위와 여러 색깔의

포장지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토리는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선물 상자를 열었습니다.

선물 상자 안에는 조그마한 카드와 함께

선물이 들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쁜 돌멩이인줄 알았던 그 선물은,

자세히 보니 시냇가에서 주워온 돌을

도토리 모양으로 조금씩 연마한 것이었습니다.


그 카드를 열어보니 익숙한 솔이의 글씨가 보였습니다.

정성 담아 꾹꾹 눌러쓴 반듯한 솔이의 글씨체였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도토리야!!

생일 정말 축하해!!

나의 영원한 친구, 토리에게'


토리는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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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그날,

솔이가 왜 그렇게 유독 집으로

일찍 가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날이 토리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어서 집으로 가서 선물을

좀 더 다듬고 싶었던 것입니다.


조그만 솔이의 손으로 많은 날 동안

이 돌멩이를 깎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그만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솔이야.. 정말 미안해..'

토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그 도토리를

가슴에 꼭 안으며 말했습니다.


토리는 계속 생각하던 것을

이제야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는 듯,

바로 솔이의 집을 나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부모님께 가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제 저도 다 컸으니 나가서 스스로 살아 보고 싶어요.

이 숲은 변두리라 도토리 벌기가 힘이 드니

대도시 큰 숲으로 가보려고 해요.'


부모님은 아들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뜻을 바꿀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우리 토리가 어느새 이렇게 다 컸구나.

그래.. 우리 아들이 그렇게 결심했다니

우리도 말리지 않으마.

그 대신에 부디 몸조심하고, 밥 항상 잘 챙겨 먹고,

독수리랑 족제비는 늘 조심하거라.'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토리도 부모님을 꼭 안아드렸습니다.


부모님이 싸주신 음식들과 짐을 배낭에 넣고

토리는 그렇게 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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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살던 집, 부모님, 정겨운 추억들,

아팠던 지난 시간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뒤돌아볼 때마다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토리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갔습니다.


대도시숲은 여기서 정말 멀었습니다.


그곳은 수많은 동물들과

복잡한 나무들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도,

오래도록 기나긴 여정이 되리라는 것도,

이제 언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도,

토리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래, 이제는 마음 단단히 먹고

앞만 보고 가자. 솔이는 내가 꼭 찾을 거야.

우리 이제 새로운 모험 시작이다. 솔아.'


(다음 편 '처음 가보는 대도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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