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크나 : 숲의 수호자들 (5편)

아름다운 밤 가게

by 아르망

"아름다운 '밤'들이네요.

보기만 해도 행복해요!"


리나의 목소리가 햇살처럼 반짝였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밤송이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보석들처럼

영롱하게 빛났지요.


땀을 닦으며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토리는,

다시 묵묵히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토끼 가족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그의 단단한 두 팔은 지칠 줄 몰랐고,

폐허 같던 숲 언저리도 점차 정돈되어 갔습니다.


부서진 나무들과 가지들을 치우고,

밤들을 안전하게 모아놓자,

어느덧 그곳은 근사한 창고와

아늑한 보금자리의 모습을 갖추어 갔습니다.


"자, 다들 간식 시간이에요!

이거 먹고 다시 해요."


리나가 깐 밤들을 나무 쟁반에

가득 담아 내왔습니다.

황금빛 속살을 드러낸 그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지요.

모두 마치 귀한 보물을 다루듯,

밤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아... 입안에서

다람쥐 명절 축제가 벌어지는 것만 같아요!"


비온이 황홀한 표정으로 외쳤습니다.


"그러게요.

예전에는 그저 살기 위해 도토리를 삼켰는데...

'밤'을 만나고 나서야 먹는 행복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되었어요."

리나가 오물거리며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예전에는 살기 위해 먹었는데,

요즘에는 먹으면 행복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야 비로소, '먹는 즐거움'을 느껴보게 되네요!"


모두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습니다.

햇살은 따스했고,

숲은 그들의 웃음에 화답하듯 더없이 평화로웠습니다.



아이들도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매일같이 창고 근처에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리나는 아이들에게 처음 '밤'을 먹여주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달콤하고 고소한 맛에,

아이들은 온 방을 빙글빙글 뛰어다니며


"또 주세요!

나 백 개 먹을 거예요!"

하고 외쳤지요.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가족의 웃음과 미래가 담겨있다는 것을.


그날 밤, 자리에 누운 리나가 낮에 뛰어놀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토리, 지금까지 우리에게 세상은

온통 '도토리'뿐이었잖아.

하지만 이제는 저 창고에 가득한 '밤'처럼,

우리 앞에 맛있는 시간이,

행복한 날들이 가득 쌓여갈 것만 같아."


감상에 젖어 있던 리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눈을 반짝이며 남편을 향해 말했습니다.


"내가 '밤 가게' 해보자던 말, 기억나?

우리, 진짜로 한번 해보자.

난 정말 잘할 자신 있어!"


토리는 그런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빚에 쫓겨 웃음을 잃었던 그늘진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희망과 자신감으로 빛나는,

그가 사랑했던 바로 그 얼굴이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눈을 반짝일 때는,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 내가 모를까 봐.

혼자 사고 치게 둘 순 없지.

까짓것, 한번 해보자!"



다음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난 두 부부는

가게를 차릴 만한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참을 걷던 그들은 마침내 숲길 언저리에서,

작은 통나무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오래된 빈집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예요!

제가 딱 찾던 곳이에요!"


비록 '하늘나무 마을'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곳은 도토리를 모으러 오가는 동물들이

반드시 지나치는 길목이었습니다.


지친 그들이 잠시 쉬어가며 맛있는 것을

사 먹기에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네 명의 어른들은 다시 한번 힘을 합쳤습니다.

시냇가에서 물을 길어와 열심히 쓸고 닦으니,

어느덧 낡은 통나무집은 본래의 따스한 색을 되찾으며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토리가 기다란 나무판에 정성껏 글자를 새겼습니다.


'아름다운 밤 가게'.


드디어 첫 영업일. 밤을 찌고, 굽고, 볶아

나무 쟁반 위에 예쁘게 담아 내놓았습니다.


"숲 속 주민들이 많이 찾아와 줄까요?"

리나가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며칠이 지나도록 가게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청설모들만이 이따금씩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고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아...'하늘나무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 그런가 봐요.

이렇게 맛있는 걸 아무도 몰라주다니..."


"결국...

지긋지긋한 도토리 모으러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건가."

토리가 깊은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안타깝네요. 이 '밤'의 맛을 알게 되면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질 텐데 말입니다."


루리가 밤을 한 입 베어 물며 아쉬워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잠깐, 방금 뭐라고 하셨죠?

바로 그거예요!"

리나의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밤'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으니,

이 맛을 모르는 게 당연해요! 우리가 직접 가서 알려주면 돼요!

주민들이 지나가는 길에서 시식회를 여는 거예요!"



그들의 작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밤 맛을 본 동물들은 리나의 말처럼

정말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습니다.


"이건... 대체 뭐죠?"

"세상에, 정말 맛있네요!"


맛을 본 주민들은 앞다투어 가게로 달려와

밤을 가득 사 갔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바람보다도

빠르게 숲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리나가 통나무집 뒤뜰에서 군밤을 굽기 시작하자,

그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는

멀리 있던 동물들까지 이끌었습니다.

가게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토리와 비온이 밤을 까고,

리나가 찌고 굽고 삶으며 다양한 메뉴를 만들면,

루리가 예쁘게 포장해서 내놓았습니다.


토리는 가게 앞에서 목청껏 외쳤습니다.


"피로 해소, 허약 체질에 아주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 성장 발육에도

최고인 '밤' 사세요!"


하루가 끝나고 저녁노을이 질 무렵,

두 가족이 모여 앉아 그날 번

도토리를 세는 것은 새로운 행복이 되었습니다.


공평하게 나누어도 가득 쌓이는 도토리를 보며,

그들은 힘든 줄도 모르고 웃었습니다.


"아, 오늘만 같으면...

집 산다고 빌렸던 도토리도 머지않아

다 갚을 수 있겠어요!"


"당신 말대로 밤 가게 하길 정말 잘했어요!"


토리와 리나는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창고에 밤을 가지러 간 토리와 비온은

산더미 같던 밤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벌써 이렇게나 많이 팔다니!

반대편 숲으로 가서

밤을 더 주워와야겠습니다!"


둘은 콧노래를 부르며

먼 숲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아, 이렇게 '밤'으로

다시 살게 될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의 숲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숲의 모습이

어쩐지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상합니다.

오늘은 뭔가 느낌이... 앗?"


저 멀리, 처음 보는 청설모 한 마리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 이쪽 숲에는 청설모들이 오지 않는데...

어떻게 된 거지?'


의아하게 여기며 밤나무 숲으로 조금씩 다가가는데,

청설모들이 저 옆에도,

이쪽에도 여러 마리가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그 수는 셀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부지런히 '밤'을 줍고 있었습니다.


토리가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청설모 무리의 가장 중심에 서서

지시를 내리고 있는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쩐지 낯이 익은 그 뒷모습.

토리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 실례합니다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그가 천천히 뒤돌아보았습니다.


"아니... 당신은...!"


(다음 편 '숲 반대편에 나타난 용'으로 이어집니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6화오크나 : 숲의 수호자들 (4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