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다람쥐 가족이 도토리를 싫어하게 된 이유 (4편)

아름다운 밤

by 아르망 Apr 03. 2025

'이건 대체 뭐지??'


예전 같으면 가시에 찔릴까 무서워

근처도 가지 못했겠지만,

가시들이 문을 만든 모습은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마치 다른

세계가 열릴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지요.


'같이 한 번 만져봐요.'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남편의 손을 잡아끌어

정체불명의 물체를 향해 가져갔습니다.


'뭔가.. 딱딱한 것 같으면서도 부드럽네요.'

'두 가지 느낌이 동시에 들다니.. 희한하네요..'

게다가 가시에 둘러싸여 있어 그런지

따스한 촉감마저 느껴졌습니다.


부부는 좀 더 용기를 내어 두드려

쓰다듬어 보기도 했습니다.


'혹시 꺼내볼 수 있겠어요?'

옆에서 조심히 지켜보던 토끼가 말했습니다.

'그럼.. 한 번..'

'아이고, 이 사람 혼자 하려면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아요!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쳐 꺼내 봐요!!'

아내 다람쥐가 힘차게 소리쳤습니다.

'자, 우리가 가시돌 안쪽에 손을 넣어서 더 벌려볼 테니

그때 신사분들이 힘을 줘서 밖으로 꺼내봐요!!'


'영차~영차~!!'

모두가 힘을 합치자 조금씩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들 긴장한 탓에 힘을 많이 줘서 그런지, 

안에 있던 것이 쑤욱 빠져나오며

명 모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와, 드디어 나왔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뭘까요??'

모두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분명 도토리보다 훨씬 더 크고

색깔도 더 진했습니다.


'이건 누군가의.. 알일까요?'

아내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습니다.

남편은 가만히 귀를 갖다 대며 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흠.. 알이 아닌 것 같아.

알은 안에 생명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든!'

뭔가가 들어 있는 건 분명한 거 같은데..

마치 단단한 껍질에 싸여 있는 것 같아.'


'그럼 껍질을 한 번 까봅시다!

우린 껍질 까기 전문가들이 아니요!'

토끼들이 앞니를 드러내며 반짝 웃었습니다.


'사각사각, 서걱서걱'

모두가 힘을 합해서 시작하자

금방 단단한 갈색 껍질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얇은 속껍질이 또 나오는 바람에,

모두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쳐갔습니다.


'휴, 껍질이 많기도 하군.

하지만, 우리 끝까지 한번 해봐요!!'

드디어 모든 껍질이 사라지고

옅은 노란빛을 띠는 동글동글한 것이

그들 사이에 놓였습니다.


토끼가 먼저 코를 킁킁 해보았습니다.

'이건 분명 먹을게 분명해요!

뭔가 맛있는 향이 나요!!'

'이럴 때 제일 지혜로운 방법은 무조건 먹어보는 거예요!

먹을 게 눈앞에 있으면 당장 먹어봐야 하죠!'

토끼가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제가 한 번 먹어볼게요.

제가 요리를 좋아해서 맛을 잘 알아요!'

아내 다람쥐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여보 조심해요. 이상한 맛이 나면

바로 퉤퉤 하고 뱉어요!'

남편 다람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어차피 먹을 거 먹는 건데 뭐 별일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앞니로 푸딩을 뜨듯

샥~하고 베어 물었습니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오물오물 먹던

아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여보, 왜요? 왜 그래? 맛 이상하면 얼른 뱉어요.'

남편이 다가와 등을 두드리려고 하자

아내가 한 손을 들어

모두의 행동을 정지시켰습니다.


잠시 뒤 아내는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요!!'

'정말이에요? 우리도 어서 먹어봅시다!'

모두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서 한 입씩 먹기 시작했습니다.


'와, 진짜 대박!!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요.'

'대박?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요?'

'애들이 유치원 갔다 오니 쓰더라고요.'

'아, 정말 맛있어요! 지금까지 우린

쓰고 떫은 도토리만 계속 먹었네요!'


모두가 만족스러운 표정 가득 지으며

맛있게 먹다 보니 '노란 동글이'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위에 널려 있는 가시돌을 열심히 뒤졌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빼내고 모으다 보니

어느새 도토리처럼 수복히 쌓였습니다.


'와, 어릴 때 이런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남편 다람쥐가 이 광경을 보며 말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던 가시돌 안에

이토록 맛있는 게 들어있었다니..

지금까지 그렇게 겁냈던 것이 이젠 부끄럽구려!'


'원래 어른이 된다는 게 다 그런 거죠, 뭐.'

아내가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에요.

아직도 밤에 한 번씩 악몽 꿔서

날 놀라게 하잖아요!'


'자자, 이제 옮겨봅시다!!

그런데 어디로 옮기죠?'

토끼 부부가 물었습니다.

아내 다람쥐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신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옛날 우리 살던 근처로 옮기면 어때요?

거긴 워낙 후진 곳이라 아무도 오지 않고,

태풍이 지나긴 뒤로는 넘어진 나무들이 많아

창고처럼 쓰기 딱 좋아요!

거기에 다 모으면 어떨까요?'


'토끼 가족의 새 보금자리도 근처에 만들고요!

땅 위는 엉망이지만 토끼굴 만들기에는

좋은 곳이 많아요!!'


'오, 좋은 생각이에요~~!!

자, 그럼 모두 거기로 갑시다!!'


모두 힘을 합해 열심히 옮기기 시작했고,

옛 보금자리 근처 창고로 정한 곳에

'그것'이 가득 쌓이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날은 저물어 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창고가 가득 채워진 것에 기분이 좋아진

아내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아, 어느덧 아름다운 밤이 오네.

역시 전 숲의 밤이 좋아요.'

'그런데, 이걸 뭐라고 부르죠?

이토록 맛있는 걸 아직 이름을 못 지었네요.'


'흠.. 방금 '아름다운 밤'이라고 하시니

문득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문장에서 이름을 따서 간단하게

'밤'이라고 부를까요? 어때요?'


'오, 그거 좋은 이름이네요!!

간단하고 기억하기 좋아서 안 까먹겠어요.'

모두들 잊지 못할 이름을 말하듯이

'밤..'이라고 다시 한번 되뇌었습니다.


아내 다람쥐가 도전적인 얼굴로 외쳤습니다.

'우리 이걸로 가게라도 차리면 어때요?

이렇게나 맛있는 밤을 요리해서 팔면

완전 대박 날 거 같아요.

청설모들도 정말 반할 맛이라니까요!!'


'대박이란 말은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네요~

그렇지만 밤 가게는 정말 대박 아이디어 같아요!!'


모두의 웃음소리가

숲 속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아!! 애들!! 아이들을 잊고 있었네!

애들 유치원 시간이 다 되어가는 거 같아요!!

맞벌이 부부를 위한

유치원 시간이 거의 끝나가요!

어서 빨리 가요~~!!'

모두들 허둥지둥 숲 속 유치원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희미하던 빛마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서

어두운 그림자만이 숲을 집어삼키듯 점점 커져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숲을 뒤흔들던 말소리와 웃음소리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영원한 침묵 같은 고요함만이 땅에 내려앉았습니다.


이따금씩 바람이 나무 사이로 윙윙 거리는 소리와 

먼 산에서 캥캥 거리는 여우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풀벌레들조차 찌르릉 거리던 소리를 멈추고

차가운 달빛만이 빈 공터를 비추던 바로 그때,


근처 숲 언저리에서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반짝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캄캄한 숲 속에서 지켜보던 눈이었습니다.

그 두 눈은 '아름다운 밤'을 뚫어져라 보더니,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수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




이전 05화 다람쥐 가족이 도토리를 싫어하게 된 이유(3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