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항상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
저번에 보았던 굴참나무 집으로 할게요.
빽빽하게 높은 나무집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청설모의 환한 웃음을
반질반질 빛나게 해 주었습니다.
'훌륭한 선택이십니당~아주 잘 생각하셨어요!!'
부부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싱긋 웃었습니다.
'야호~~ 우리 이사 간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녔습니다.
'영차, 영차'
엄마 다람쥐는 짐을 싸고 나르며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았습니다.
'이리 줘요, 무거운 건 다 내가 들게.'
엄마 다람쥐가 무거운 걸 들다가
허리라도 다칠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던
아빠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그러게 참새 이삿짐센터로 하자니까.
거기에 맡기면 참새들이
벌떼같이 와서 순식간에 다 옮겨준다니까~'
'아유~거기 또 도토리가 얼마인데요,
이제 조금이라도 아껴야지요~'
엄마 다람쥐가 손사래를 치며
다시 짐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이사를 모두 마친 후,
설렘 가득 안고 새로운 집으로 들어간
가족들의 얼굴은 마냥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집 안을 빙글빙글 뛰어다녔습니다.
'야호~새 집이다!'
부부는 손을 잡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지저귀는 새소리, 햇살 잘 들어오는 방,
높은 나무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
모든 게 꿈만 같았습니다.
거리를 오가며 근사하게 차려입은
청설모들이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집 근처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는
마음마저 맑아지게 해 주었습니다.
이젠 아이들도 위험한 멧돼지가 다니는 길이 아닌
근처 숲 속 유치원으로 즐겁게 뛰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나면
부부는 밖으로 나가 열심히 도토리를 모았습니다.
둘은 수다를 떨며 즐겁게 일했습니다.
허리가 아플 때는 두드려주기도 하고
서로 토닥토닥 어깨 안마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서로가 있어
마음은 힘들지 않았습니다.
모은 도토리의 개수는 날로 늘어만 갔습니다.
다람쥐 가족이 배불리 먹고도
차곡차곡 창고에 저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자'라는 것으로 갚을 도토리도
매달 꼬박꼬박 은행에 가져다주었습니다.
풍족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나날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되고 있어!'
아빠 다람쥐의 웃음소리가
숲 속 아파트에 퍼져갔습니다.
날이 밝아오고 평소처럼 도토리를
모으러 집을 나선 아침이었습니다.
'저기 봐요, 새 집이 또 이사 왔나 봐요.'
엄마 다람쥐가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부지런히 짐을 나르고 있는
다람쥐 가족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숲 속 나무 아파트에
다람쥐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청설모가 다른 다람쥐들에게도
여기를 열심히 홍보하나 봐!'
부부는 그저 청설모의
부지런함에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다람쥐들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모두 도토리를 모으러 다녔습니다.
다람쥐 부부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내가 먼저 찾은 거예요!'
'무슨 소리, 나는 저~기 높은 집 위에서부터
벌써 보고 온 거라니까'
어느 날은 큼직한 도토리 하나를 두고
다람쥐들끼리 싸우는 일도 생겼습니다.
'거 애들 좀 조용히 시켜주세요!
벌써 몇 번째 말하는지 모르겠네!'
아래층에서 올라온 멋쟁이 청설모가
모자를 고쳐 쓰며 투덜거렸습니다.
'아유~정말 죄송해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말을 잘 안 듣네요,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다람쥐 부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습니다.
그날 밤, 아이들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는 마음껏 뛰어다녀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었는데~~ 힝'
'예전에 살던 집이 보고 싶어요, 엄마'
다람쥐 부부는 이제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서
도토리를 모으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다른 다람쥐들이
몽땅 다 가져가게 생겼거든요.
유치원에서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두 다람쥐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전보다 더 열심히 도토리를 주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녁 즈음에는 둘 다 녹초가 되었습니다.
지쳐서 집에 오면 별말 없이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루를 잘 보냈는지
물어볼 시간도 없어졌지요.
가족들 간에 말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을 느낀
엄마 다람쥐는 걱정이 되었지만
피곤해서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래,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도토리를 다 갚고 여유도 오겠지,
그때가 되면 다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여행도 가고 애들이랑 많이 놀아줘야지.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쿨쿨 Zzz..'
다음날 아침, 여느 때처럼 부부가
열심히 도토리를 모으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커다란 천둥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쿵, 쿵!!'
'이건 무슨 소리죠?'
엄마 다람쥐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 천둥 같은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에
부부는 무서워서 근처에 있는 나무로 얼른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조용하게 전방을 주시하며 기다렸습니다.
분명히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풀숲을 뒤적거리며 나타난 것은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워낙 커서 다람쥐들에게는
거대한 거인처럼 보였습니다.
거인들은 큰 봉지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도토리를 마구마구 쓸어 담아 갔습니다.
'아, 저거 내가 모아놓은 건데!!'
아빠 다람쥐가 안타까워하며 소리 질렀습니다.
거인들은 한 명만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이 거인, 저 거인
번갈아 가며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도토리는
전부 다 커다란 봉지에 담아 갔습니다.
지켜보던 다람쥐 부부는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 거인들도 집을 샀나 봐요..
빌린 도토리 다 갚으려면 힘들겠네..'
엄마 다람쥐가 혼잣말을 하듯 이야기했습니다.
안 그래도 도토리 모으기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젠 거인들까지 '활약'하면서 다람쥐 부부는
도토리를 모으기가 굉장히 힘들어졌습니다.
금슬 좋던 부부는 이제 작은 일에도
말다툼하기 시작하고,
애들한테도 짜증을 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집 안에서는 뛰어다니지 말라고 했지!
엄마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아이들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조용히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이번 달 낼 도토리가 조금 부족한데,
다음 달에 같이 내면 안될까요?'
부부는 처음에 계약했던 청설모를 찾아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사람 좋고 잘 웃어주던 청설모에게
부탁하면 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부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불같이 화를 내는 청설모의 얼굴을 보며
두 사람은 깜짝 놀랐습니다.
'빌린다'라는 건 슬픈 것이구나..
두 사람은 청설모의 사무실을 쫓기듯 나와야 했습니다.
어느 날은 도토리를 모으러
평소보다 더 멀리 갔다가
예전에 살았던 땅 속 구멍 집 근처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엄마 다람쥐는 그 집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아빠 다람쥐가 옆에서 어깨를 감싸며 말없이 안아주었습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