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크나 : 숲의 수호자들 (4편)

아름다운 밤

by 아르망

"이건... 대체 뭐지?"


토리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태풍이 할퀴고 간 숲의 폐허 속,

그의 오랜 공포가 깃든 가시돌들이

마치 거대한 상처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의 한가운데,

기이하고 낯선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지요.


예전 같으면 가시에 찔릴까 무서워

근처에도 가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딘가 달랐습니다.


엉망으로 쓰러진 가시돌들은 마치 비밀스러운 문을 만들어,

그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지요.

토리는 직감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토리, 같이 한번 만져보자."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망설이는 남편을 보며

리나가 먼저 말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두려움에 굳어있는

토리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어,

정체불명의 물체를 향해 가져갔습니다.


"뭔가... 단단한 갑옷 같으면서도,

그 안에 희미한 온기가 느껴져요."

"두 가지 느낌이 동시에 들다니...

희한하군요."


부부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두드려도 보고,

쓰다듬어 보기도 했습니다.


"혹시...

꺼내볼 수 있겠습니까?"


옆에서 조심히 지켜보던 비온이 물었습니다.


"그럼요! 아이고,

이 남자 혼자 하려면 하루 종일 걸리겠네!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쳐 꺼내 봐요!"


리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차게 소리쳤습니다.


"자, 우리들이 안쪽에서 가시덤불을 더 벌려볼 테니,

그때 신사분들이 힘을 줘서 밖으로 꺼내주세요!"


"영차, 영차!"


모두가 힘을 합치자,

'그것'이 가시돌의 깊은 곳에서부터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긴장한 탓에 모두가 너무 힘을 준 것일까,

안에 있던 것이 '쑤욱'하고 빠져나오는 순간

네 명 모두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와, 드디어 나왔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뭘까요?"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2일 오후 12_30_20.png


그것은 분명 도토리보다 훨씬 더 크고,

색깔도 깊고 진한 갈색이었습니다.


"이건... 혹시 누군가의 알일까요?"

리나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습니다.


토리가 조심스럽게 귀를 갖다 대었습니다.


"흠... 알은 아닌 것 같아.

알이라면 안에 생명이 꿈틀거리는

작은 심장 소리가 들리거든.

이건...

단단한 껍질 안에 무언가 꽉 차 있는 느낌이야."


"그럼 껍질을 한번 까봅시다!

우리가 또 껍질 까기 전문가들 아니겠습니까!"


토끼 부부가 앞니를 반짝이며

자신만만하게 나섰습니다.


'사각사각, 서걱서걱.'


네 개의 날카로운 앞니가 힘을 합치자,

금방 단단한 갈색 껍질이 벗겨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얇은 속껍질이 또 나오자,

모두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쳐갔습니다.


"휴, 껍질이 많기도 하군.

하지만 우리, 끝까지 한번 해봅시다!"


마침내 모든 껍질이 사라지고,

옅은 노란빛을 띤 매끄러운 속살이 그들 사이에 놓였습니다.

비온이 먼저 코를 킁킁거렸습니다.


"이건 분명 먹을 게 틀림없습니다!

아주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나요!

이럴 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일단 먹어보는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먹어볼게요.

제가 요리를 좋아해서 맛을 잘 알아요!"


리나가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리나, 조심해!

이상한 맛이 나면 바로 뱉어!"


토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리나는 앞니로 푸딩을 뜨듯,

부드러운 속살을 '샥'하고 베어 물었습니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오물오물 맛을 보던 리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여보, 왜, 왜 그래?

맛 이상하면 얼른 뱉어!"


토리가 다가와 등을 두드리려 하자,

리나가 손을 들어 모두를 정지시켰습니다.


잠시 후, 그녀는 황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태어나서...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요!!"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2일 오후 12_35_50.png


그 말에 모두가 달려들어 한 입씩 먹기 시작했습니다.

"와! 정말...!"

"세상에...!"


입안 가득 퍼지는,

단단한 껍질 속에 숨겨져 있던 고소하고도 달콤한 맛,

퍽퍽한 도토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부드럽고도 깊은 풍미에 모두가 말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지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대지가 숨겨둔 선물 같았습니다.


그 뒤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위에 널려 있던 가시돌들을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빼내고 모으다 보니,

어느새 작은 산처럼 수북이 쌓였습니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던 가시돌 안에...

이토록 맛있는 보물이 들어있었다니..."


토리가 그 광경을 보며 감격에 차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겁냈던 세월이 부끄럽구려!"


"원래 어른이 된다는 게 다 그런 거죠, 뭐."

리나가 남편의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에요.

아직도 밤에 한 번씩 악몽 꿔서 날 놀라게 하잖아요!"


"자자, 이제 이걸 옮겨야 하는데...

어디로 옮기죠?"


그때, 리나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습니다.


"옛날 우리 살던 집 근처로 옮기는 건 어때요?

거긴 워낙 낡아서 아무도 오지 않고,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많아서 창고처럼 쓰기 딱 좋아요!

토끼 가족의 새 보금자리도 그 근처에 만들고요!"


"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모두 힘을 합해 열심히 옮기기 시작했고,

옛 보금자리 근처에 '그것'이 가득 쌓였습니다.


어느새 날은 저물어 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득 찬 창고에 기분이 좋아진 리나가 말했습니다.


"아, 어느덧 아름다운 밤이 오네요.

역시 전 숲의 밤이 좋아요."


"그런데, 이걸 뭐라고 부르죠?

이토록 맛있는 걸 아직 이름도 못 지었네요."


"흠... 방금 '아름다운 밤'이라고 하셨으니...

그 문장에서 이름을 따서 간단하게 '밤'이라고 부를까요?

어때요?"


"오, '밤'!

그거 좋은 이름이네요!"


모두가 잊지 못할 이름을 말하듯이,

'밤...' 하고 다시 한번 되뇌었습니다.


그때, 리나가 도전적인 얼굴로 외쳤습니다.


"우리, 이걸로 가게를 차리는 건 어때요?

이토록 맛있는 '밤'을 요리해서 팔면,

저 반질반질한 청설모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예요!"


"밤 가게라니!

그거 정말 멋진 생각입니다!"


모두의 웃음소리가 숲 속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아!! 애들!! 아이들을 잊고 있었네!

유치원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어서 가요!"


모두들 허둥지둥,

행복한 웃음을 멈추지 못한 채

숲 속 유치원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2일 오후 12_40_48.png


희미하던 빛마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자,

어두운 그림자가 숲을 집어삼키듯 점점 커져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숲을 뒤흔들던 웃음소리는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영원 같은 침묵만이 땅에 내려앉았습니다.


이따금씩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윙윙거리며 스쳐갈 뿐이었습니다.

풀벌레들조차 숨을 죽이고,

차가운 달빛만이 그들이 쌓아 올린 '밤'의 산을 비추던

바로 그때.


근처 숲 언저리에서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곧이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눈이 섬뜩하게 반짝였습니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눈이었습니다.


그 두 눈은 '아름다운 밤'의 산을 뚫어져라 보더니,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수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알 수 없는, 기이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음 편 '아름다운 밤가게'로 이어집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2일 오후 05_54_40.png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5화오크나 : 숲의 수호자들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