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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캠프 보냈습니다

수포자 엄마의 '수학,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에 관한 이야기

by 유쾌한 은선씨 Feb 01. 2025

  여기는 세종시 ××대학교 국제연수원.


 시끌벅적 와글와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백여 명의 코 묻은 소리.

 "엄마"

 "아빠"

 "내 연필 어딨어요? 물통은요?"

  응? 대학교 연수원인데 엄마, 아빠가 물통을 챙겨줘? 무슨 대학생이 그래? 하겠지만.

 여기는 대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이 아니라, 예비 초등 5학년들이 수학 공부를 하기 위해 모인 수학캠프다.

 그럼 질문. 초등학생이 무슨 캠프야? 영어캠프는 들어봤어도 수학캠프라고?

이 초보 엄마가 또 무슨 일이 벌이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우리 집 식탁.

 "찬아, 이리 와서 좀 앉아봐. 엄마랑 이야기 좀 하자"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와 흔들리는 눈동자에 무언가 있다는 낌새를 느꼈나.

 "아, 엄마 또 뭐 등록했어요?"

ㅋㅋㅋㅋㅋㅋ

 고백한다. 맞다. 나는.

 "아유, 공부는 무슨 이요,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그게 최고죠"

하고 여유롭게  돌아서서는

 "얘들아, 오늘 해야 할 일 다 했니? 영어 듣기는? 원서로 읽었어? 연산은? 심화는? 한자도 했어? 글쓰기는 당연히 해야지. 학교 숙제는 기본 아니니? 학원 숙제는 오자마자 해야지 그걸 뭘 물어봐. 다 했으면 피곤한데 우리 책이나 읽자."

 나는  울대에 미친 조용한 옆집 그 엄마다. 

 하지만 변명을 좀 하자면.

 네 식구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에 비싼 교구, 영유, 학원 따위는 쳐다보지도 못했다. 같은 이유로 대도시가 아닌 지방 한적한 소도시 동, 면, 읍 중에서도 면에 거주 중이다. 이 말인즉슨, 학원에 보내고 싶어도 보낼 학원도 없다는 것. 말만 앞섰지 욕심껏 시켜본 적도 없다.


 이렇게 시골 사는 목마른 욕심쟁이 엄마 물고기가 SNS와 유튜브라는 바다를 만났다. 그곳은 카더라 대양이었고 너도나도 다 교육전문가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인 4학년이 공부습관을 들일 수 있는 마지노 선이라며 나의 조바심을 부추겨댔다. 엄마 물고기는 아기 물고기의 자아가 커져서 엄마를 밀어내기 전에 시킬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키겠다며 전투 의지를 다졌고, 글쓰기니 화상영어니 연산법이니  유명 강사들의 인터넷 강의와 줌 수업을 끊어댄 것이다.


  나의 아들이 누구인가. 영재도, 수재도, 심지어 평범하지도 않은 느림보 고구마 아들 아닌가.

고구마 아들이 성격 급한 열정 어미를 따라올 턱이 있나. 한두 가지 수업을 마지못해 듣던 고구마 아들은 세 번째 수업을 들이밀었을 때쯤 단호히 "노"를 외쳤다.


 당연한 현상이고 다행인 상황이다. 싫은데 엄마 눈치 보느라 억지로 했다가 후에 터지면 더 감당 안될 일이지 않는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아들로 커줘서 고마운 일이다. 엄한 엄마 밑에서 주눅 들까 걱정이었는데 그 정도로 무섭지는 않았나 보다.

 하지만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수학은 수학이다. 절대 포기할 수 없지.

 "찬아, 이리 와봐, 흠흠, 엄마 이야기 좀 들어볼래?

  "?"

  "일단 앉아봐. 저기. 엄마는 이제 찬이가 자신의 일을 결정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엄마 말 잘 들어보고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나는 3박 4일 슬기로울 수학캠프에 대해 설명했다.

 "수학은 약속된 개념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학문이야. 이 개념이 머릿속에 없으면 수없이 많은 문제를 풀어도 그 노력이 소용없어. 그럼 안되잖아. 아깝잖아.

 수학캠프에 가게 되면 찬이가 지금까지 배웠던 개념을 정리하고 앞으로  배우게 될 새로운 개념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실 거야. 막 연산문제집 냅다 풀고 머리 터질 것 같은 심화문제 풀러 가는 곳 아니야. 좋은 선생님에게 배워도 보고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구경도 하고 "

 찬이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엉덩이가 의자에서 떼 지려는 찰나.

 "찬아. 아. 앉아봐. 끝까지 들어는 봐야지. 찬이는 여태껏 엄마랑 떨어져서 지내본 적 없지? 또래 친구들끼리만 합숙하는 거 어떨 것 같아? 같이 먹고, 자고, 쉬는 시간에 장난도 치고. 그거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다. 4학년 중에 엄마 없이 캠프 갔다 온 애는 이 동네에 너밖에 없을걸. 정말 대단한 거 아냐? 아참, 그리고 너의 절친 준우도 너 가면 간다고 하던데. 어때? 갈래? 준우엄마께 너도 간다고 이야기할까? "


 내가 들고 있는 모든 카드를 다 던졌다. 재미없는 수학이야기로 시작해 호기심과 재미, 호승심을 지나 우정으로 마무리까지. 이제 물기만 하면 된다. 어서. 어서. 어서 덥석 물어주렴.


 

 여기는 다시 ××대학교 국제연수원.

수학연구소 소장님의 입소 인사말이 한참이다. 막 하품으로 입이 벌어지려는 차에 잠이 확 깨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온다.

 "여러분, 여러분은 잘못 알고 오셨어요. 여기는 수학캠프가 아닙니다. 여기는.

수학교도소예요

ㅋㅋㅋㅋㅋㅋ

"찬아, 진짜 엄마 없이 괜찮겠어?"

 가라고 등 떠밀 때는 언제고 내가 울상이다. 고구마 아들은 오히려 무덤덤.

 "엄마. 안 돌아올 것도 아니고 겨우 3박 4일 가는데 그렇게 슬퍼할 필요가 있어요?"

 누가 아빠 아들 아니랄까 봐 대문자 T 맞네 맞아. 흥.


 이제 부모님은 나가달라는 방송이 울리고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여보, 고작 3박 4일 캠프 보내는 것도 발이 안 떨어지는데 대체 군대는 어떻게 보내는 거야아"

  곧 울 기세다.


 그날 저녁, 녀석에게 오는 전화를 놓칠까 전화기를 손에 쥐고 놓지를 못한다. 드디어.

 "딩딩딩딩"

 하트와 함께 녀석의 이름이 뜬다

 "찬아, 괜찮아?"

 "네네. 지금까지 계속 수업 들은 것만 빼고는 다 괜찮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입소 이후로 매일 저녁 전화가 왔고 녀석의 목소리는 점점 더 상기되어 갔다. 처음 경험해 보는 합숙생활이 꽤나 재미있다고 했다. 새벽 6시 50분에 일어나 체조하는 것도, 밤 10시에 자는 척 불 꺼놓고 친구들과 베개싸움 하는 것도, 아픈 친구를 밤새 간호하느라 새벽에 잠든 경험까지. 한겨울이지만 녀석의 목소리에서는 한여름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그래. 그랬었지. 우리도 인생 처음은 뭐든 다 재미있지 않았었나.


 또다시 연수원 강당.

 며칠 사이, 한 뼘 커버린 듯한 아들이 무대에서 의젓하게 수료증을 받아 인사를 하고 내려온다. 청승맞은 엄마 물고기는 또 눈물 찔끔.  

 "아들, 재미있었어?"

 "엄마, 며칠 더 있으면 안 돼요?"

  "?"

 "너무 미 있는데 내년에도 또 올래요"

 아들은 친구들과 헤어지며 꼭 연락하자는 약속을 나눴고,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는 끝내 눈물을 몰래 훔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이별의 아픔으로 대성통곡했다는 이야기는 기밀 사항.(여기 떡하니 밝혔으니 들켰다간. 후덜덜합니다)


 이제 곧 5학년 아들. 차로 세 시간이 넘는 곳에 홀로 3박 4일 수학캠프를 보냈다고 하면 주변 엄마들 반응이

수학, 그렇게까지 해야 해?

 응. 그렇게 까지 해야 해.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수학이 너무 싫어서 그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도록. 그래도 노력해 볼 만하다는 될 수 있도록. 답을 찾아 생각에 생각을 해야 하는 그 과정이 너무 두렵지는 않도록.

그건 엄마 욕심이야

  나는 수포자 엄마다. 알고 있다. 내가 두려워 포기했기 때문에 아이는 그런 실패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몰아붙였다는 것을. 아이는 내가 아닌데 자꾸 나를 투영시킨다는 것을.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하지만 좀 봐주면 안 될까. 딱 여기까지만 봐주면 안 되는 일일까.

여기서 멈추세요


 우리는 안다. 실패는 아이를 무럭무럭 자라게 할 것을. 그러니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에피소드>

 찬이는 순진하지만 모심이 강한 아이다. 부딪혀 보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단지 게으를 뿐...?(그저 습니다)

 엄마라서 욕심에 눈이 멀었지만 엄마라서 눈이 밝기도 하다. 요 귀염둥이 녀석이 단체 생활과 협업에 잘 적응할 줄 알고 있었다. 수학은 핑계일 뿐 대학생 선생님들에게 사랑 많이 받고 친구들과 진한 우정도 나눠 봄이 어떨까 하여 제의한 것이다.

 가도 될 아이인지 아닌지는 초근접 관찰자인 엄마가 제일 잘 안다. 선택의 기회를 제시하지만 89% 정도는 YES 가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하기에 슬쩍 던져보는 것이다. 그러니 딱 봐도 싫다고 할 아이에게는 강요하지 말자고요.


수학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만으로도 반짝이는  아이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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