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됐네. 다 됐어?

부끄러운 인격

by 인절미

나이가 들면서 자신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졌다.

체력만은 자신 있었는데 예전처럼 활기찬 시간보다 피곤함을 느끼는 날이 많아졌고, 치킨은 사람 수대로 시키는 것(1인 1닭)이 국룰이라고 생각했는데 반 마리 먹는 것도 버겁고, 급한 일은 며칠 밤을 새며 해내던 속도를 이제는 유지할 수 없다. 예전에 성취했던 경험만을 믿고 그대로 했다가는 큰~~일 나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더불어 어떤 일을 마주할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말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수긍이 먼저 되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며 원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젊었을 때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을 한 사람의 입장을 미루어 짐작하는 역지사지의 아량이 넓어진 것이겠지.

나이든 이가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의 태도를 견지할 때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꼰대가 되가는 것은 쉽게 목도하는 이치다. 꼰대는 기성세대로 대표 되는 나이든 계층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요즘에는 '젊은 꼰대'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떨어진 채로 자신만 옳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을 통칭하여 쓰이는 말이 된 것 같다.

나이가 그닥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인생의 절반을 지났으니 나름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감각이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예전보다 내 판단에 대해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수록 나보다 나이 든 어른의 어른답지 못한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고, 나보다 어린 사람의 젊은이 답지 않은 행동을 비판하는 버릇이 나도 모르게 생겨버렸다. 물론 관계 유지를 위해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티가 날 수도 있다.

직접 대면할 일이 없는 TV 속 연예인이나 방송인에 대한 평가는 더 신랄해진다. "아휴, 저 사람은 저기까지 나와서 왜 저래?", "와, 눈치가 진짜 없네.", "뭐야, 젊은 게 글러 먹었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는 말이 딱맞다. 그러다가 문득 가족들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버릇이 나와버리면 자녀들 보기에 민망해져서 "아니, 엄마가 저 사람같은 태도를 싫어해서 그래. 근데 방금은 말이 좀 심했네." 라며 변명을 하곤 한다.


이런 변명으로는 이미 뱉은 말이 수습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 며칠 후 발생했다.


그날은 점점 해가 짧아지고 찬 바람이 나면서 저녁에 치킨을 먹으려고 배달을 시킨 날이었다.

추워지는 날씨에 옷도 두꺼워지며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느슨해지고 배가 많이 고픈 상황이어서 두 마리를 시켰다. 남편은 원래 적은 양을 먹는 사람이고 아이들도 먹는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세명이서 한 마리를 다 못 먹는 상황이지만, 원래 대식가인 내가 분발하면 가능한 양이었다.

그런데 '아차, 내가 이미 인생의 절반의 나이가 아니던가.'

제행무상(諸行無常, 우주 만물은 항상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이라 점점 나이들어 소화력이 떨어져 거의 한 마리(2/3)가 남은 시점에서 더는 못 먹겠다는 선언을 했다. 한창 때의 내가 얼마나 많이 먹는지를 아는 남편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으이고, 우리 000 다 됐네. 다 됐어." 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픽 웃으며 부른 배를 두드리며 웃어 버렸다.

그 때 자신의 정량을 이미 먹고 자기 방에 들어가 있던 우리집 저격수(자신의 일 외에는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둘째)가 거실에서 왁자하게 웃는 소리가 들리니 빼꼼하게 나왔다. 그런 둘째를 보고 남편은 자신의 말에 웃는 식구들을 보며 신이 났는지 "@@아, 엄마가 다 됐다. 다 됐어."라고 말했다.


"응? 엄마가 다 됐어? 뭐가? 꼰대가?"


어린 아이인 둘째의 입에서 꼰대라는 단어가 나오자 왁자한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에는 아이의 입에서 예상 못한 단어가 나와서 웃어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른이 되고 싶은 나'가 경계하는 꼰대라는 단어와 내 행동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살면서 만날 일 없는 사람에게 한 말과 태도도 결국 나의 인격이구나.'

꼰대가 되어 부끄러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