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다고 여길 수 있는 큰 그릇이 나에게도 있기를.
어느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책을 읽지만 말고 독후감 공모를 해보는 것은 어떻냐고.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들었지만, 나 역시도 읽기만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발산해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것 같다.
친구가 소개한 공모전은 협성독서왕 독후감 공모.
마침 해당 공모전에서 주제로 삼은 여러 책 중에 한권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
아주 우연히도 내가 갖고 있었으니, 이것은 운명이 아닌가! 하며 일필휘지의 마음가짐으로 독후감을 속사포로 써내려갔다. 꽤나 훌륭하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하고 지원서 양식에 맞게 재구성해보는데, 큰일이 생겼다.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최소분량을 겨우-겨우 넘는 수준 밖에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하나하나 늘리자니 엣지가 떨어지는 것 같고, 이럴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구구절절 내마음을 전혀 간결하지 않게 표현할껄 그랬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일필휘지의 마음이었는데 첨-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일. 나의 엣지를 심사위원들이 응당 알아줄 것이라고 기고만장하며 바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제출기한이 지나고 나서야 협성문화재단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전년도 수상자 수상작품을 보는 만용을 부렸는데, 이거 완전히 망했다.
최소분량이었던 A4용지 한장 반 분량과 비슷한 분량이 아니라 거의 30페이지에 달하는 독후감이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그나마 적은 분량도 10장은 넘는것 같았다. 하긴 책이 전달하는 내용이 깊고 넓은데 업무때 사용하는 Executive summary 정도로만 끝내려고 했다는 내가 잘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상하게 되면 어디로 가야하나~ 찾아보는데 이게 왠걸. 부산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큰 기대를 갖고 콧노래를 불렀던 내 과거가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종종 인간의 군상을 '부지런/게으름 & 똑똑함/멍청함' 사분면을 통해 분류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장 경계하고자 했던 에서 '게으름&멍청함'에, 그것도 정중앙에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했던 것이다.
결과는 역시나 본상에도 들지 못한 상황.
친구와 나는 내년을 기약하며 내년에는 진짜 소꼬리 곰탕보다 더 진하게 우려낸 독후감으로 공모전에 응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다짐을 위해 나의 독후감을 남겨보고자 한다.
도서명 : 이토록 사소한 것들
제목 : 사소하다고 여길 수 있는 큰 그릇이 내게도 있길.
아일랜드에서 배로강을 끼고 살며 석탄 등을 팔며 지내고 있는 펄롱. 이 책의 그가 주인공이자, 계속되는 그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시점적으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조금씩 들떠있는 마을의 분위기 속에서 책은 시작한다.
펄롱이 살아가고 있는 고단함이 너무 세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어있다. 어떤 소설은 서사를 유려하게 푸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반면에 어떤 소설은 그 날의 분위기, 그 날의 감정, 고단함의 정도에 대해 세밀하게 말해준다. 주인공에 이입하도록 끊임없이 설득의 손길을 내밀며, 가랑비에 옷이 젖듯 어느새 내가 그날의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의 일상에서 고단함은 삶에 대한 절박함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절박함은 유복하지 못했던 성장환경과, 일찍이 얻게 된 5명의 딸, 그리고 부단히 일해야만 자식들을 나와 같이 살게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펄롱의 고단함은 완벽히 제3자인 나에게까지 진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는 힘든 하루를 보내고나서 앞으로의 빡빡한 미래를 아내와 이야기할 때에도 이렇게 말한다.
'그치만, 운이 좋지?'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이렇게라도 살아갈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올수록 마을은 온통 크리스마스 준비에 한창인데, 펄롱은 우연히 새로운 고단함을 직면하게 된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착취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기 딸과 유사한 연배의 여자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다 한통속인 곳에 괜히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마을 사람들 모두, 심지어 아내마저도 말한다. 어짜피 한통속이니 고단함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들이었을 것이다.
펄롱이 삶을 살아가면서 체득한 경험들이, 그에게 지금보다 더 고단함을 퍼 얹어오면 안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흑맥주처럼 새카만 배로강이 자연스럽게 바다로 나아가듯이, 펄롱은 세탁소에서 발이 새카매질 정도로 착취당하고 있는 어린 소녀를 구해오기로 결심한다. 그의 마음은 공명심이나 위선에서 시작된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소설 표현 그대로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하는 사소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어린 소녀를 데리고 집에 데려오면서 펄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한통속일 수녀원과 이를 묵인하는 마을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살지-’
‘고단한 삶을 겨우 이어가며 이미 다섯 딸을 키우고 있는데 숟가락 하나를 더 얹어도 될지-’
‘내가 뭐라고 이렇게 까지-’
펄롱이 크리스마스에 고단할수 있는 일을 떠안으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은, 나에겐 무척 대단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을 일을 기꺼이 마주한다는 것'을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고 보고 움직이는 펄롱의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지켜나가야할 사소한 선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