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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읍비읍 Nov 04. 2024

진짜 신혼여행 좀 다녀오겠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발생했던 2022년 2월 말에 나는 결혼했다. 코로나 시기가 다 지나고 나서야 생각해보건대, 하루에 천명씩 확진자가 발생한 건 심지어 '폭발적'인 시기도 아닌 소소한 시절이긴 했다.


당시에 결혼한 사람들을 코로나 세대로 한 번에 묶기도 어려운 것이 한 달 또는 한주를 사이에 두고 결혼식의 형태가 참 많이도 달랐었다. 누군가는 하객을 50명만 받을 수 있었다거나,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거나 등등. 나의 결혼식 때는 다행히 하객은 200여 명을 넘게 초대할 수 있는 시기였지만,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는 건 조금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짧게, 그것도 제주도로 슥!삭!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나마저도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 여름에 아내의 대학원 졸업이라는 이벤트가 생기기도 했고, 나 역시도 8월부터는 다시 업무가 바빠질 것 같아 아내와 나는 신혼여행을 제대로 다시 가보기로 결정했다. 신혼여행지는 의외로 쉽게 결정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유럽을 찍먹 하듯 가봤던 나와, 5년 전 즈음 리옹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아내의 기억이 합쳐져 목적지는 프랑스 파리로 결정되었다.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도 없이 회사에 2주간의 휴가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거 안 받아들여지면 퇴사를 해버릴까-라는 MZ마인드 그 자체로 혼자 궁시렁대기 시작했다. 신혼여행을 제대로 못 가봤고.... 주저리주저리..... 아내가 대학원을 졸업하는데 이번 기회에.... 주저리주저리...라고 말하며, 사내에 동정심을 유발하는데 매우 정치적인 행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일반 직장인으로서는 쉽게 갖기 어려운 약 12일간의 휴가(연차일수로는 8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사실 주어진 시간과 돈(물론 미래의 내가 다시 채워나가야할)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선택지는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문득 시간과 돈이 충분히 충족될 먼 미래에는 오히려 체력이 없어서 선택지가 몇 안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행을 가서 많이 걸어 다니는 것도 어쩌면 한동안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최근에 급격히 신체적인 능력의 하락을 예민하게 느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답은 유럽이지! 라는 아내와의 공감대가 생기자마자 다른 나라를 떠오르지도 않고 프랑스를 가보기로 우당탕탕 결정이 되었다.



신혼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내와 나는 어떤 컨셉으로 여행을 떠날지 고민했다. 

해당 지역의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찍고 다니는 여행을 할 것인지, 쉬러 갔는데 마침 그곳이 파리인 느낌으로 여유를 부릴지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는 후자의 경우가 진정한 여행이 아닌가-라고 의견을 모았다. 우당탕탕 결정된 목적지처럼, 컨셉 역시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곳에서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서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출발일 당일이 되었다.


금요일 오전 9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5시 반에 예약한 카카오택시를 타고 집을 나섰다. 1년 반 전에 아내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갈 때도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내와 설레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한국을 뜨는 신혼여행이라니! 조금은 더욱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수월하게 도착한 인천공항에서는 역시나 별 무리 없이 입국수속을 마치고 파리로 슥- 출발했다.


내 기억 속에 장거리 비행은,

비행기에 있는 도중에 기내식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도착! 했던 가뿐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언제부터 바뀐 것인지 에어프랑스는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 기내식을 아주 가볍게 한번 주고는 다시는 기내식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총 14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비행기 일정인데 2시간 만에 밥을 주면, 나머지 12시간은 그냥 공복으로 있어야 하는 건가!?

심지어 위스키를 한잔 먹고 두 숨은 자려던 내 계획마저 어그러졌다. 아주 쿨하게 받아먹으려고 했던 위스키는커녕 작은 미니 와인 한 병만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잠이 오지 않는 쌩쌩한 정신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12시간의 공복은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다. 화장실을 자주 가고 싶지 않아 물도 거의 먹지  않았더니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 흠흠..!


배고픔을 제외하고는 순탄했던 비행을 마치고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완전히 어색할 수밖에 없는 타지에 도착했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앞으로 프랑스에서의 일정은 불어를 할 줄 아는 아내를 앞세워 두고 나는 효도관광객의 마음으로 임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아내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주 사랑스러운 파파고를 들고 다니는 관광객이 되었었다.





Next episode : 나도 남들 다 가는데 가볼래

택시에서 슥 먼저 보는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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