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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읍비읍 Nov 25. 2024

너무 더운 오후와 끝없는 파리의 대낮


모든 촬영이 끝난 게 12시뿐이 안된 상황에서 우리는 한국에서 핫한 '파이브 가이즈 버거'를 웨이팅 없이 먹기 위해 파리에서 먹는 편법을 사용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글맵에서 "이 정도 뭐~" 하는 거리는 걸어 다닐만하다고 잘못 판단하였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내가 너무 힘들었던 것인지, 튈르리 공원에서 오페라 역까지 걷는데 세상에서 제일 먼 길을 가는 것만 같았다. 마치 광화문 앞이나, 여의도역 근처를 보듯 오페라 역으로 가는 길은 모조리 공사 중이었고 햇빛을 피하며 그늘로'만' 걸으려던  나를 무진장 땀 흘리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오페라 역의 '파이브 가이즈 버거'.

너무 손쉽게도 3분 정도 웨이팅 하고 주문을 넣을 수 있었고, 아내와 나는 한국에서 먹었으면 2시간 기다릴 것을 이렇게나 단축시켰다며 서로 즐거워했다.(2022년 여름 기준)

집에서도 원래 약간은 싱거운 맛을 추구하던 우리 입맛에는 땅콩이 너무 짭조름했고, 햄버거는 프랑스까지 왔는데 갑분싸로 미국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배를 불리는 목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결정이었지만, '프랑스 까지 와서..?'라는 내 고지식에는 조금의 스크래치가 났던 순간이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아직도 해가 쨍한 2시밖에 안된지라 2일 차 여행러들은 근처에 있는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향했다. 제일 더운 시간대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아내에게 필요한 선글라스와 내게 필요한 슬리퍼를 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주말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많은 인파들이 백화점에 가득했고, 관광객들도 쇼핑을 하러 왔는지 정말 바글바글했다. 더위를 피할 겸(이게 주목적인...?) 들어온 백화점이 이렇게나 덥고 답답하다니...!. 

예상과 다르게 전혀 에어컨 힐링도 되지 않고 선글라스는 맘에 드는 게 없어서 헛걸음을 하려던 찰나 면세점에서 찾던 발렌티노 립스틱을 살 수 있었다. 매우 화려하게 생긴 흑인 점원분에게 '아시아 사람들은 이 호수만 찾는다며' 불어로 소통하고 있는 아내를 보자니, 어제 느낀 것과 같이 불어를 사용하는 아내를 이쪽 사람들이 굉장히 귀여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흠흠.

 

예상과 달리 큰 소득 없이 백화점을 나왔는데 여전히 엄청난 더위와 더 많아진 사람들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숙소에 돌아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인 것만 같아 좀 걸으려 했으나 너무너무 극심한 더위에  10분을 채 걷지 못하고 카페에 들어가서 시원한 거 '아무거나' 시키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와서 육수를 뽑아내고 싶지 않았는데... 오전에 스냅촬영이 있어서 옷도 예쁘게 입었더니 더욱 땀이 폭발했던 순간이었다.


아내와 나는 시차 적응과 더위를 피하는 목적으로 숙소에 다시 돌아가서 일단 좀 쉬다가 저녁에 다시 나오기로 결정했다. 


숙소의 에어컨 바람을 영접하자마자 너무 상쾌한 마음이 들었고, 그대로 씻고 누우니 밖에서 돌아와서는 침대에 누워 쉬는걸 너무나도 좋아했던 아내를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7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고 밝았던 파리를 좀 더 즐겨보고자 아내와 다시 한번 숙소를 나섰다. 에너지를 충전한 우리는 에펠탑 근처를 돌며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았고 재밌어했다.  

그러나 여름이어도 8시 즈음이면 선선해지는 한국과 달리 해가지는 10시까지 그대로 쨍! 한 날씨인 파리에서 나는 다시 한번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knock-down 되었다. 더위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숙소 가서 발코니에서 저녁을 먹는 것을 제안하였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갔다. 이날 집기 시작한 납작 복숭아와 꽁떼 치즈는 여행이 끝나기 전까지 거의 매일 사 먹는 최애 음식이었다.


그리고 관광객으로써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된 것은  해가 쨍하게 떠있는 8시 반인데 근처의 마트들이 다 문을 닫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노동의 나라인데 당연히 그럴 수 있겠지만  밤도 아니고 이렇게나 밖이 환한데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다니, 새삼스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해가 지고 나서 숙소의 발코니에 앉아 빛나는 에펠탑을 보며 온갖 주전부리를 먹으며 또다시 수다를 시작했다. 시차적응을 위해 한 타임씩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이 나라의 매우 긴 day-time에 대해, 지금 먹고 있는 음식들의 맛과 분위기에 대해, 그리고 평소처럼 서로 주변에서 있었던 일들이 아닌 서로에 대한 이야기 자체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2시부터 하루의 관광을 마무리하려던 엄청난 더위와 스트레스는 어디 갔고 벌써 2일이나 지난거나며 아쉬워하던 우리는 삼일차를 더욱 알차게 보내보기 위해 자정을 넘기지 않고 잠을 잤다. 


Next episode : 관광객에서 파리지앵으로 드리프트


무한도전 홍진경의 유럽춤(파리지앵 춤)을 추는 파리지앵 호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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