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날 아침이 밝았다.
전날의 피로로 인해 시차적응이 필요 없다고 자신했던 나에게 거짓말처럼 시차 후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새벽 4시에 눈을 떠서는 몸은 피곤한데 정신만 말짱한 기계 오작동 같은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다시 자기도 뭐-하고 발코니만 나가면 아주 멋진 에펠탑 뷰가 있으니 노트북을 가지고 발코니로 나갔다. 따로 여행 계획을 세운게 없어서 ENTJ인 나의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캄캄한 밤이었지만, 노트북으로 이후의 일정을 잘 수행해 내기 위해서 비행기들은 제대로 예약되어 있는지, 기차표는 살아 있는지 한국에서 찾아본 기사처럼 프랑스 폭동이 여전한지 등등 찾아보며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내도 시차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6시에 눈을 떠서는 아침형 인간의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내가 주말에는 아침 일찍부터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반가웠고, 오전에 있을 파리 스냅 촬영 일정에 앞서 파리의 찐 갬성인 아침부터 빵과 커피를 마시러 근처 빵집을 찾았다.
이제와서야 아내의 최애 빵이 크로와상과 빵오쇼콜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식사대용인 빵이 필요해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었다.
약간 글이나 말로 형용하기는 어려운 한국 빵과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빵이 약간 짭짤하면서도 버터의 향이 강하게 나는 부드러운 빵이라고 할까나-. 너무 풍미가 좋은 존맛탱 빵의 시작이었다.
아침을 먹고 뜨거워지기 전에 사진을 찍고자 10시-12시로 예약한 스냅촬영을 위해 접선 장소로 향했다. 전체 여행 일정 중에 가장 컨디션이 좋고 준비해 온 옷들도 깨끗할 때라고 했던 아내의 세밀한 계획처럼, 우리는 비록 잠은 짧게 잤을지언정 쌩쌩함과 컨디션은 매우 좋은 상황이었다. 매우 이른 아침이라 괜찮았지 이때의 파리는 꽤나 뜨거운 날이었다.
접선장소인 트로카데로 광장에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는 굉장히 맑은 파리의 하늘을 만끽하며 서로 사진을 찍으며 기다렸다. 사실 나는 피사체로 들어가기 많이 민망해서 원치는 않았지만, 이렇게나 좋은 풍경 속에 놓은 아내를 찍는 것은 찍는 내가 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건물들이 낮고 평지들이라서 그런지 정말 하늘이 너-무 넓게 보이고 높기도 엄청 높은 하늘이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폭동의 여파가 있는지 등에 대해 걱정이 꽤 되기도 했었다.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벤치에 누워서 바지 엉덩이가 흠뻑 젖어버린, 왠지 마약을 한 게 아닐지 의심되는 노숙자 분들이 2~3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로카데로 광장에 들어서자 수많은 관광객들을 보고서는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나 많은 관광객이 있는데 폭동이 계속되게 프랑스가 가만두지는 않았을 거야- 하는 삼단논법적인 정신승리를 쟁취하였기 때문이다.
아내가 알아본 스냅 업체는 셔터프레소라는 업체로, 담당 작가님의 그동안의 결과물들을 꼼꼼히 살펴본 아내가 꽤나 구체적인 구도들을 요청했고, 작가님도 이를 흔쾌히 응하셨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상황에서 포즈(?)를 취한다는 게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촬영이 시작되고 한 10분 정도 지났을 때 우리를 찍고 있는 작가님 뒤에서 우리를 보며 '이렇게 찍어야겠다-'라는 레퍼런스를 얻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작가님이 촬영 포인트를 잘 잡아주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긴장이 풀렸다. 그런 나와는 달리 아내는 처음부터 이 스냅사진에 대해 굉장히 진심이었고, 1년 반 전에 웨딩촬영도 해봤으니 본인은 이제 베테랑이라며 아주 능숙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열정을 대변하듯 신부님(웨딩촬영용 스냅을 많이 찍으시는지, 신랑님 신부님이라고 부르셨었다.)의 미모와 능숙함에 대해 끊임없이 칭찬하셨다.
그리고 작가님이 준비해 오신 spot들 외에 의외의 것에서 베스트샷이 나오게 되었다.
작가님은 죽방 같은 곳 위에서 우리를 찍은 다음에, 우리가 있는 곳으로 뒤따라 내려오고 계셨다. 촬영을 시작한 지 한 30분 만에 나와 아내는 단둘이서 3분가량 남겨져 있게 되었는데, 아내가 본인을 찍어달라며 휴대폰 촬영을 요청하였고 예쁘게 나오게 해 주려고 카메라 각도를 낮추기 위해 내가 거의 뒤로 눕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촬영이 많으니 상의도 하의도 더러워지지 않게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소한의 면적만 땅에 닿도록 자세를 취하며 아내를 사진 찍고 있었는데, 이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고 좋다며 작가님이 이 자세로 사진 좀 찍고 가자고 하셨다.
결과는.. 갱장히 대만족.. 아내도 너무 아름답게 나왔고 강에 비치는 윤슬과 재미있어 보이는 내 뒷모습까지 약간은 완벽한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다양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튈르리 공원으로 이동했다. 비르하킴 역에서 6호선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보이는 에펠탑 풍경도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파리 여행의 초장이라 그랬는지 너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두 번째 장소인 튈르리 공원에 도착하니 공원마저도 정말 예술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전체 여행 일정 중에 두 번을 더 오게 되는 파리에서 최애 장소를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서울의 마포구 메인 도로를 지날 때 보이는 정말 커다란 나무들이 튈르리 공원을 줄 맞춰서 세워져 있었고, 거인의 케이크를 칼로 자른 듯 반듯하게 조경이 되어있는 모습이 정말 쾌적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고 있었다. 여기에 도착했을 때가 11시를 넘긴 시간이었는데, 이때부터 굉장히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심지어 공원이라 사진 spot들에서는 그늘이 전혀 없는, 정말 땡볕에서 사진을 찍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촬영의 특성상 천천히 걷는듯한 모션을 요구받기도 하였고, 동일한 자세를 몇 초간 유지하는 등의 포즈는 땀이 많은 나로서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결과물을 보고서는 땡볕의 고통과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의 머쓱함이 한 번에 씻겨져 나가긴 했다 ^^!;;
그리고 아내가 선택한 레퍼런스 중에 하나인 튈르리 공원의 '날으는 스윙 의자(?)'는 상상 이상으로 멋진 사진이 나왔다. 나와 아내 둘 다 딱히 놀이기구에 대한 무서움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탑승을 하였는데, 사진 포즈상 서로를 바라보는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 둘 다 엄청난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프로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
이미 프로 모델이 되어버린 아내는 입으로는 머리가 아프다-, 토를 할 것 같다- 라는 말을 하며 신음하였지만, 왜인지 표정은 굉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아내의 목적지향적인 강인한 멘탈이 나를 다시 한번 감명 깊게 만들었다.
Next episode : 너무 더운 오후와 끝없는 파리의 대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