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시차적응한 것 같다!'라고 말하며 일어난 아침 7시. 확실히 시차적응에 골골댈 때보다는 1~2시간씩 더 잘 수 있는 것을 보니 이제 당분간은 파리지앵이라고 불러도 될 신체적 조건은 갖추게 된 것 같다.
한동안은 질리지 않은 것 같은 에펠탑을 배경 삼아 발코니에서 우리만의 조식을 먹었다. 아내의 말로는 굉장히 먹어보고 싶었다는 요플레였는데 아내는 막상 먹어보니 맛이 생각만큼은 아니었던 듯 이내 흥미를 잃었던 것 같았다. 어제 남은 하몽과 요플레, 그리고 한국인의 해장요리 컵라면을 먹고 일정을 시작하였다.
마레지구를 구경 가기로 한 우리는, 동선을 cite역에서 내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지나 파리시청(hotel de ville)을 거쳐 마레지구에 입성 예정이었다. 뜨거웠던 어제와 달리 아침은 꽤나 쌀쌀했고, 하늘은 우중충한 느낌이었다. 일기예보로는 하루 중에 비가 약 4시간 정도 올 수 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 될까 조금은 걱정하면서 출발했다(하지만 전혀 오지 않았다).
몇 년 전 불에 타버린 노트르담 성당은 아직 복구 중이었고,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펜스를 높게 쳐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애도를 표시하듯이 주변에 많이 둘러앉아 한동안 노트르담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내에 따르면 24년 12월이면 재개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재개장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기사로 얼마나 잘 복원이 되었는지를 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채로 다음 갈길을 갔다.
마레지구 구경에 앞서 크레페도 먹고 싶고, 케밥도 먹고 싶은 나와 아내의 니즈를 결합하여 점심을 두 탕 뛰기로 결정했다. 파리에서는 대부분의 가게가 11시에 문을 열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번에도 길거리에 나와있는 테이블에 앉아 크레페와 모닝 샌드위치를 주문해서 먹었다.
약간 우리가 원했던 것은 길거리에서 파는 맛있는 크레페 정도를 생각했는데, 너무 정식 크레페처럼 말끔하게 나오니 예상했던 그 맛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계획에 없던 아보카도가 올려진 샌드위치가 꽤 맛이 좋았고 딱- 적당한 아침으로 제격이었다.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며 놀고 있는데, 이제야 주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간접흡연의 위험을 주변인에게 전가하며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딘지 모르게 여유롭게 피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냥 식당에서 밥 먹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매우 따닥따닥 붙어있는 테이블 한가운데서 담배연기를 조용-하게 내뱉고 있었다.
한시적 비흡연자로서 남의 담배연기는 매우 매캐했는데, 또 생각보다 엄청 심하지는 않았다. 이쪽 담배는 뭐가 다른가- 하면서 곰곰이 관찰하는데 프랑스에서 담배 피우는, 정확히는 남들이 주변에 매우 붙듯이 모여있는데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는 둥 마는 둥, 세월에 네월이 하면서 피는 것 같았다. 아니면 겉담배를 하면서 약간 시가를 피우듯이 입만 뻐끔뻐끔하는 것인지 연기도 엄청 연하게 나고, 재도 안 날아다니는 게 조금은 신기했다. 아무도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어쩌면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되어버린 흡연 시민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았다.
흡연자의 권리와, 비흡연자의 권리.. 이런 식의 당당한 흡연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문화충격을 받아 나도 아무 말 못 하고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마레지구. 아기자기한 구경 포인트들이 참 많았고 이때부터 날씨가 매우 좋아지기 시작했다. 벽에 그려진 벽화부터, 가게의 메뉴를 알리는 메뉴판, 단체로 그림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 겉만 봐도 너무 예쁜 소품샵들 까지 좋았다.
사진으로 다 담기지는 않았지만 도로와 벽, 그리고 하늘과 날씨가 어우려 저 전에 하지 않던 서로 사진 찍고 놀기에 바빴다(머쓱). 다행히도 덩달아 나도 멋진 사진을 건지기도 했고 이렇게 예쁜 배경들과 아내를 함께 사진 프레임에 넣고 찍으니 나도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메르시라는 소품샵에 들러 아내가 유달리 좋아하는 포인트들이 무엇이었는지 관찰하는 기회가 있었다. 아내는 약간 조밀조밀하고, 세세한 느낌의 작은 크기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딱 봐서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아내가 그 사물을 바라보는 시간만큼 같이 바라보니 내가 봐도 예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아내가 구경하는 것들을 보러 같이 다니곤 했었는데, 파리에서도 한결같이 취향이 대쪽 같은 것을 보니 이렇게 아내에 대해 다시 한번 조금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근처에 있는 생마르탱 운하를 구경해 보러 가는 길에 번화가를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아내가 파리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인 꽃집에서 꽃을 사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패키지로 관광명소를 달리듯이 움직이는 사람들은 아니니깐!
아내와 같이 꽃집에 들어가서 꽃을 구경하고 꽃다발을 만드는데, 여기서도 불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벤트가 있었지 않을까 싶었다. 이 나라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제한이 없는 것. 이곳에서 산 꽃다발을 든 아내는 매우 기뻐했고, 나는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
생마르탱 운하에 도착하기에 앞서 대학생들이 즐비하다는 소문을 듣고는, 우리가 대학생 때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듯이 이쪽에서 와인을 먹어볼까 하고 마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일요일에는 오후 3시까지만 술을 팔고 그 이후에는 그쪽 part를 아예 닫아버린 것이었다. 우리가 의도했던 그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트에 들어온 김에 각자가 먹고 싶은 걸 집고 있었다. 나는 어제 먹었던 납작 복숭아를 다시 사고, 아내는 과자를 파는 칸에 가서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신나게 과자를 골라서 왔다.
생마르탱 운하라는 곳이 엄청나게 관광지라고 할 수는 없었겠지만, 여기 사람들이 경계선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날씨를 느끼고 있는 것에 나도 동참한 것만 같아 어찌 보면 가장 큰 관광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아내와 내가 이번 여행의 콘셉트로 잡은 것이었기 때문에,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게 돼서 기분이 편안해진 ENTJ였다. 파리에 있는 동안 매일 납작 복숭아를 사 먹겠다는 다짐과 함께 또 한참을 아내와 이야기하다가 중간 휴식을 취하러 숙소에 들어왔다.
내일이면 한동안 파리를 떠나 있을 것이 아쉬워 아내와 저녁 산책을 하기로 했다. 산책에 앞서 블로그들에서 강추했던 쌀국숫집을 찾았는데 너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왜인지 한국분들이 많이 있는 가게를 가면, 뭔가 현지의 독창적인 무엇인가를 한 것 같지가 않고 패키지여행을 온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지가 않았는데, 이곳이 약간 그런 분위기였다.
우리 앞뒤로 한국분들 일행이 꽤 있었고 메뉴도 비슷한 걸 시켰다. 그런데 마감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쌀국수의 숙주는 거무튀튀해져 있고, 존맛탱이라고 리뷰 써져 있던 새우튀김의 경우에는 치토스 가루를 뿌려놓은 것만 같은 이상한 화학제품 맛으로 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저녁을 꽤나 든든하고 맛 좋은 것을 먹으려고 안전한 쌀국수를 먹으러 간 것인데, 크게 실패를 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이 상했나- 사진도 찍지 않고 먹고 나오게 되었다.
아내와 캄캄해진 파리 밤거리를 걸으며 다시 한번 에펠탑을 향해 걸어갔다.
숙소가 그쪽이기도 했지만, 밤에 밖에서 보는 에펠탑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도 모르게 발걸음을 그쪽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신 카메라를 들이밀었지만 눈으로 밖에 담을 수 있는 분위기와 색감, 부피감 때문에 그저 번쩍이는 에펠탑을 배경 삼아 한참을 이야기하며 걸었다.
선선해진 날씨와 쾌적한 습도.. 이래서 연예인들이 비밀연애할 때 몰래 파리로 와서 손잡고 데이트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되면 프랑스 폭동은 집에 돌아갔다고 봐도 될 느낌이었고, 5일 뒤에 파리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 치안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저녁에도 아내와 데이트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내일 풀만호텔을 체크아웃하고 나가면 이렇게 편하게 발코니에서 에펠탑을 관람할 수는 없을 거라는 아쉬움에, 점심에 마레지구에서 사 온 디저트들과 먹다 남은 와인을 홀짝이며 홍진경의 파리지앵 춤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Next episode : 내일 저녁은 리옹에서 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