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일 저녁은 리옹에서 하실까요?

by 비읍비읍 Dec 09. 2024

파리에서 시차적응을 완벽히 마치고 오늘은 아내가 유학생활을 했었던 리옹으로 1박 2일 여행을 출발했다.


파리만 가봤다고 프랑스를 가봤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나의 막연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에서 시작된 결정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불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가서 아내 뒤에 숨어서 여행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에펠탑 뷰를 마지막으로 보고 풀만 호텔을 나와 Gare de lyon 역으로 향했다.

리옹을 가는데 리옹역을 간다..? 처음에는 굉장히 헷갈렸지만 gare de lyon은 파리의 동부역 같은 개념이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Lyon이라는 지역이다. 며칠간 느꼈던 꽤나 더운 더위에 지레 겁먹고 땀보다 돈이 덜 아까운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역으로 이동했다.(머쓱)


기차역에 미리 도착해서 아점으로 샐러드와 에스카르고를 주문했다. 그래! 프랑스에 왔는데 달팽이 요리 한번 먹어봐야지!- 하고 시킨 요리였는데 크기가 상당히 아쉬웠다. 물론 내가 간 음식점이 에스카르고 전문점은 아닐지 몰라도 그래도 역 앞에 있는 꽤나 그럴싸한 곳이었는데 이렇게나 작은 크기가 나오다니!?!?  


하지만 나는 어느새 파리지앵이 되어버린 몸으로써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물론 먹는 내내 '청량리의 백골뱅이집을 가면 이것보다 한 4배는 큰 것들 한 바가지 나오고 2만 원이면 배 터지게 먹을 텐데...'라고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했지만, 나는 파리지앵-이니깐.


하지만 맛을 봐보니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맛이 정말 너무 맛있었다. 특히 바질로 도배를 한 것인지 의심이 들정도로 깊은 바질오일 향이 풍미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달팽이 크기는 아쉽지만 달팽이 요리는 너무 맛있어서, 그냥 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저 바질 오일을 빵에 쪽쪽 다 찍어 먹고 나서야 가게를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전언에 따르면 리옹에 가면 부숑이라는 것을 먹을 것이고 그것은 아주 배가 터질 것이니 아쉬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서울역과는 약간 다르게 생긴 기차역에서 어플로 예약한 Omio 기차를 잘 찾아서 개찰구도 슥슥 잘 지나가서는 아내와 목표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다들 휴가 철인지 열심히 어딘가를 기차 여행하러 가는 길이었고, 파리에 여행온 사람이랑 약간 다르게 생긴 느낌을 주는 리옹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분위기들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굉장한 편견에 따르면, 월요일인 지금 리옹으로 기차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완전 외쿡인이 아니라 프랑스 현지인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기차에 타서는 숙면을 취하는 아내를 옆에 두고 지금 프랑스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신기한 경험에 대해 별의별 잡다한 생각을 다하면서 갔다. 


파리-리옹 거리가 서울-부산 거리보다 조금 더 긴 거리인데 어떻게 1시 산 45분 만에 도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중간에 정거장들이 없기 때문에 TGV는 감속하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기차가 아니라 자동차로 예상시간 조회해 보면 서울-부산 소요시간이 더 짧게 걸리는 건 왜일까? 우리나라는 철도 정거장은 많지만 도로가 잘 닦여있어서 그런 것일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리고 정말 넓고 계속되는 평지 밭이 끝없이 펼쳐지는걸 보아하니 프랑스가 농업국가로서 대성할만한 지리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구나 하는 부러움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넓은데 집이 드문드문 있는 걸 보니 '바스터즈' 영화에서 독일군 장교가 프랑스인 집을 탈탈 털 때 이런 외진 곳까지 와서 털어버렸던 것인가- 하면서  관련도 없는 땅을 보며 연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여곡절 없이 순식간에 도착한 리옹은 정말 매우 더운 곳이었다. 한국과 달리 습도는 낮아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었지만, 햇빛으로 때려죽이는 더위에 해당했던 것 같다. 아내와 역 인근의 숙소로 15분 이동하는데도 온갖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치솟을 정도의 더위와 햇빛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가장 편안하고 얇은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래된 리옹이라는 뜻의 '비유 리옹(Vieux Lyon)'으로 출발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가는데만 해도 뜨거운 열기에 걷기가 어려웠고, 공유킥보드가 곳곳에 보이는데, 느린 인터넷으로는 실외에서 가입할 수가 없어 그림의 떡 쳐다보듯 아쉬워만 했다.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프랑스 폭동의 진원지가 리옹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파리에서와 달리 다시 한번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폭동의 흔적 같은 것들이 유달리 눈에 잘 들어왔다. 시원해야 할 것 같은 1층 식료품 샵이 덥길래 밖에 나가보니 문이 부서져 있는 상태로 그냥 영업 중인 곳도 있었고, 은행 ATM 쪽 유리가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곳도 있었다. 아직 파리보다는 치안이 애매할 수 있을 것 같아, 해가 지기 전 9시에는 숙소도 돌아가야겠다고 계획하게 되었다. 


도착한 비유 리옹에서 좁고 오래된 것 같은 길바닥과 건물들이 다닥다닥 좁게 붙어있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거리를 아내와 걸었다. 이제부터는 아내는 리옹의 안내자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극심한 더위 때문인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더러 있었다.

 

너무나 더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이 지역 최고 젤라토 집에 찾아가 맛을 보기도 하였는데, 아르바이트생들로 보이는 어린 점원들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일단 잘생긴 친구가 몇 있어서 내가 위축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관광객에 대한 배려 없이!(불어만 고집하면서) 나에게 직접 주문을 받으려는 시도를 몇 번 하는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미 아내가 내 몫까지 2인분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인데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다니!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처럼 으! 어! 를 비롯해 어떠한 영어도 한마디 내뱉지 못했다. 아내 뒤에 숨어 주문하는 권한을 아내에게 넘기고, 나는 먼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맛은 있었다).


아내와 7시까지 뙤약볕을 견뎌내다가 드디어 들어간 부숑 맛집. 이 순간부터 4일 동안 나와 아내는 유럽의 진정한 미식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그간 서술하지 않았지만 나는 유럽에 오고 나서 매 식사 때마다 와인을 한잔씩 시켜왔고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일 싼 것보다 2~3개 위의 가격대 정도의 와인 한잔을 시켜서 마시는데, 체력이 다한 사람처럼 머리가 핑! 돌면서  배터리 아웃을 외치는 몸의 아우성을 들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아내가 자랑을 아끼지 않았던 리옹의 부숑에 대해 맛보기 시작했다.


리옹에서 먹은 부숑은 1인당 2 개의 메뉴를 시키는 일종의 정식 요리였는데, 아내의 추천을 기반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간 리옹의 부숑집에서도 그러했지만 각 가게마다 리요네즈(리옹 사람들)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가게 특성을 담은 냅킨을 디자인해놓았다. 그리고 리옹에서 볼수 있는 인형극을 본따 만든것 같은 인형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리옹의 인근 공항의 이름이 생택쥐베리 공항인 것이 영향이 있었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처음 코스1로 나온 음식은 약간은 거칠게 갈아낸 토마토를 아래 깔고 퍼석하면서도 식감은 촉촉한 갈색 물체가 올라가 있는 접시와, 비프 타르타르와 같은 비주얼을 가진 음식이 나왔다. 

처음에는 서로 비프 타르타르를 맛보며 너무 향이 좋고 맛있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내 토마토 베이스에 아주 부드러운 갈색 요리에 둘다 빠지고 말았다. 아주 곱게 간 두부 같으면서도 아귀 간을 먹었을때와 같은 엄청난 부드러움, 토마토 소스의 조합이 진짜 대단했다. 

둘중에 하나만 시켜야한다면 후자를 시키기로 아내와 합의봤다.


다음으로 나온 두번째 코스는 정말 메인 음식이었다. 순대소시지처럼 생긴 음식은 단단한 식감의 새콤한 고기였다. 

새콤함은 아마도 위에 뿌려진 와인에 절여진 렌틸콩 맛이었을 수도 있다. 약간은 텁텁함도 존재해서 익힌 당근과 와인을 같이 곁들여 먹었을때 꽤나 맛있는 음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추방울토마토같이 생긴 감자를 곁들인 돼지고기 안심스테이크같은 음식은, 독일의 슈바인학센이 떠오를 정도의 엄청난 부드러움이었다. 겉은 살짝 바삭한 수준이었고 안의 내용물들을 나이프로 해체하니 입에서 녹아버리는 고기들이었다. 

둘중에 하나만 시킨다면 두번째 음식이었겟지만, 첫번째 음식과 같이 먹어서 서로 배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후식으로 선택한 파이는 리옹의 프랄린 파이.. 리옹의 대표적인 재료(?)이고 파이 뿐만 아니라 진짜 온갖 빵집에 빵에는 붉은색 프랄린이 가미된 제품들이 놓여있었긴 했다. 그러나 어쩌지.. 나는 이정도로 단 것은 잘 먹지 못하는걸.. 아내도 먹어본 맛이라며 먹기를 꺼려하는 것을 보니, 단순히 단것만은 아니겠다 싶었다. 


꽤나 더위에 지쳐 힘든 시간을 지나, 내일은 더 덥다고 하는 일기예보에  더 단단히 준비하고 관광에 나서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많이 타는 TIER라는 공유 전동킥보드 어플을 다운받고 결제등록까지 완료해놓았다. 한국에서 갈고 닦아온 실력으로 안전하게, 그리고 매우 시원하게 타고다니는 다음날을 그리며 잠에 들었다. 



Next episode : '아내'라는 성인(聖人)의 발자취를 좇는 성지순례



매거진의 이전글 관광객에서 파리지앵으로 드리프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