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Lyonnais
리옹에서 보내는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일정상으로는 리옹에서 1박만 하고 두 번째 날 저녁 비행기로 피렌체에 넘어갈 예정이었기에 짧은 1박 2일 코스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두 번째 하루를 보내보니 꽤 가득가득 채운 여행이 되었던 것 같다.
숙소의 퀄리티는 사실 굉장히 낮은 편에 속했다.
신혼여행을 빙자한 이번 여행에서 단 하루의 숙박만 하는 리옹 숙소에 힘을 굉장히 놓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여행 자체를 잘 보내고 있는 아내 덕분에 잘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1박만 하고 저녁에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캐리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던 찰나에, 불어를 할 줄 안다는 핑계로 이번에도 아내에게 리셉션에 문의하기를 떠넘겼다.(^^v). 숙소 상태는 그저 그랬지만 그래도 호텔이었던 지라 캐리어를 맡아주는 시스템이 잘 되어있었다. 다행이라는 마음을 안고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 모드로 움직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전날에 너무너무 더운 대낮의 열기를 느끼고 나서 쫄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오후 1시~4시 정도가 가장 뜨거운 시간이라고 특정 지을 수 있고, 그 외에는 그나마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대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는 뜨거운 시간이었던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오전 11시 전에 발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을 돌아다니고, 나머지는 카페나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날의 더위에 단단히 대비하기 위해 숙소를 나서기 전에 현지 공유 킥보드 어플인 TIER에 가입하고 결제수단 등록까지 완료했다. 또 멋은 없겠지만 양산의 역할을 할 우산을 챙겨서 나왔다. 일단 우산은 정말 필수템이었다고 평가할 만큼 최고의 선택이었고, TIER는 그간 한국에서 킥고잉/SWING/씽씽/LIME 등을 통해 수없이 단련해 놓은 운전 실력 덕분에 리옹을 더 깊숙이 느낄 수 있는 이동수단이었다.
TIER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사실 일정 초반에 있던 파리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TIER와 LIME 등 공유 킥보드를 많이 타고들 다녔다. 한국에서도 많이 봐왔던 광경이어서 별로 놀랍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유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나 공유킥보드 등을 타고 다니는 것을 봤다. 아마도 파리와 리옹이 둘 다 평지가 대부분인 곳이라 이런 이동수단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와 다르게 킥보드를 픽업하고 주차하는 공간이 지정되어 있었다. 일종의 주차장처럼 SPOT들에서만 킥보드를 시작할 수 있고, 마무리하는 것도 그곳에서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로에 자전거 도로가 매우 잘되어있었는데, 리옹의 경우 버스 다니는 곳과 자전거(등)가 다니는 곳이 하나의 차선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같이 달리는 자동차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탈 수 있었다.
심지어 꽤 복잡한 사거리의 경우에서도 자전거도로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정말 타기 좋은 환경이었지 않나 싶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환경적인 요건이 갖추어져 있으면 킥라니나 자라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우선 숙소를 나서서는 집 근처에 있는 TIER를 타고 첫 번째 일정을 시작했다. 아내와 리옹을 가보기로 결정한 데에는 약 4년 전에 리옹에서 1년 반가량 유학생활을 했던 아내의 발자취를 좇기 위해서였다. 성지순례에 가까운 마음가짐으로 아내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기숙사 앞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파리를 떠나보니 불어를 사용할 뿐 일반 도시들과 매우 유사한 건축양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조금 좋아 보이는 건물들의 경우에는 파리에서처럼 발코니가 있었지만, 단단해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과 넓은 도로가 파리가 아닌 프랑스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가 살았던 기숙사에서부터 걷거나 트램을 타고 다녔다는 어학원까지 걸으며 산책했다. 자주 갔다던 마트부터, 아랍계 아프리카 사람들이 바글거렸다는 역을 지났다. 그중 한 곳의 마트를 들러서 납작 복숭아와 물을 좀 샀는데,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좋은 관광을 하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뜨거운 햇빛을 우산으로 막으며 전날 더위로 힘들어했던 지점까지 산책을 했고 단단히 준비한 만큼 더욱 쾌적하게 아내와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아내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벨꾸르 광장에 도착했는 데 있었다고 했던 관람차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정말 넓은 휑-한 광장만이 남아있었다. 아내가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아쉬움을 느끼는 모습마저 나에게는 관광이었다.
아내가 다녔다는 어학원 앞에는 프랑스 답게 꽤 넓은 공원이 있었다. 아내가 자주 갔다던 빵집에 들러 아침 겸 점심 용 빵을 집어 들었다. 이 가게에서 집은 빵들은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 이번 여행에서 먹어본 모든 빵들을 통틀어서 가장 맛있는 빵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특히 키쉬라는 것이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는데 외국에서 맛있는 음식점 한국으로 들여와서 론칭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이 빵을 파는 가게를 론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같은 빵알못마저 홀려버릴 맛이라면 진짜 여의도에서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치 로또 당첨이 된 사람처럼 한없이 기분이 들떠있었다. 그 외에도 바게트 샌드위치와 납작 복숭아도 진짜 최고의 맛이었던 순간이었다.
정원 벤치에 앉아 발로는 까마귀를 내쫓으며 먹었던 이때의 식사가 내게는 이번 여행의 최고 맛집이 아니었나 싶다. 빵에 이렇게나 진심으로 감동을 받은 적이 없었어서, 한국에서 진짜 프랜차이즈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하며 네이버 검색을 해봤다.
이미 한국에도 냉동을 많이 팔고 있으며, 파는 가게도 꽤 있기는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기들에는 내가 느낀 감동이 없는 것을 보아 리옹에서의 이 맛을 한국에 온전히 가져가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뭔가 미묘한 차이점이 있을 텐데, 진짜 여기 키쉬는 세계 최고의 맛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좋은 날씨에 공원에서 먹어서 더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다시 리옹에 가게 된다면 또 먹어보고 싶어서 기록을 남겨야만 할 것 같다.
Maison POCHAT Boulangerie-Pâtisserie, Viennoiserie, Traiteur - Place Carnot
2 Pl. Carnot, 69002 Lyon,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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