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장님, 피렌체에서 잘나가는거 하나 주세요

by 비읍비읍 Dec 16. 2024


5일 차에서 6일 차로 넘어가는 밤에 나는 리옹에서 피렌체로 넘어왔다. 


숙소는 현지느낌 물씬 느끼고자 에어비앤비를 선택했는데, 꽤나 늦은 late check-in인지라  제대로 소통이 안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을 안고 피렌체 공항에 도착했다. 


트램을 타면 매우 저렴하고 금방 시내로 들어올 수 있다고는 하는데, 폭동의 흔적을 봤던 리옹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밤늦게 돌아다니는 게 조금은 꺼림칙했다. 아내와 택시를 잡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그때서야 깨달았다. 불어를 쓰지 않으니 이제부턴 내가 이 외쿡인들을 상대해야 하는구나 하는 압박감. 원래도 잘 쓰지 않던 영어라 어버버 하며 손짓발짓을 곁들인 의사소통 끝에 택시를 타고 숙소로 무사 도착했다. 


무사도착이라고 해야 할까? 


파리에서 느낀 매우 안정적인 드라이빙 실력의 택시기사들과 달리, 반도의 특성을 한껏 담은 급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질주는 정말 무서웠다. 피렌체 골목들이 되게 좁은데도, 차도 양쪽에 갓길 주차가 가득해서 사람이 언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데도 진짜 질주하면서 택시를 모는 게  한국의 택시기사님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앞 차가 늦게 가면  빵빵- 경적을 울리며 후- 하는 한숨과 양팔을 느릿느릿 올리는 '아 나 빡치네' 바디랭귀지는 질주의 무서움 속에 겨우 한 방울 떨어진 웃음포인트였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친절하고 세세한 설명을 보고 숙소에 잘 들어왔고, 리옹에서와 달리 좋은 숙소 컨디션에 만족하며 바로 잠에 들었다.


피렌체! 이딸리아! 라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별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우리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보내준 일종의 to do list를 바탕으로 일단 피렌체 광장으로 향했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리옹에서보다는 꾸미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우리는 리옹에서보다 더 뜨거운 열풍에 2시간 만에 back-home 후 헐거운 옷을 입고 다시 나갔다.


한국에서 약 5년 이상 에스프레소를 즐겨 먹던 나는 본토의 맛을 느껴보고자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로 아침을 열었다. 

그동안 불어-불가능자라는 방패로 아내뒤에서 여행을 즐기던 나는, 영어로 주문을 해야 하는 그 첫 관문에서 꽤나 고전했고 어버버 하면서 손짓발짓 끝에 빵과 커피를 슥삭 마실 수 있었다. 에스프레소는 양이 정말 정말 적었고 그래서 이쪽 사람들은 입에 턱! 털어 넣고 갈길을 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음미하기에는 적은 양이라 맛을 평가하기 어려워서 자주 / 여러 번 마셔봤어야 했는데, 너무너무 더운 날씨에 커피 생각이 하나도 안 났다.


아내와 피렌체 대성당 앞에서 우와!! 를 외치며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이 진정한 관광지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관광인파가 가득했다. 처음 아내와 여행을 계획할 때의 콘셉트는 '휴가로 쉬다 보니 유럽에 있네'를 전혀 이행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었고, 이 사람들과 같이 미술관과 성당들을 줄 서서 들어갔다가는 끈적한 더위에 지쳐서 쓰러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과감하게(?) 그런 관광은 패스하고 맛있는 거 먹다가 돌아가는 것으로 컨셉을 결정했다.  그래서 피렌체 대성당은 외관을 한번 슥- 훑고 식당으로 바로 향할 수 있었다.


아내가 매우 기대했던 피렌체에서의 식당들 중 첫 번째, 

Trattoria za za.


뒤늦게 피렌체 여행의 상황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예약은 필수라고 하나, 예약을 하지 않은 우리는 대부분 오픈런으로 쟁취해 내었다. 미숙한 영어를 더듬거리려는 찰나에, 프랑스와 달리 이탈리아 종업원들은 English-Friendly라고 부를 만큼이나 손님과 의사소통을 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손쉽게 주문에 성공했다.ㄲㄲㄲ...머쓱..


감베르니 파스타와 트러플 뇨끼, 그리고 스테이크는 저녁에 먹을 예정이니 토마토 카프레제를 주문했다. 나는 늘 그랬듯이 지역 와인으로 보이는 걸 하나 골라 한잔 마셨다. 맛은 너무 맛있었다. 


아내와 나는 한국에서 파스타를 먹을 때마다 이것보다 면이 좀 더 익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약간은 불어버린 것 같이 꽤 익은 면을 좋아했기 때문인데, 여기의 파스타 면 익힘의 정도가 그랬다. 감베르니 파스타를 한입 먹자마자 '와 이런 맛이 다 있다니'하는 감동을 느꼈는데, 나만큼이나 아내도 엄청나게 감동을 느낀 것 같았다. 서로 너무 즐거워하며 트러플 뇨끼를 먹는데 이것도 와... 향이 정말 강하게 진동을 하면서 음식들이 하나같이 '내 재료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를 자랑하는 것만 같았다. 파스타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싶을 정도로 꽤 강한 감동을 느끼면서, 식사를 했다. 


이래서 외국에 살다오거나 나갔다 온 사람들이 '현지에서 먹던 맛이랑 조금 다른걸?'라고 우쭐댔던 게 아닐까 싶은 본토의 맛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나도 파스타를 접할 때 '이태리에서 먹던 것이랑 좀 다르네'라고 말할 예정이기에 닭살 멘트를 머릿속에 저장해 놓았다.  


후식으로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를 시켰는데 이것마저 대존맛탱..  비록 밖은 너무 덥지만 피렌체는 맛집투어 여행만으로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때 티라미수가 담겨 나온 한국 분식집 그릇 같은 무늬에 대해 아내가 말하길, 한국에서 굉장히 핫하고 비싼 그릇으로 팔리는 애랑 유사하다며 그릇에 굉장히 관심을 가졌었다. 



식사 후에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을 겸 숙소에 돌아오는데, 아내의 가장 큰 취미인 현지 마트 털기를 하러 갔다. 현지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요거트를 찾으며 신나 하는 아내를 보며, 한국에서 보여주던 소식-생활과 달리 굉장히 먹잘알이 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고 느껴졌다. 파예(FAGE)라는 이름을 가진 요거트를 사서 숙소에 돌아와 먹는데, 한국에서 맛보던 요거트와는 다른 존맛탱 요거트가 분명하구나 싶었다. 


조금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다가 우리는 당일 결정한 여행 루트를 그대로 이행해 보고자 숙소를 다시 나섰다. 이때 피렌체의 뜨거움은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리옹에서 터득한 햇빛 우산으로 가리고 다니기를 실천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위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피렌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그들에게도 피렌체는 관광지니 깐)은 헐벗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옷을 얇게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내도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을 나섰는데, 맨몸에 앞치마만 입고 나간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예쁜 시원한 옷차림이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추천한 곳 중에 숙소랑 가장 가까운 관광지(?)를 향해 갔다. 바르젤로 미술관이었는데, 구글 맵에서는 그나마 인기가 시들한 곳이라 사람이 붐비지 않을 것 같아 선택한 장소였건만, 그곳에도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모여있었다. 정확히는 구름처럼 그늘에 앉아서 햇빛을 피하는 뻘겋게 달아오른 유럽사람들이었다. 


바르젤로 미술관에 들어가는데 입장하기 직전에 너무 헐벗은 아내의 옷차림으론 들어갈 수 없다며 웬 일회용 가운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입은 아내가 더 운치 있고 예뻐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고 미술관에 입장했다.


미술관은 성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당과 유사한 공간이었고 벽면들이 회화로 가득해서 눈이 즐거웠다. 내 안의 깊숙한 곳에 있는 예술혼을 자극하며 너무 신나게 관람하고 있는데, 아내는 계속해서 위를 올려봐야 하는 미술관의 방식에 목이 아프기도 하고, 실내마저 더운 피렌체의 공간에 지쳐했다. 하지만 꿋꿋하게 그 공간과 작품들을 관람하며 아내와 피렌체에 왔음을 온몸으로 느껴냈다. 더운 만큼 햇빛과 날이 너무너무 좋아서 간간히 찍는 사진들에 우리는 힘을 받아 계속 걸을 수 있었다.



그다음 우리의 1차 목적지는 저녁에 먹을 스테이크집, 달오스떼였다. 그곳까지 가는 길에 구경할만한 게 있으면 보면서 가고, 쉴 곳이 있으면 쉬면서 갈 계획이었던지라 골목을 다니며 햇빛을 최대한 피하면서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9도에 육박하는 너무 더운 날씨에 15분 걷고 쉬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바르젤로 미술관 근처에 젤라토 맛집이 있어 아내와 한입 하는데 너무 맛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젤라토를 음미하는 건지 태양을 피해서 쉬는 도중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중인지 헷갈리긴 했었다. 그리고 그간 지나온 파리와 리옹에서와 달리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대부분의 가게에 줄을 서서 먹는 모습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국에서만 맛집 가서 줄 서는 게 아니구나- 하는 만국공통의 공감대를 얻었다고나 할까-.


계속 골목을 다녀서는 피렌체의 명물인  베키오 다리를 구경할 수 없어 뙤약볕이 내리쬐는 강가를 걷는데, 땀이 폭발하는 나는 몸 안의 온도가 정리된 것인지 그나마 걸을만했는데, 땀이 잘 안나는 아내는 뜨거움을 아예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거 목적지까지 계획대로 일자로 갔다가는 둘 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하여, 그늘이 보이는 족족 10~15분씩 앉아서 물을 마시고 손풍기를 쐬었다. 그리고 에어컨이 빵빵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게들에 괜히 한번 더 들어가서 물건들을 구경하는데, 막상 가게에 들어가도 에어컨이 미풍 수준인지라 힘든 건 똑같았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며 피렌체의 관광지가 아닌 더위를 직빵으로 관광하던 와중에, 아내가 가보고 싶어 했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 매장에 들어갔다. 아내는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최고의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 공간에서 거의 2시간을 가까이 있었는데, 예쁘고 향기로운 걸 좋아하는 아내가 에어컨이 빵빵한 곳에 들어가니 나오는 웃음이었던 것 같다. 여름 피렌체의 최고 관광지는 에어컨이 빵빵한 산타마리아노벨라 매장인 걸로 결정되었다.


아름다움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봐도 매장을 잘 꾸며놓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아내는 정말 제품 하나하나에 모두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인 종업원과 거의 수다를 떠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을 힐링(?)한 뒤에 아내가 갖고 싶어 한 향수와 양가 어머님들께 드릴 화장품을 하나씩 사고 나오는데, 우리와 같이 이곳으로 피신한 많은 한국인 신혼여행객(으로 추정되는)들이 주변에 굉장히 많이 보였다. 


조금만 더 걸어가서는 저녁식사를 할 목적지 달 오스떼에 도착했다.


한국의 연예인(?) 알베르토가 추천하는 스테이크 맛집으로 유명한 이곳은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는데 본인을 주인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자신이 알베르토의 친구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내를 보고 너무 아름답다고 칭찬하며, 나에게는 '너도 잘생겼다'가 아닌 '너는 러키가이'라는 말을 했다.


메뉴는 1.2kg의 T본스테이크와 봉골레 파스타, 현지 와인으로 추측해 낸 와인 한 병을 시켰다. 다 먹고 나오니 꽤 금액이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더 포크'라는 어플을 통해 예약했으면 거의 반값으로 먹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래서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이 나오나 싶었다.


하지만 식사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주변에서 한국말이 계속 들려 이곳이 피렌체인지 서울인지 헷갈릴 지경이었지만, 맛은 이탈리아였다. 스테이크도 정말 두툼하고 맛있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봉골레 파스타도 점심에 먹은 존맛탱 파스타집만큼이나 너무 맛있는 음식이었다. 


식사마다 한잔씩 와인을 먹던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혼자서 한 병을 마셔버렸는데, 술기운이 올라서 그런지 안 그래도 더운 식당에서 혼자 열기를 뿜으며 땀을 쏟아냈다. 아내와 같이 매 식당마다 음미했던 와인 중에서는 이곳에서 마신 와인이 제일 부드럽고 맛있었다고 함께 평가했다.



부른 배도 소화시킬 겸 최종 목적지인 미켈란젤로 광장을 향해 살랑살랑 걸어갔다. 왜 걸어갔을까? 

미리 버스 티켓을 사두지 않아서 tabac 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현금이 없어 기차역에서 버스표를 살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 먼 거리였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아무도 걷지 않던 달동네 등산하느라 체력을 다 빼고, 밤에도 은근히 덥던 날씨 덕분에 나와 아내는 진이 완전히 빠진 상태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번 피렌체 여행에서 직접 들어가지는 않을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대성당등이 보이는 스카이라인을 슥- 보고 후끈한 밤바람을 쐬며 잠시 쉬었다. 날씨 때문이었는지 너무 먼 거리를 걸어서 그랬는지 우리한테 미켈란젤로 광장은 산을 등산하는 사람들의 목적지 같은 개념이 되었고, 여기서 숙소까지 다시 걸어갈 생각에 막막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피렌체로 오는 비행기에서 아내와 이야기한,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들어야 하는 플레이리스트는 들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나는 기진맥진해져서 돌아오는데, 리옹에서와 달리 관광지 그 자체인 피렌체의 밤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밤을 지새우는 것 같았다.



Next episode : 여긴 피렌체에서 먹던 맛이랑 다른걸?

브런치 글 이미지 1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지앵에서 리오네즈(Lyonnias)로 드리프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