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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가지는 여유

쨍한 햇빛이 내 것인 것 같이 느끼게 될 때

by 비읍비읍 Feb 03. 2025

가끔은 외근 후 이른 퇴근을 하는 날이 있다.

어떻게 보면 월급루팡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자율근무제를 시행하는 착실한 근로자라서 가능한 일이었겠다.


여름에는 무더운 바깥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에어컨을 틀고 서둘러 샤워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땀을 흘려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뽀송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얇은 옷차림으로 갈아입는다. 분명 조금 전에는 끈적하고 찝찝한 데다가 눈쌀이 찌푸려지는 햇빛을 피하는 중이었던 사람인데 이렇게 단숨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베란다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며 이글거리는 도로를 의기양양하게 내려다본다. 그렇게 만족감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는다.


겨울에는 차갑고 쌩쌩부는 바람을 피해 따뜻한 공간으로 들어와서 큰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모르게 "홈 스윗 홈~"이라고 외치면 입장하게 된다.

복에 겹게도 남향인 집이라 햇빛이 거실 전체공간이 햇빛으로 가득한 장면을 맞닿뜨린다. 원래 집이라는 곳에 햇빛이 이렇게도 가득 들어오는 것인가- 의문을 가져본다. 그 의문은 불쾌함이 아니라 벅참에서 나온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일찍 집에 오는 날은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겨울에 느껴본 햇빛에 대한 독특한 감상은 대체 뭐였을까? 

일찍 퇴근을 하는 날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중에도 해는 항상 떠있는데 이 기분은 뭘까-


그때는 햇빛을 보고 벅찬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혹시나 얼굴이 새카맣게 될까 선크림은 발랐는지 체크를 한다던지

운전 중에 눈이 부시게 왜 이렇게 해는 강한 건지 인상을 찌푸린다던지

춥다고 해서 완전 무장하고 나왔더니 괜히 두껍게 입었네 라며 불평한다던지


하지만 집에서, 오후 낮 시간에 느껴보는 햇빛은 뭔가 다르다.



대체 뭐가 다른지 좀 더 느껴보고 싶어서 주말에 주방에 서서 가만히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날은 2025년 1월 말 어느 주말이었다. 


10시에는 창가에 바짝 붙여놓은 구아바 나무의 한켠을 햇빛이 고개를 빼꼼 들고 담을 넘어온다.

1시가 되니 어느새 소파까지 햇빛이 들어와서 좀 있으면 커튼을 좀 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시가 되니 소파 맞은편에 있는 TV가 자연광이 반사되어 TV 컨텐츠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3시가 되니 거실 가운데 있는 원형 테이블을 넘어 들어와 천장에는 테이블 모양의 반사판이 생긴다.


눈이 부시지만 가만히 햇빛의 이동을 쳐다본다. 

구름에 가려졌는지 가끔은 해가 연해진다. 그러다 갑자기 쨍-하게 햇빛이 변해 눈이 제대로 안 떠진다.

다시 햇빛은 연해져서 눈이 편안해진다.  혹시 이것이 독방에 갇힌 수용자가 직접 밖을 보지는 못해도 쇠창살 밖에 대해 갖게 되는 환상이려나 싶어졌다.


4시가 되니 현관문이 있는 중문까지 차지해 버린다. 햇빛과 나는 공생관계이지 적대관계가 아닌데 마치 내 공간을 다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5시가 되니 각도상 내가 서있는 주방까지는 햇빛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현관문의 가장 높은 부분까지 환해진다.

6시가 되니 아주 잠깐의 붉은 노을이 생긴다. 끝이 다가온 것만 같다.

7시가 채 되기 전에 캄캄해진 집안을 보며 햇빛이 쓸고 지나간 자리를 다시 한번 보게 된다.


튼튼한 샷시 덕분에 바람은 온전히 피하고, 따뜻한 햇빛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퇴근하고 나서 훑어보던 거실의 모든 것들이, 하루종일 춥지는 않았을지 걱정했었는데

매일같이 따뜻한 시간들을 보냈을 생각을 하니 괜히 내가 다 책임에서 멀어지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매일 떠있는 해가, 오늘따라 사랑스러운 존재처럼 느껴지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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