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가면 Jan 06. 2025

『삼국지 연문전』

002. 황건적의 난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마땅히 누른 하늘이 서리라. 때는 바로 갑자년,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온 천하에 창천을 뜻하는 방문이 내걸렸다. 사방에 걸린 방문은 일반 백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환제와 영제, 두 황제의 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당고의 금은 환관의 세력을 막강하게 키워놓았다. 외척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환관은 황제, 특히 영제를 등에 업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으며, 이는 일반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수년에 걸쳐 끊임없이 자신의 명성을 넓혀온 장각은 오행설에 따라 화(火)의 덕으로 일어난 한을 대신할 토(土)의 덕을 타고났음을 알리며, 토의 덕을 상징하는 노란색, 즉 노란색 두건을 쓰고 백성을 선동했다. 오랜 핍박과 수탈에 시달렸던 백성들이 이에 호응하여 전국적인 농민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기주와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예주 등 8주에 급격하게 번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황건의 방이 연주에도 도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방문과 백성들의 환호와 그들이 읊조리는 창천이사 황천당립이라는 구호를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조짐이 보이더니, 결국 시작되었군."


 "그렇습니까."


 키는 작았으나 눈매가 날카롭고 위압감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키가 작은 이보다 머리가 세 개는 더 있어 보일 뿐 아니라 눈과 코를 가리는 철가면을 쓴 이가 있었다. 작은 키의 청년이 당당하고 단단해 보이는 느낌이라면, 철가면을 쓴 이의 모습은 가면 때문이 아니더라도 매우 차갑고 날카로워 보였다. 꼭 그가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철가면에게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런 쯧쯧, 매사가 그렇게 냉소적이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키 작은 청년이 가면을 쓴 사내의 허리를 두드리며 환하게 웃었다. 묘한 매력을 가진 사내. 가면을 쓴 이는 그를 보며 묘한 가시감을 드러냈다. 


 "맹덕께서는 이 상황이 즐거워 보이십니다."


 "당연하지! 천하에 이 조맹덕이 있음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랬다. 키 작은 이의 정체는 조조, 자는 맹덕으로 쓰는 이었다. 환관들의 실질적인 정신적 지주이자 전설이기도 했고, 탁류 파이면서도 청류파와의 교류를 유지하고 존경을 받던 환관 조등을 조부로 둔 이로서, 십상시 중 하나인 건석의 친척을 두들겨 팬 것으로 유명한 그 조맹덕이었다. 그런 조등을 조부로 두고 있었기에 탁류 파이면서도 청류와 교류를 할 수 있었지만, 그의 성품과 학식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나름 고위 환관의 손자였던 그가 조정의 실책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 환란을 두고 웃고 있으니 기묘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철가면, 자네는 준비를 다 맞췄는가?" 


 조조에게 철가면이라고 불리는 사내. 그가 쓴 철가면을 그대로 가명으로 가져다 쓰는 이 정체불명의 사내는 조조의 물음에 아무런 감정 없이 답했다. 


 "맹덕께서 준비를 해놓으라 몇 달 전부터 닦달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준비는 모두 끝난 상태입니다. 지시만 하시면 언제든 출격할 수 있습니다."


 "좋아, 훌륭하군. 근데 그것보다 철가면 자네. 그 이름을 좀 바꿀 생각이 없는가?"


 "또 그 말씀이십니까."


 "에잉, 철가면이 뭔가 철가면이. 작명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이름은 상관없다고 몇 번을 말씀을 드렸는데... 매번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낄낄낄, 역시 자네는 놀리는 맛이 있군. 자, 어서 가세. 아마도 좌중랑장께서 임명교 지를 들고 오실 걸세."


 철가면을 놀리며 그의 반응을 보고 한참을 경박하게 웃어댄 조조는 그대로 뒤를 돌아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한참을 놀리더니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길을 나서는 조조를 보며 철가면은 고개를 살짝 젓고서는 그를 따라갔다. 


 조조가 내린 지시는 간단했다. 최초 창천의 방문이 붙었을 당시, 조조는 이런 사태를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용히 사병을 길렀다. 의용병이라는 이름하에 그들을 훈련시킨 지 오래였다. 어느새 자택에 도착한 조조가 외쳤다. 


 "원양! 원양 거기 있나"


 "귀 아파 소리치지 마."


 "내가 이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만날 때마다 그러는지 모르겠군? 이런 거 보면 원양이나 철가면이나 왜 이리 재미없는 위인들인지 모르겠군!"


 "맹덕 네놈하고 있다 보면 누구나 다 똑같을 거야. 그놈의 조동아리를 좀 다물었으면 좋겠군. 철가면 자네가 고생이 많군."


 "아니?!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이거 서운할라 그러네 원양?"


 "좀 조용히 해봐. 시끄러워 죽겠구먼. 네놈이 내 사촌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연을 끊었을 거야!"


 "에잉, 농담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조조와 하후돈의 어질어질한 대화가 평소에도 많았는지 조조는 화난 기색 없이 그저 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조조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인물은 바로 하후돈, 자를 원양으로 썼다. 14세에 스승을 욕한 이를 때려죽인 것으로 그 강직한 기풍이 알려졌듯이 그는 매우 과묵하고 강직한 사내였다. 그런 하후돈이 말 많은 조조와 만났으니 질색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준비는 다된 건가."


 "황보 중랑장께서 네놈의 건무교위 임명서를 보내오셨다." 


 순간 조조의 눈이 가늘어지며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래, 중랑장께서 내게 단독 작전권을 주셨는가."


 "일개 교위 나부랭이에게 단독 작전권이라니. 나라가 미쳐가는구먼." 


 "낄낄낄, 내가 황보 중랑장께도 요렇게 주둥이를 나불대면서 받아낸 거다 이놈아!"


 "어후... 아무튼 나는 보급이 끊기지 않도록 후방을 관리하지. 나머지는 네놈 알아서 해!"


 조조가 언제 싸늘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손을 입에 대고 주둥아리로 나불되는 형태의 모습을 표현하자 하후돈은 다시 한번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사라졌다. 그런 하후돈을 보면 조조는 또 낄낄거리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조조는 일순간 표정을 굳혔다. 


 "우리의 첫 출전지는 어디가 좋을 것 같은가"


 "전황을 살펴봐야겠지만, 우선은 연주 주변부터 방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관군이 각지로 출동하고 있고, 그나마 도하를 해야 하는 기주 방면보다는 창읍현과 임성현을 거쳐 팽성과 낭사로 나아가 서주에 있는 황건 군을 격파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황건적의 난이 발발한 후, 대대적으로 청류들이 사면되어 토벌군으로 임명되었다. 이에 전국 각지에 있는 청류들의 의용병이 등장했고, 그들은 황건의 중심지인 기주 방면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미 전국 각지에서 황건적과의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서주 지역의 대비가 불안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었다. 


 "그래, 서주...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안 무너지고 있단 말이지. 서주 방면 군세는 어떠한가." 


 "신임 낭사태수가 서주 방면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다 합니다. 그 덕에 아직 서주가 황건에게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우린 낭사로 간다."


 "알겠습니다." 


 철가면은 조조의 결정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비록 조조가 경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전체 판세를 보는 눈이 탁월했다. 그리고 자신이 파악한 판세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림에 있어 주저함이 없었다. 설사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역시 조조에게는 가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철가면은 하나의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출진하라!"


 조조의 출진은 그 무엇보다도 신속했다. 일개 교위가 단독 작전권을 부여받은 것도 놀랍지만, 그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사전에 포석을 깔아놓고 준비를 마친 치밀함은 철가면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낭사로 간다!" 


 조조는 명령과 함께 곧바로 말을 몰았고, 철가면 역시도 손을 들어 그가 키운 천기의 기병을 끌고 연주성을 벗어났다. 그들의 군세에는 '曺'라는 수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184년 2월 15일, 한을 뒤흔들 영웅 조조와 철가면의 출정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