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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친꿈 Nov 15. 2024

2. 내 인생 속 후회하는 선택

백수의 하루하루

(내용과 무관한 사진)

내가 직장 사람들로부터 괴롭힘 당했던 기억들과 같이 회사에서 겪었던 힘든 일들을 엄마에게 예전부터 종종 말해왔었다. 친구가 없는 나로서는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처사였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속을 삭이기엔 견딜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주에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거셔서는 '네가 그동안 그렇게 부정적인 이야기 해서 나의 일을 아주 망쳐버렸어.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나한테도 주니까 나한테도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서 엄마가 제게 엄청 화를 내셨다. 그런데 이렇게 엄마가 내게 화를 내신 데에는 일련의 사연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엄마가 사업을 하시는데 그게 잘 안되었던 모양이었다. 자세히 말하면, 엄마의 일을 도와줄 수도 있었던 A라는 분이 계셨다. 그러나 A와 가장 친한 B라는 사람이 A에게 엄마의 일과는 무관한 다른 일을 권했고, 결국 A는 B가 권한 그 일을 하게 되어서 엄마의 일을 도와주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엄마가 내게 '네가 어찌어찌해서 나의 일을 망쳐버렸다'는 말을 하신 뒤에 나는 심장이 너무 막 쿵쾅쿵쾅 뛰고 불안하고 숨쉬기 힘들어지고 손이 벌벌 떨렸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엄마를 달래주고 싶은 마음에 엄마가 그날 아침에 몸살이라는 것을 안 뒤라서 '엄마가 몸살이라서 힘든가 보네. 빨리 자’라고 했다. 엄마는 빨리 잠이 오겠냐면서 난리를 치시면서 저한테 이년이 미친년이라면서 화내시다가 '네가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가 있냐?'라고 말하셨고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괴로운 느낌이 들었다. 전화 통화가 종료된 후에 그때 안방에 계신 할머니에게로 가서 전화 통료가 끝난 후에 너무 불안해진 마음 때문에 괜히 할머니께 가서 말 계속 걸고 손잡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이 날은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된 듯한 날이었다. 원래 엄마와 한집에 같이 살 때는 이렇게 내가 감정쓰레기통이 된 일이 더 심각하게 많았다. 그러나 따로 살기 시작한 후로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날 전화통화하면서 엄마가 내게 유독 심하게 대한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유독 엄마에게 내가 회사에서 겪었던 힘든 일들을 말했던 까닭은 내가 엄마에게 '동기나 친구를 만난다'라고 말하면 엄마가 내게 신신당부하듯이 하는 말 때문도 있었다. 내가 '알겠다'라고 해도 엄마가 몇 번이나 전화해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말은 '네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 말하면, 걔네들이 좋아한다. 잘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지? 속으로는 아주 잘됐다면서 널 비웃고 있어. 그리고 그뿐이게? 너 학교든 동네든 주변 사람들한테 다 퍼져나갈 거야. 걔네들이 얼마나 너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좋아서 하고 다니겠어.'였다. 이 말은 내가 정말 어릴 때부터 늘 들어왔던 말이다. 특히 내가 믿고 연락하며 지내는 20년 지기 친구한테조차도 엄마는 나의 깊은 속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미리 입막음시킨다. 그 친구가 동네 친구라서 그런 건지 엄마는 ‘걔는 걔의 엄마한테 너 얘기 다 말할 테고, 걔의 엄마가 동네 사람들한테 다 퍼뜨려서 동네 이웃들이 다 네가 직장에서 괴롭힘 당한 것과 직장 그만둔 것 다 알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번주에 나는 마음이 많이 허했어서 엄마에게 '그 친구를 만나서 회사 그만둔 거 말하겠다'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제발 만나지도 말고 아무 말하지도 말아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엄마가 어렸을 적부터 이것과 비슷한 말씀들을 자주 해왔어서 내 입장에서도 나의 친구가 내 이야기를 신나게 주변에 말하고 다닐 것 같다고 생각이 되었고 그 친구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음을 느꼈다. 나는 사실 이런 엄마가 밉다. 엄마 때문에 사람 못 믿게 된 것 같고 가식적으로 사람들 만나게 된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엄마를 탓해서 죄책감이 든다.

(내용과 무관한 사진)

이번주 수요일부터 토익 공부를 하고자 영어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2020년도에 다녔던 같은 학원에 같은 강사님으로 수업 듣기로 했는데 다니기 전부터 설렜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니까 더 좋았다. 내가 그 강사님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수업 들으면서 2020년도의 마냥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했는데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던 나와 그때 당시에 영어 공부를 하고자 열심히 고군분투했던 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조금 힐링되는 느낌으로 수업을 듣는다. 4년 전에 이 영어 학원에서 정해진 수업을 다 들은 다음 달에 템플스테이를 했었는데 지금 이 영어 학원에서도 정해진 수업을 다 마치고 바로 5일 뒤에 다시 템플스테이하러 같은 장소로 가야 되니까 신기했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그게 나쁘게 느껴지진 않고 좋게 느껴졌는데 내게는 4년 전에 이 학원을 다니고 나서 템플스테이를 하러 간 것도 다 좋은 추억이었던 탓이다.

(내용과 무관한 사진)

퇴사하고 나서 내가 생각보다 사람들을 많이 미워하고 있었고 질투도 생각보다 많이 하는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잘 나가는 연예인 보면 ‘저 사람이 잘 나게 태어난 거니까 어쩔 수 없지’ 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요즘엔 '너무 부럽다. 나랑 다르게 태어나서 질투 난다.’는 생각이 든다. 더 생각을 해보니 나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이 화목한 가정에서 사는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그 당시에 어렸을 때는 '이런 걸 느끼면 안 돼.'라고 해서 내가 그렇게 부러워함을 자각하지 못했었다.

(내용과 무관한 사진)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반복적으로 후회하는 선택들을 종종 해왔었다. 내가 어떤 고등학교를 다닐지 내가 선택했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다닐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후회하는 선택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들은 모두 농어촌 전형이 가능했는데, 내가 실제로 진학한 학교는 농어촌 지역이 아니라 공부 조금 잘하던 친구들이 가던 곳이라서 좋은 성적 받기가 어려웠었다. 나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에 나는 농어촌 전형이 가능했던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 중에 원래는 나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농어촌 전형으로 혜택 받고 나중에 내가 꿈꿔왔던 대학교를 입학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으며 내가 처한 현실을 비관했었다. 더 옛날을 회상하면 내가 다닐 중학교를 선택한 것도 후회로 남는다. 초등학생 때의 나는 당시 초등학생일 때 만난 친구들을 중학교로 진학해서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내가 사는 지역과는 먼 중학교로 입학했다. 그래서 또 그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급에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해 중학생 1학년때부터 고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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