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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친꿈 Nov 15. 2024

3. 수능을 다섯 번 치른 나

백수의 하루하루

한때 나는 인형에 한때 의지를 많이 했다. 2019~2020년도 즈음에 해외 포켓몬 센터에서 파는 인형을 직구해서 수집했다. 당시에 너무 귀여워서 많이 모았고 모아서 한데 놓고 하나씩 맨날 만지곤 하는 게 내 일과였다. 나도 모르게 애착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모은 인형들 중에 하나를 신중하게 골라서 책상 위에 두고 공부하다가 만지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 이사하면서 다 두고 왔지만 언젠가 집에 가서 하나 들고 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과 무관한 사진)

회사 생활이 고되었는데 그래도 조금은 버틸 수 있었던 건 부장님이 조금만 버티라고 말해주셨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만둔 것도 부장님이 내게 하신 말씀 때문도 있었다. 부장님은 내게 곧 있을 인사고과 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서 부서 이동은 힘들고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지원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장님께 업무 면에서 배우고 싶은 면들이 있었는데 사내 괴롭힘으로 퇴사하니까 억울했다.

(내용과 무관한 사진)

나의 유일한 친구인 20년 지기 동네 친구를 만났다. 몇 달 전에 그 친구를 만나서 내가 회사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말했을 때 친구는 나에게 일을 빨리 그만두고 다른 회사 가는 게 어떻냐는 얘기를 했고, 난 '역시 내 불행을 원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이번주에 친구한테 내가 회사를 그만둔 얘기를 하자마자 그 친구가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 바로 입꼬리가 올라서 활짝 웃는 걸 볼 때 역시 ‘엄마가 하던 말씀이 맞았어’ 하는 생각과 동시에 속상했고 ‘너도 내 편이 아니구나’라고 생각이 들면서 암담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친구한테 그만둔 얘기를 하니까 속이 후련했고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웠다. 나는 그 친구가 내가 불행하길 바라든 말든 간에 난 여전히 그 친구가 좋았으니 나 스스로가 내 친구를 만난 순간이 좋았으면 충분했다.

(내용과 무관한 사진)

갑자기 올해 설날에 친척집에 내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20대가 되고 설날에 8년 정도 안 내려갔는데 이번엔 내려가고 싶었었다. 코로나 기간 때는 서로 합의 하에 내려가지 했어서 2년 정도는 서로 명절을 각자 지냈는데 이번 설날은 코로나 이후로 다시 한번 모이는 첫 명절이었다. 내가 설날 때 안 내려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내게 굳이 안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번 설날 때 내려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났고, '이런 경험 이때 안 하면 언제 또 하나...'라는 생각으로 친척집에 방문했다. 나는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가족과 친척들처럼 바닥에 앉아서 먹지 못하기 때문에 따로 식탁 위에서 따로 혼자 먹었다. 먼저 다 먹은 친척 어르신들이 제 주변에 돌아다니셨는데 눈치 보였고 허리가 아파서 외톨이처럼 혼자 따로 먹을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이 억울했다. 내가 이번에 친척 집에 내려간 건 아빠가 나에 대해서 모욕적인 말을 또 할까 봐 걱정되어서 간 것도 있어다. 항상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내가 없으면 내 흉을 항상 봤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내려가서 함께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아빠는 내 흉을 보지 못했다. 근데 아빠는 내 흉을 대놓고 못 봐서인지 내가 웬일로 명절날 친척 집에 있는 걸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어요. 아빠는 내 흉을 봐서라도 친척들한테 말을 걸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까 기를 못 펴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아빠는 정말 이상하다. 내가 불참했던 작년 추석 때 아빠는 고모 부부한테 나의 흉을 막 웃으면서 말을 했다는 것을 엄마에게서 전해 들었는데 너무 창피했다. 아빠가 내 욕을 친척들한테 만날 때마다 해놓아서 친척들에게 나의 이미지는 엉망일 것이다. 나는 본인의 자식을 비방하는 아빠가 미치도록 창피해서 친척들을 아예 약 8년간을 안 만났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8년간 친척집에 못 가고 그동안 아빠가 내 흉을 보아서 내 이미지가 엉망이 되었던 거 생각하면 억울하면서 그런 아빠 말을 믿을 친척들도 밉고 나 자신도 창피하게 느껴진다.

(내용과 무관한 사진)

예전에 내가 고등학생일 때 아빠가 정말 나를 죽일 수 있겠다는 것처럼 때리려고 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엄마가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 아빠가 때리려던 걸 막은 엄마가 내 대신 맞으셔서 하루는 정신 잃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얼굴이 심하게 멍들어서 한 달 동안 밖을 못 나가셨을 때 전 굉장히 심한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는 내가 엄마를 저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아빠가 너무 미워졌다. 이런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이 슬펐고 결국 신께서는 내 편이 아니었다.

(내용과 무관한 사진)

나는 수능을 5번 보았다. 다섯 번째 수능 시험을 치르는 전날에 아빠는 내가 다음날에 수능 보냐는 얘기를 엄마와 나누는 걸 들었었다. 난 그날 본능적으로 뭔가를 안 건지 아빠가 나의 수능날을 알기를 원치 않았었다. 그날 저녁 즈음에 난 혼자 내 방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갑자기 아빠와 엄마가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본인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서 부셨고 그걸 새로 사야 한다면서 엄마와 심하게 싸우고 엄마는 내가 공부해야 되니까 일단 나가자고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두 분이 나가신 지 한두 시간이 지난 뒤에 아빠는 본인 새로운 핸드폰을 사서 집에 들어왔고 엄마는 공부하던 나에게 와서 주변에 있던 책을 들고선 내 얼굴을 내리쳤다. 엄마는 내게 '너 때문에 이 난리가 났다'라고 말했다. 난 이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재현되고 떠올릴 때마다 억울해진다. 난 그냥 조용히 방에서 공부했을 뿐이었다. 그 두 분한테 말도 안 걸고 정말 조용히 공부했는데 이런 일이 수능전날 벌어졌다는 게 너무 억울했고 결국 수능도 망쳤다. 수능을 치르고 나서 결과를 직감했을 때 정말 딱 죽고 싶은 느낌이다. 수능 공부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고 인내하여 공부해서 수능 하루에 그동안의 결과가 나오는 것인데 그 두 분의 싸움으로 내가 공부했던 일 년이 날아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능 치르기 전날에 아빠가 스스로 분란을 일으킨 것은 자식인 내가 잘 안 되길 바랐고 내가 불행하기를 바랐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빠를 생각하면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이렇게 수능을 5년간 준비하고 뜻대로 안 되어서 이미 나의 삶은 망해서 죽는 게 낫겠다는 어린 마음에 자살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근데 이렇게 죽기 전에 그래도 엄마에게는 알려드리는 게 맞다 싶어서 말씀드렸는데 그때 엄마가 슬프게 목놓아 우시는 걸 처음 보았다. 엄마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는 모습도 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가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어서 자살 시도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대로 다니던 대학교를 다시 다니면 죽고 싶은 마음이 또 들을 것 같아서 새로운 학교로 가는 선택을 했다. 이때 학교와 관련된 선택이 아직도 굉장히 후회스러운데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후회를 할 수 없다는 양가적인 생각이 동시에 든다.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고 나 스스로가 가여우면서도 지독하게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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