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 시대 수많은 아씨들
몇 년 전 코로나로 집에만 처박혀 있을 때다. 아씨는 1970년도에 제작되어 당시 최고의 일일연속극으로 1997년도에 리메이크했다. 그것을 케이블 TV에서 재방영하기 시작했다. 곱디고운 주인공 아씨를 보며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질 만큼 아씨의 삶이 할머니와 몹시 닮아있었다. 한번 그렇다고 생각이 들자 이후로 같은 시간에 드라마를 꼬박 챙겨보았다.
언젠가 작은 아버지께 들은 할머니 이야기다. 중신 아비가 방에 앉아 수를 놓고 있는 당시 열여덟 할머니를 한번 쓰윽 보고는 단박에 그 길로 할아버지 집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고 하셨다. 그 후로 혼사가 서둘러 이루어졌다. 할머니는 그 시절 인물이 훤하다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미모가 출중하여 인형처럼 똑 떨어지는, 정말 예쁜 얼굴이었다 했다. 막내 삼촌도 내 앞에서 회상하기를 중학교 시절 할머니가 하얀 모시 한복을 입고 학교에 오신 적이 있었는데 전교생이 복도에 머물러 쳐다보기 바빴다 했다. “야, 정현아, 우리 엄마랑 하루만 바꾸자, 엉?”
여기저기서 감탄 소리가 막 새어 나왔다 했다. 경기도 수원 언저리에 그 정도 인물은 보기 힘들었다 했다. 친구들 부러움에 기가 한껏 살았었지... 하며 막내 삼촌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그렸다. 지금 생각해도 연예인 미모의 엄마를 둔 자식의 마음은 어떨지 상상이 안 간다. 또 동시에 할머니의 유전자가 내게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할머니가 대여섯 살쯤 된 나를 데리고 가끔 외출을 하신곤 했는데 지나가던 이들이 딸이냐고 몇 번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면 할머니가 깔깔 웃으셨다. 아마 50대 중후반 지금의 내 나이였을 테니 할머니냐는 말대신 엄마냐는 물음이 더 반가우셨으리라. 어릴 적 닮았다 했던 그 얼굴이 지금은 살찐 중년 아줌마로 늙어가고 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얼굴형이 갸름하고 골격도 아담하여 마른 편이셨던 걸로 보아 나와는 다른 유전자였지 싶다.
그렇게 꽃같이 이뻤던 할머니도 18세에 갓 시집온 뒤로 시대가 그랬던 것만큼 수난도, 사건도 많았다. 돈 좀 있고 기세등등한 양반집에서 어떤 점이 평안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시어머니에 시할머니에, 끝이 없는 종갓집 제사들... 손이 귀하고 명이 짧았던 집안에 여덟 자식을 둔 것은 할아버지 대에 와서 처음이라 했다.
그런저런 얘기들을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고 11살쯤 되자 한 개씩 한 개씩 들려주셨다.
1930년대 중반 무렵이었으니 아직 일제 강점기 시대였고 집안 남자어른들은 모두 타지로 나간 늦은 밤의 일이었다고 한다.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시어머니, 또 시할머니 그리고 집에서 부리던 몇몇 하인들만 있던 집, 바로 뒷산에서 나무를 도끼로 찍는 소리가 났다. 일본 놈들과 작당한 동네 앞잡이가 나무를 벌채해서 전쟁 물자로 보내려는 도적질이었다.
사유재산이 나무가 되었던 광물이었던, 그게 뭐든 간에 공공연하게 다 착취하던 시절에 남자어른들이 없는 틈을 탄 것도 뒤탈을 막기 위해 그랬을 거라는 게 할머니의 추측이었다. 한마디로 아무도 모르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나한테 진조할머니 되시는 시어머니와 할머니는 두 손을 맞잡고 벌벌 떨며 밤을 지새웠다고 하셨다. 그 뒤로 며칠을 밤마다 나무들이 차례로 쿵하고 땅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셨다. 뭐라 나서서 항의할 수도 없었던 시대였다. 집의 하인이 어둠 속에서 산을 타던 이들을 몰래 숨어서 알아봤고 그래서 동네 앞잡이가 누군지 다 알았다 하셨다. 대대로 내려온 할아버지 땅에서 소작농 하던 누구누구라 하셨다. 그 뒤로 벌어진 일은 어찌어찌했고 이제 가물가물하다.
그것보다 난 지금 생각하면 어둑한 안방에 오그려 앉아 밤새 무서웠을 그 여인들이 마냥 가엾다. 나가보지도 뭘 어쩌지도 못했을 두렵고 긴 시간들... 400년이 넘은 할아버지 집안 땅을 그 지역 웬만한 사람들은 다 밟고 다녔다한다.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많은 땅들을 어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다 팔아먹었다.
몇 년 전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선 할아버지집 뒤에 산만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얼마 전 나라에서 걷어갔다. 물론 토지보상이라 하여 돈까지 주고 세금감면도 조금 해주었다. 그 옛날 빼앗긴 나라에서 입도 달싹, 눈도 꿈 쩍 못하고 빼앗긴 나뭇값을 되돌려 받은 걸로 치자 하기엔 훨씬 큰 금액이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시대에도 역시 또 다른 이유로 억울하고 분한 사람들 투성이다. 그래도 시절 잘 만나 하루 먹고사는 것 걱정했던 옛날 고생만큼은 안 하고 산다,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고 일어나면 생겼던 억장의 시간들을 어찌 버티고 견디어냈는지... 어린 시절 나를 눕히고 배를 문질러 주시면서, 긴 머리를 곱게 빗어 양갈래로 땋아주시면서 하시던 이야기들을 난 다 기억한다. 아버지, 또 작은 아버지들에게도 들은 적 없는 옛날 얘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