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살아있는 그 집 귀신
학사 편입 후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돈이 필요했다. 첫 학기 때는 돈이 있으면 버스를 탔고, 없으면 걸어 다녔다. 전공서를 제본해서 수업을 듣고, 과자 한 봉지로 점심을 때웠다. 더는 안 되겠어서 일자리를 찾았다.
2학기 들어서면서부터 아침에는 학교에서 강의를 들었고 저녁에는 입시학원으로 출근했다.
등록금을 벌려고 시작한 학원강사 벌이가 평생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몇몇 만났는데 그중에 한 명이 손 T다.
가깝게 지내는 강사들끼리 서로 성에다가 teacher의 이니셜, T만 붙여 호칭을 지어 불렀다.
아니면 보통 쌤~이라고 간단히 불렀는데,
나의 호칭인 김 T는 어감이 별로였다. 김 쌤~또한 맘에 안 들었다. 하지만 손 T는 달랐다. 손 T~라고 부르면 입에 착 붙으면서도 왠지 있어 보였다. 있어 보이는 손 T는 사람도 괜찮았다.
나보다 4살이나 아래지만 배울 점도 많고 유머가 있는,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었다.
근무한 지 몇 달 안 되어 연말이 되었고 학원에서 송년회를 D호텔에서 열어주었다.
1년 이상 근속한 강사들에게 시상이 있었는데 나와는 관련 없어서 뷔폐음식만 연신 가져다 먹었다.
뒤풀이로 원장이 호텔 나이트를 잡아놨는데 강사들 대부분이 갔고 나도 잠깐 들렀다가 갈 참이었다. 신나게들 춤추다가 블루스 타임이 되었는데 말끔하니, 곱상하게 생긴 여선생이 쑥스러운 듯, 유부남 부원장과 블루스를 추고 있었다. 거절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나왔으리라. 그래도 연실 웃으면서 맞춰주고 있는 게 신기했다. 용기인지 현명함인지, 아무튼 흘낏 한번 보고 난 후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그게 손 T하고의 첫 만남이었다.
해가 바뀌고 난 1월부터 다른 건물 2관으로 출근했고 거기서 손 T를 다시 만났다.
손 T는 수업도 잘하고 힉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학년도 다르고 교무실도 다른 팀이라 같이 일하지는 않았지만 각자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게 잦아지자 같이 퇴근하면서 가까워졌다. 또 다른 강사 유 T도 함께 어울리면서, 그렇게 20대 중반 여자들이 다 늦게 친구가 되었다.
다들 학원에 잠시 머물러 있던,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많았던 청춘들이었다. 과중한 업무, 골 때리는 원생들 얘기로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파전하나에 각각의 취향에 따라 청하 한병, 소주 한 병, 맥주 한잔을 놓고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쏟아냈는지... 심각하고 진지하고 재미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내가 결혼하고 2년쯤 지났나... 어느 추운 겨울, 손 T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남자친구를 소개하겠다, 했다. 며칠 뒤 주말 저녁, 노량진 횟집 앞에서 남편과 같이 넷이서 만났다. 손 T남자친구가 그 동네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손 T남자친구는 나와 나이가 같았고 경상도 어디 어디가 자기 고향이라고 말했다.
“깡촌이죠 뭐 허허... ”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는 대학입학 후부터 자취하며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CPA준비하면서 학원에서 강의해요,
2년쯤 있었는데 손 T가 얼마 전 우리 학원에 들어왔죠.”
우리가 회접시를 거의 다 비우자 가게 주인이 매운탕 한 냄비를 버너 위에 올렸다.
끓기 시작하자 잠시 후 손 T가 숟가락으로 떠서 맛보려 했다. 남자친구가 바로 저지했다.
“ 안돼, 안돼, 아직 먹지 마, 더 끓으면 먹어.” 손 T는 바로 숟가락을 내려놨다. 그 바람에 나도 손에 들고 있던 국자를 슬그머니 상위에 다시 내려놨다.
손 T남자친구는 우리 부부를 처음 만난 기념으로 자신이 음식값을 낸다, 했지만 횟집에 들어와 앉았을 때부터 메뉴판을 혼자 보더니, 알아서 이것저것 주문했다. 나머지 셋 모두 성격들이 다 고만고만해서 뭐가 먹고 싶다니, 뭘 시키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뒀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 사이를 보니 손 T 남자친구가 왠지 모든 걸 주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손 T는 남자 친구의 말을 끄덕이며 고분고분 잘 듣는 분위기였다.
남편도 나도 나서서 한마디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 둘 다 손 T를, 남편감 데려온 여동생을 바라보는 입장이었고 저 남자가 어떤 사람인가 훑어보기에 바빴다.
나중에 손 T가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분위기가... 누나가 있는데도 장남위주로 대접받고 큰 데다가... 학원 말고는 직장 생활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사회성이 좀 그래요...”
남자 친구를 만나기 전 손 T는 3년 전부터 착실하게 돈을 모으며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3천만 원짜리 적금이 곧 만기고 바로 영국으로 갈 거라고 들었었다. 그때즈음 남자친구를 만난 것이다. 적금이 만기 되자 유학 자금이었던 그 돈으로 손 T는 몇 달 뒤 결혼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 여름휴가 때 시댁에 갔다가 손 T집이 근처 동네라 저녁에 다 같이 만났다. 손 T가 아기를 가졌다, 소식만 들었던 데다가 오랜만에 볼 겸 밖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손 T몸이 많이 말라있었다. 정말 뼈만 남았었는데 배만 볼록 나와있었다. 날씨가 더운 데다가 학원 수업을 여적 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 것 같다, 고 그랬다. 손 T, 고기라도 먹여야겠다, 생각하고 근처 갈빗집으로 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손 T, 뭐 좀 잘 먹어야지, 임산부가 너무 말랐어..." 그러자 손 T남편이 "아무거나 막 먹으려고 그런다니깐요." 우리 부부에게 일러바치듯이 말했다. 손 T가 "우리 아빠가 골고루 잘 먹으면 된다고 하셨는데... "
갑자기 손 T눈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손 T남편이 늦게 퇴근하고 들어와 야식으로 치킨을 시켰는데 혼자 다 먹었다고 그랬다. 임산부가 나쁜 기름을 먹으면 안 된다, 가 이유였고 손 T는 괜찮다며 치킨 한 조각을 손으로 집었는데 금방 뺏겼다고 그랬다. 난 속으로 말했다. ‘아니 임산부가 먹으면 안 된다는 음식을 저는 왜 눈앞에서 먹는 건데? 같이 안 먹던지 해야지, 참, 나’ 넷은 잠시 후 일어나 근처 손 T집으로 갔고 손 T는 시댁에서 보내온 사과라며 깎아 내왔다. 여름이라 아오리 사과였는데 아주 달고 맛이 좋았다. 손 T남편은 허겁지겁 사과 한 접시를 거의 혼자 다 비우고는 "사과 좀 더 깎아와 봐." 마지막 사과 한 개를 우적우적 씹으며 말했다.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사는 남편답게 몸도 무거운 손 T를 연신 일어났다, 앉았다, 하게 했다.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다 되어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열흘 뒤 노량진에서 손 T를 다시 만났다.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헤헤, 웃으면서 내가 있는 쪽으로 길을 건너왔다. "야, 애 낳고 며칠 됐다고 이렇게 입고 다녀... 미쳤어, 진짜. 그리고 어? 갓난아기를 뭐 그 먼데까지 데리고 가... 뭐가 급해서...
애가 안 아팠어? " 내가 만나자마자 다그쳤다.
손 T가 "그러게요, 도착한 날 밤 칭얼대고 못 자긴 하더라고요..."
시어머니 성화에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시댁으로 내려갔다가 3일 만에 올라온 거라고 손 T가 말했다. 서울집에서 혼자 지내는 남편 밥 때문에 곰국이라도 한 솥 끓여놓고 오라는 시어머니의 지시였다, 고 했다. 서울집에 가서 좀 치우고 곰국 끓여놓고 저녁 7시 기차 타고 다시 시댁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거기 동네가 조용해요, 특별한 것도 없고 무슨 일이 생길일도 없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 생각이며, 생활이요, 있죠? 80년대에서 멈춰 버린 것 같아요, 쌤... ”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 거야. " 내가 묻자 손 T가 얘기를 이었다.
손 T 시부모님은 당신들 장남이 아들을 낳으면 5살까지는 데리고 살면서 키울 거라고, 오래전부터 꼭 그렇게 할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남편에게 말씀하셨다, 했다.
손 T가 순두부를 떠먹다 말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기를 낳고 열흘 된 어미가 갓난아기를 두고 혼자 서울집으로 돌아와 살 생각을 하니 착잡했으리라... "어쩌냐... 짜증 나네" 나도 덩덜아 한숨 쉬며 숟가락을 내려놨다.
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중간에서 남편은 부모님 말씀에 거역을 못한다고 했다.
밥을 다 먹고 정육점에 들러 뼈다귀를 사가지고 손티는 남편이 있는 집으로 갔다.
2005년도가 지나는 지금, 저런 일이 말이 되는가, 싶었고 아무리 80년대 의식으로 사는 분들이라 하더라도, 난 답답했다. 그 뒤로 출근을 시작한 손티는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시댁으로 가서 월요일 아침 일찍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고 이틀쯤 지나면 시어머니가 전화해서 "야야, 네가 왔다 가면 꼭 어린아이가 탈이 난데이, 어제는 설사해서 밤새 못 잤다... "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고 했다. 아이를 놓고 와서 손티는 사무치는 모정을 어쩌지 못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사연을 들은, 같은 건물에 사는 나이 지긋한 아줌마 한분이 손 T를 끌고 교회로 갔다. 평소에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손 T라 그냥 1번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손 T 첫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만 3세가 되었고 둘째를 낳으면서 큰 아이를 데려와 드디어 같이 살게 되었다. 시부모님은 쉽지 않게 첫 아이를 내놓셨다. 시어머니가 워낙에 치마폭에 키워놔서 아이는 손 T 말을 잘 듣지 않았고 혼이라도 내면 할아버지집으로 간다고 징징 거렸다. 양육자가 바뀌었으니 일관된 태도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었을게다. 할아버지는 매일 전화해 당신의 장손인 큰 아이와 은밀하게 통화를 했다. 엄마가 너 야단 안 쳤냐... 혹시 안 때렸냐, 그러면 넌 태권도에서 배운 대로 앞발 차기를 해서 엄마를 물리쳐라... 등, 전화로 얘기를 전하면서 손 T가 울었다. "어떻게 당신 며느리인데, 손자 보고 엄마를 치라고 말할 수가 있죠? 나를 도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죠... 흑흑... 전화를 끊고 나서 나도 먹먹했다.
아이만 서울에 와있을 뿐이지 시어머니는 명절 때가 다가오면 열흘 전부터 빨리 내려오라 채근하셨다, 고 했다. 명절 끝나면 일주일은 더 머물려야 했었다, 고 했다. 시부모님이 섭섭해하니 남편은 먼저 가고 아이를 데리고 더 뒤처져있어야 했다고 했다. 결국 손 T는 명절을 앞, 뒤로 보름을 채워 시댁에서 지내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야 끝날 듯싶어요..." 손 T가 그렇게 말했다. 손 T가 명절 말고도 시댁에 내려갈 일은 수두룩했다. 김장, 휴가, 방학이 되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시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와 계셨다.
어느 해인가 같이 학원에서 고락을 같이 했던 유 T 쌤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리 멤버, 셋 중에서 아주 늦은 결혼이었지만 핑계김에 그날 손 T네 가족과 모두 오랜만에 만나 식사하기로 했다.
난 들뜬 채로 며칠을 보냈다. 결혼식이 부천이라 아침부터 서둘러 아이와 함께 준비하고 있었는데 손 T 전화가 왔다.
"쌤, 저 못 가요... 시아버지가 좀 전 서울역에 도착한다고 전화 왔어요. 집에 있어야 해서... 남편은 간다고 했어요... 자기가 생각해도 이건 아닌가 싶은가 봐요."
들어보니 대략 이러했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어제 저녁 통화를 했다.... 아버님이 장손, 큰 아이가 보고 싶어서 서울에 온다 하셨고 남편이 "아버지, 집사람 제일 가까운 사람이 내일 결혼해요, 다들 볼 겸 아이들 데리고 다녀올 거예요. 일요일에 오시던지, 아님 다음 주에 오시면 안 돼요? "
다음 얘기는 하나마나다. 전부터 시부모님은 며느리가 관계된 그 어떤 곳, 심지어 친정 가는 것도 대놓고 싫어하시고 못 가게 하셨다고 했다. 언젠가는 3년을 넘게 명절 때 친정을 못 갔었고 게다가 얼마 전 친정엄마가 수술도 하셨고, 해서 한번 다니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당연 싫어하시는 거 알고 시부모님께 알리지도 않았지만 하필 그날 전화가 와서 친정에 있는 걸 알고 난리가 났다, 했다. 결국 서둘러 친정집을 일찍 나섰다고 했다.
손티는 어떤 여인이냐, 하면 좋은 대학교를 성실히 졸업하고 YMCA에서 파견 근무로 외국물도 제법 먹어본 여자였다. 반듯한 인물에, 성정에, 그 인내심에... 그 갖은 좋은 것들을 시댁 허드렛일에 죄다 써먹었다. 난 그 시댁이 복 받은 집이다, 했다. 조상 대대로 업을 잘 지어 저런 며느리가 들어와 당신들이 휘두르는 대로 얌전히 감내하고 산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들이거나 범법 행위를 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분들인 건 분명하다. 또 80년대, 변함없는 의식으로 쭉 사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집안에 들어온 며느리를 제 집 자식보다 더 자식같이 여기는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까?
사실 2000년대 살고 있는 여자가 그들과 함께 지낸다는 게, 특히 착한 여자로 살아야 한다는 게 문제다.
싸워서 그들을 이길 것인가, 남편을 잡아 족칠 것인가, 아님 자식이고 뭐고 그냥 헤어질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손 T가, 그 똑똑한 여자가 선택한 것은 하나님이었다. 그분이 모든 것을 평정했다.
손티는 동네 아줌마 손에 이끌려 1번 가봤던 교회를 주일마다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손T는 영혼을 되찾고 치유를 얻었다.
시집오고 10년 넘게 세월이 지나자 손 T가 말했다. "쌤~ 이제 김장 날짜 언제 할 건지 이제는 어머니가 내게 물어요." 시원하게 웃으면서 손 T가 말했다. 집안의 어떤 대소사든 손 T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다. 그 뒤 얼마 후 TESOL(태솔) 대학원에 합격해 수업을 받기 시작한 손티가 전화해서 말했다. "어머니는 거의 서울집에 와 계세요, 내가 공부방일로 대학원으로 하도 바쁘니까 어머니가, 우리 며느리는 일이 엄청 많은 사람이다, 아~주 바쁜 사람이다, 하며 혀를 내두르시더라고요, 큭큭."
억척스럽게 견디더니 손티가 이겼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그 집 귀신이 되어서 시부모님을 어린아이로 만들어 버리고는 지금껏 잘 살고 있다. 이런 결말이 좋은 건지, 뛰쳐나와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이혼했노라, 말하는 여인들이 잘 사는 건지, 난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