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태어난 여인-1

8화 유자식상팔자 되려면

by 개똥이엄마

어느 작은 식당 앞이었다. 입구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니 사람들이 북적였다.

한편에 있는 방으로 가보니

작은 아버지들, 아빠, 큰 고모가 음식들이 잘 차려진 좌식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왼쪽부터 쭈욱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난 곧 문지방에서 가까운, 빈자리를 하나 잡아 앉은 후 두리번거리니 내 오른쪽 건너편 벽 쪽에 앉아있던 막내고모가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다들 열띠고 즐거워 보였다. 막내 고모는 옆에 처음 보는 얼굴인 어떤 남자분에게 신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초면이지만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었다. 궁금하던 차에

“너한테는 작은 아버지이셔... 내 오빠고... 다들 지금 이렇게 55년도 넘어서 보는 거야... ”

감격하며 막내 고모가 흥분을 누르고 간신히 말했다.

‘그렇구나, 아니 근데 그 긴 세월을 지금까지 어디 계시다가... 뭐지? 탈북이라도 하신 건가? '

도대체 난 짐작도 안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어른들은 웃고 떠들며 서로 기분들을 내고 있었다.

난 조용히 앉아 찬찬히 그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수십 년 만에 나타났다고 하기엔 그분 얼굴이 앳되고 청년 같았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얼굴에서 하얗게 빛이 쏟아져 나오듯이 훤했다, 는 거였다.

눈이며, 코, 입, 등 생김새는 할머니 판인 아빠, 정봉 삼촌 얼굴 그대로 닮아있었고 아주 아주 희고 갸름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또 앉아 계셨지만 키도 훤칠해 보였다. 그분은 시종일관 빙그레 웃고 계셨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다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반가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다 함께 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보니 아침이었다.

지금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진공 흡입기에 빨려 들어가 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모두 싹 사라졌다.

꿈이었구나... 너무나 생생해서 누운 채로 천장을 바라보며 꿈속을 되짚어 기억해 봤다. 다 아는 얼굴들, 돌아가신 할머니부터, 아빠, 작은 아버지들까지... 살아있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 다 한데 모인 자리였다.

그중 한 분만 처음 본 얼굴이 있었다. 누굴까? 이리저리 꿰맞추어 보다가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내 머리를 땋아주다가 아님 눕혀놓고 내 배를 살살 문질러주시면서 옛날이야기를 가끔씩 해주시곤 했다. 그랬던 날들 중 그 어떤 하루였으리라,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그날도.

이름은 정백, 얼굴이 희었다고 말씀하셨다. 큰 아들, 즉 나의 아빠와 많이 닮았다고 하셨다. 또 넷째 작은아버지 앞에 태어난 아이라고 하셨다.

얼마나 순하고 얌전한지 키우면서 손이 많이 안 갔다고 하셨다. 울면서 보채는 일도 없던 아이라 하셨다.

할머니가 넷째 작은 아버지를 갖고 입덧으로 힘들어 손을 이마에 짚고 누워계시면 물을 떠다가 옆에다 놔줬다, 고 하셨다. “어머니, 물 드세요, 마시고 일어나세요...” 어린아이가 옆에서 떠나질 않고 걱정을 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그만 4살 되던 해에 죽었다, 고 하셨다.

“병이 났는데... 그걸 못 이겼어... ” 할머니가 아깝다, 고 하셨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지만 할머니 생전에 먼저 죽은 당신 자식이 둘이나 더 되었다. 우리 아빠도 할머니 돌아가시고 1년 좀 지나 돌아가셨다. 난 할머니 기도 덕분에 아빠가 그나마 할머니 보다 늦게 가셨다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옛날, 그 옛날에 열병이었는지 뭔지 모르겠지만 예방 주사도 없던 시절에 앓다가 죽은 아이들은 할머니 아이뿐이 아니었다. 아무튼 내가 들은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짧은 한토막뿐이다.

그랬던 그분이 왜 내 꿈에 찾아왔을까?

6, 7년 전이라 어느 계절에 꾼 꿈인지도 생각 안 나고 어린 시절 할머니께 들은, 그분이 태어난 때가 언제였는지도 가물 가물하지만...

그분이 돌아가신 날 즈음에 꾼 꿈일까...

아니면 그분은 그저 형들을, 누나, 동생들을 만나고 싶었던 걸까?

엉성한 내 추측만 가득했지만,

저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하고 속으로 인사하고 서둘러 일어나 분주한 아침을 맞았다.

난 늦은 나이에 아이 하나를 낳았고 이제 그 아이가 스물이 되었다. 지난해 아이와 함께 고3 시기를 보냈고 누구보다 시간은 빨리 흘렀으며 감당해야 할 무게는 상당했다. 물론 나 혼자만 겪은 시간들이었다. 아이는 느그적 거리며 평소처럼 제 하고 싶은 글쓰기나 게임을 실컷 했고 그나마 다행으로 학교생활은 모범적이어서 들인 노력에 비하면 감사할 대학교에 수시합격을 했다. 남편은 자신이 졸업한 학교라고 은근히 좋아했다.

대학에 오래 몸 담았던 내 아이의 큰아버지는 소식을 듣고 학교 붙은 거 축하한다고 말씀하시고는 나중에 전과를 시키라고 이어 말씀하셨다. 지금 세상에 할 게 없는 게 어문계열 전공이라는 이유였다. 남편이나 나 역시 어문학 전공이었지만 이 세상 잠시 머물다 가는 데에는 별 탈 없이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 물론 현재의 삶이 세상 기준으로 잘 살고 있다,라는 데에는 어림도 없다. 또 앞으로 남은 날들이 어찌 될는지는 예측할 수도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전공 탓일까... 하지만 내 자식도 앞으로 우리 부부처럼 그렇게 살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아이가 원하는 진학 선택에 있어서 별다른 반대 없이 순순히 응원을 한 사람들은 주변에 결국 제 부모밖에 없었다.

“야.. 이과 아닌 다음에야 문과에서는 앞에 이름이 뭐가 붙었든, 최소한 뒤가 무슨, 무슨 경영학과라고 부르는 데를 보내야 돼... 안 그러면 졸업하고 먹고살 수가 없어... 취직이 아예 안 돼... 야... 우리 죽으면 얘네들 세상 어떻게 살라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줘야 해... 수능 끝나면 전화해. 꼭... 아는 컨설턴트 연결해 줄게.”

나름 전망 있는 과로 아들을 재수시켜 대학 보낸 친구가 나에게 원서 접수 전에 신신당부하며 한 말이었다.

전화를 끊고 쫄아 있던 나는 며칠 뒤 정신을 가다듬었다. 원래대로, 남편과 내 생각대로, 아이가 가진 재능대로, 하겠다고...


전국 수능모의고사에서 1등부터 3000등까지가 그해에 전국에 있는 의대에 진학한다.

그야말로 머리 팽팽 잘 돌아가는 인재들이 지금 수입 제일 좋다는 피부과 전문의들로 몰려있는 상황이다.

오전 9시부터 직장인들을 위한 야간 진료까지 10시간 넘게 앉아 레이저를 쏘며 얼굴에 잡티를, 목에 달린 쥐젖을 불사르고 있다.

대학 진학 전까지의 노력을 의대 졸업 후 평생 고액 수입보장으로 수백 배 보상받는다는... 현실적이고 계산상 맞는 말이다. 그렇게 못하는 게 능력 부족이고 태만하게 사는 인생이다,라고 세상은 말한다.


얼마 전부터 요새 얘들이 대학 수능 끝나면 한다는 행태들이 있다. 해외여행 가기, 운전면허 따기, 성형 수술 하기, 헬스장 가기, 등등이 대표적이다.

그에 못지않게 엄마들도 덩달아 따라 한다는 피부과 시술을 나도 해보았다. 미모가 목표가 아니라 묘한 상실감 같은 데서 오는... 나도, 나한테, 내 돈 좀 써보자, 였다.

내 이마 끝부터 빡, 까놓고 얼굴 전체에 촘촘히, 주사를 수백 번씩 펌핑을 반복하는, 잘 생기고 젊은 남자 의사를 보며 '이 의사는 지금 행복할까? 돈은 누가 다 쓸까? 마누라? 자식? 그의 부모?'

얼마만큼 공부했고, 또 들였을 시간과 인내가 얼마만큼인지를 직업상 잘 알기에 30분을 넘게 그러고 있는 의사가 난 안쓰럽기까지 했다. 물론 그의 삶은 그가, 진정으로 알아서 평가할 문제이다. 불행하다면 그동안 들인 피나는 노력이 씁쓸할 것이고, 즐겁고 보람차다면 그간의 눈물이 기쁨이 될 것이다. 시술이 끝나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병원을 나가는 길에 내가 애쓰셨어요, 하며 진료실에 있는 의사에게 인사를 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중을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어디까지나 평균치의 이야기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 같은 반 친구들과 거의 성별 없이 키가 고만고만하다.

이후 몰려다니는 엄마들 틈에서 아이들도 몰려다니기 시작한다.

잘 가르친다는 학원으로, 인기 있다는 방과 후 수업으로 아이들이 몰려다닌다.

엄마들이 짜주는 농구, 축구 클럽에 아이들이 한데 모여 운동하고 끝나면 같은 곳에서 비슷한 메뉴로 저녁을 먹는다. 시간이 지나고 중학교부터 아이들이 차츰 갈리기 시작한다. 타고난 각자의 재능이 서서히 눈에 띄는 시기다.

나머지 비슷한 아이들은 여전히 몰려다닌다.

그러다가 일반고로 진학한 후 막상 고3이 되어 대학 원서 접수를 시작하면 지망하는 학교도, 과도 다 각양각색이다. 아무리 어릴 적부터 몰려다녔어도 다 같이 의대로 원서 접수를 하지는 않는다. 의대는 전국에서 1프로급 미모나 체격을 가진 남녀들이 가수던 배우든 간에 연예인을 지망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기획사에 들어가 탑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


엄마들이 스타벅스에서 하루에 2시간씩 모여 앉아 어느 학원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잡아 돌리는지, 수행평가를 위해 줄넘기 학원을 보낼지 말지, 이런저런 궁리를 할게 아니라 조용히 집에서 내 아이를 바라보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한다. 내 새끼가 남보다 뭘 더 잘할까, 뭘 더 잘 해낼 수 있을까, 따지면서...

아이를 꾸준히 눈여겨보고 대학을 보내 비싼 등록금을 써도 될 놈인지 아닌지 먼저 판단하는 거 또한 중요하다. 또 유난히 손재주가 야무져 인테리어 필름 시공으로 숨고에서 시간당 10만 원을 버는 기술자가 될 소질이 보이는지를, 눈썰미가 매워서 사람들을 이쁘게 분장시키는 재주가 남다른지를, 부모가 자식에게 시간과 공을 들여 먼저 알아보는 게 훨씬 낫다.

학원 보내놓고 강사한테 자식 미래를 위한 정신 교육까지 떠 맡기는 치사한 부모는 이제 그만 나타났으면 좋겠다.


아이가 중학생쯤 되면 웬만큼 성품은 갖춰지고 진로는 얼추 보이게 된다. 정부 시책이긴 하지만 학교에서도 가만두지 않는다. 학년 올라갈 때마다 아이들 적성검사를 하고 다방면으로 성인이 되어 문제가 될만한 기질을 찾아내고 데이터로 수집한다.

제발 안 되는 공부 좀 그만 시키자. 자신들도 안 한, 못한 공부를... 공부도 재능이다. 재능 있는 아이에게 공부를 맡기자.

손흥민이 잘하는 축구만큼 타고난 재능중의 하나가 공부다. 재능이 먼저고 노력은 그다음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저마다의 재능으로 그것만큼 주여지는 대로 살면 된다.

소중하게 태어난 자식이 건강하면 됐고 남 해치지 않으면 됐다.

뭐라도 잘해서 잘나면 잘난 대로, 또 그만하면 그만한 대로 그 몫으로 살아가면 된다.

자식을 둔 부모의 겪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내 아이가 잘못되어 나보다 먼저 가는 것, 만 아니면 된다.

그 옛날 자식들을 잃은 나의 할머니처럼...

내 새끼를 잃은 수많은 엄마, 아빠의 마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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